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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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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Apr 04. 2024

thanks to the best blue

봄날의 설렘에 감사합니다


새벽까지 수업 준비를 하고 새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전산망이 고장 났습니다.

그렇지만 수업에는 차질이 없었습니다.

제 가방엔 신동엽 시전집의 '봄의 소식'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영혼의 시선'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신동엽 문학관에서 학생들 주려고 가져온 엽서도 있었으니까요.

봄에게 엽서를 쓰고, 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때 한 학생이 다가왔습니다.

카레나 화이트데이 선물이 아닌 공책과 편지를 가지고요.

다른 특별교육과정을 듣느라 더는 청강을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학생에게 이후 시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오후 세 시까지는 시간이 된다고 했습니다.

함께 대청호수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남아있는 학생들에게도 물어 다른 두 명과 함께 갔습니다.


대청호수로 가는 길은 가로수가 벚나무입니다.

바로 지금이 벚꽃이 한창인 때라 혼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벚꽃 천장이다."

연두색을 좋아하는 학생이 말했습니다.

명상정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후 한 시까지 시간을 주었습니다.

35분 남짓 남았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명상정원으로 걸어갔습니다.

개나리, 목련, 진달래가 숲 가로 마중 나왔습니다.

물가엔 연두색 아기순이 가득했습니다.


올망졸망한 학생들과 30분 남짓 촬영을 하고는 다시 학교로 향했습니다.


옆자리 학생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휴대폰으로 틀어주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가면'과 '벚꽃 엔딩'과 '봄날은 간다'를 연이어 신청했습니다.

짧고 화사한 봄나들이었습니다.


*

누마상 샌드위치와 목살 필라프와 방울토마토 오리엔탈 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모두 맛있습니다.

*


골목으로 차가 진입하면서부터 펄쩍펄쩍 뛰는 콩이와 저만치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가늘가늘한 보슬비가 내려서인지 개울에서 개구리가 웁니다.

4월 초인데 벌써.

 

콩이에게 물을 갈아주고 사료를 주니 더는 달려들지 않습니다.

산책이 충분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면 더는 보채지 않습니다.

지금 곁에서 우는 사람, 투덜대는 사람, 징징대는 사람... 다들 무언가 필요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게 채워지면 더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니 왜 그러냐고 귀찮아하지 마시고 받아주고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샤워를 하고 싸 온 요리를 먹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아껴둔 편지를 읽었습니다.

봄날의 설렘 같은 학생이 저더러 봄날의 햇살 같다고 하네요.


공책을 읽었습니다.

지난주인가 따뜻한 햇빛 받고 싶다며 맞은편 건물 계단에 앉아 쓰고 있던 그 공책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꼬박꼬박 음악까지 넣어서 쓴 글들.

음악 한 곡을 찾아 들으며 글 한 편씩 읽느라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듣는 음악이 많았습니다.

이전 세대 음악도 아주 많았습니다.

수준 높은 영화도 보통 많이 본 게 아닙니다.

게다가 시인 최승자를 흠모하고 백석이 흰 밥과 간재미를 좋아했던 것까지 압니다.

이 학생 속에는 백만 년 된 소나무가 숨어있는 걸까요?


그 학생이 옆에 있다면 꼬옥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네가 보이지 않으면 내가 제일 먼저 그리워할 거야."

카레를 요리해다 주지 않아도, 화이트데이 선물을 주지 않아도, 그렇게 많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학생은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귀합니다. 그런 학생이 제 따뜻한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하니 그보다 더한 찬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에서 무얼 하든 푸르고 푸르게 강건하게 자라기를 축복합니다.  



아래는 봄날의 설렘이 추천한 곡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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