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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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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Apr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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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치니 처음 먹어본 날, 감사


오늘은 스테이크 샌드위치와 아란치니를 만들었습니다.

재료 단가 때문에 미국산 소고기를 쓰는 탓에 스테이크는 먹지 않고 채소와 치즈만 든 샌드위치로 허기를 면했습니다.  

주먹밥처럼 생긴 아란치니는 쌀을 익혀 햄, 당근, 양파를 넣고 볶은 다음 밀가루, 달걀, 빵가루에 묻혀 기름에 튀깁니다.

볼로네제 소스는 소민찌(소다짐육)에 토마토소스 한 컵과 양파, 셀러리, 당근, 마늘, 치킨스톡, 오레가노, 바질, 소금, 후추를 볶아서 만듭니다.  


주먹밥을 보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어머니들이 시민군에게 싸날랐다는 주먹밥이 떠오릅니다. 작년에도 5.18 행사에서 5월 어머니집 어머니들이 주먹밥을 만드셨지요.

아란치니는 우리나라 주먹밥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쌀을 물로 볶아 익혀 햄과 채소를 넣은 볶음밥을 뭉쳐 밀가루, 달걀 씌워 기름에 튀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용량의 기름을 집에서 쓰긴 쉽지 않죠.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음식입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도시락으로 싸서 나들이 가면 참 좋을만한 음식이네요. 김밥보다 상할 염려가 적거든요.


다른 요리에 비해 많이 나온 그릇을 설거지하고 기름 범벅인 조리대와 가스레인지까지 세제로 닦고 집에 가는 길. 같은 반 학원생이 제 차 앞에서 선물을 주었습니다. 한식부터 브런치까지 두 과정을 같이 수강하게 되면서 두 달 동안 태워다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지지난달 한식 둘째 날인가부터 귀갓길이 겹치기에 차에 태워주고 중간에 내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과 밀폐된 공간에 일정 시간 있는 게 힘들었지만 매일 같이 가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무던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에 에너지 절약이라는 투철한 의식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같이 가다 보니 벌써 다음 주면 종강입니다.


지난달엔 견과류 한 통을 주어서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딸기주스를 한 잔 사 왔을 때도 부담 없이 고맙게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화장품세트를 주었네요. 과했습니다. 하지만 할인이 많이 되는 마트에서 샀다기에 잘 쓰겠다고는 받았습니다. 대전 토박이라는데 깍듯하게 경우가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운동한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다는 이유로 남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긴 적은 없었는가. 받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접받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기에,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혹은 가난해서....... 어디까지 경계를 지어야 할까요.


그이는 구직을 위해 요리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결코 풍족해서 선물을 하는 게 아닐 겁니다. 무거운 조리도구가 든 가방을 두 개씩 어깨에 메고 버스 타고 걸어서 편도 4~50분, 왕복 두 시간 가까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수업 네 시간에 왕복 통원시간 포함 여섯 시간을. 그 고된 시간을 조금 편하게 해 준 데 대한 감사를 이렇게 거창하게 하다니요.


지난 몇 년간 또래 평범한 여성들을 만날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학원 분위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할만합니다. 보통의 삶이 무언지 오랜만에 맛보았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바리바리 음식을 싸서 가족들에게 갖다 줄 때 저는 혼자 꾸역꾸역 만들어 온 음식을 먹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매일 다른 요리를 먹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 달 동안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는 두 달간 매일 시키는 대로 요리해 먹은 덕분에 1kg이 늘어 44kg 대가 되었고, 그이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마쳐갈 즈음 그이가 감사를 표시했지만, 저 또한 그이에게 감사합니다.  늘 제게 어려웠던 무언가를 잘 해낸 기분입니다.  그건 아마 어울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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