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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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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Apr 06. 2024

thanks to ranunculus

라넌큘러스(나낭)로 감사


아침에 신촌역에 내렸습니다. 꽃집을 찾으니 10시 전이라 문 연 곳이 없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니 화분이 가득한 화원이 있었습니다.


어떤 꽃이 어울릴까?

보랏빛 안개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잔잔하고 은은한 평소 모습과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좀 더 눈에 띄는 꽃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탐스럽게 빨갛기도 하고 노랗기도 한 송이 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란 색을 골랐습니다. 나낭이라고 합니다.


꽃을 들고 걸었습니다.

오거리에서 오르막 길로 향했습니다.

모 건물 로비에 8층 사진아카데미 표시가 있었습니다.


77기 개강일입니다.

저는 60기고요.

신입생 중 특별한 후배가 있습니다.

12년 전 방송작가로 만난 후배. 일찌감치 방송을 그만두고 출판으로 진로를 바꾸어 지금은 탄탄히 자리잡은 후배.


우리가 함께한 프로그램은 한두 편이 전부였는데 남해에서 보낸 2박 3일 답사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도와달라고 하면 바쁜 중에도 프리뷰를 도와주었던 의리 때문이었을까요?

아마 정읍과 해남과 지금 사는 집으로 찾아와 준 고마움이 크겠죠. 그리고 제가 곱고 얌전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인 게 가장 크겠죠.


지난 연말에 방문했을 때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제가 배운 과정을 소개해주었죠. 흘려듣지 않고 개강하자마자 등록을 했다는군요.

얼마나 기쁘던지요.

제 말을 믿고 선택해 준 존중과 신뢰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몇 년 간 오지 않던 사진 아카데미 개강날 왔습니다. 그리고 나낭을 후배에게 건네며 사진 입문을 축하했습니다.


서울에도 벚꽃이 피었더군요.

후배가 사 준 서울 카푸치노는 달콤했지만 온도가 낮았습니다. 하지만 고마움에 눈물 글썽이던 후배의 마음은 따끈했습니다. 격려차 감행한 깜짝 방문. 그런데 예상보다 더 감동한 모습에 먼 길 오길 잘했다 싶습니다. 나를 믿어준 사람에겐 응당 응원과 지지를 가득 보내야지요.

앞으로 우린 단체 전시회 때 작가와 관객이 아닌 작가 대 작가로 동등하게 만나겠죠.


방송에서 각자 작가와 편집자의 길로 갔다가 다시 사진으로 만나네요. 사회에서 만난 인연도 이 정도면 꽤 단단한 관계죠?

아무리 후배가 제 마음 속에 포근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소통하고 교유하는 건 후배의 적극성 덕분입니다. 아무리 먼 길도 올래? 하면 달려왔던 열의. 그에 대한 감사가 오늘을 만든 거죠.


사진을 통해 후배 인생이 다채롭고 활기 넘치길 바랍니다.

무엇을 찍을지 모르는 그때부터 자신이 찍고 싶은 게 점점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다가오는 여정. 그것이 사진 찍는 묘미죠.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을 알아가니까요. 어쩌면 후배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겁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전에 스스로 만족하는 사진.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진을 후배가 찍기 바랍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후배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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