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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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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l 29. 2024

동거 쉰 닷새 날

콩이 쾌유 일지-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밤


새벽에 눈을 뜨니 세 시 반쯤.

쌓인 일이 많아 부담감 때문인지 푹푹 찌는 더위 때문인지 꽤 일찍 깼다.

자정을 많이 넘기기 전에 잔 덕분인 듯.


일주일째 몸이 아프다.

지난주 부안 촬영 후 파상풍 예방접종 부작용인지 잠결 선풍기 바람이 몰고 온 감기 기운인지 모르겠다.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라니......

수건도 몰아서 주 1, 2회 세탁기로 돌리는데 잠옷은 매일 빤다.

땀에 푹 젖은 잠옷을 다음 날 또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새벽에 원고 최종 교정 후 송고!


07:25 콩이와 산책 겸 소변.

자귀나무 꽃 한 송이 남음.

콩이는 또 대변

맞은편 집 아주머니께 인사했더니 나더러 콩이 엄마라고, 주인은 신경도 안 쓴다고 하신다. 주인도 신경은 쓰신다. 다만 연세가 있으시고 시골 분이시니 도시 정서와는 다를 뿐이다.


07:54 사료 주니 먹고 조금 남김.


다른 원고를 조금 쓰다가 다시 잠듦.

하지만 정오 전에 일어나 고민 고민 끝에 외출 결정.

몸도 아프고 할 일도 태산이지만, 그래도 오늘 해서 죽지 않을 만큼 힘들면 하는 게 낫다.


13시 콩이를 밖에 묶어 두고 칫솔 간식 한 개 주고 사료 부어 놓고 출발.

두 시간 거리의 부안 해창 갯벌로 감.

그곳에서의 이야기는 정식 르포로 작성 예정.


15~16:30 미사와 뒷정리

오는 길에 약국을 찾아보았는데 시골이라 약국도 찾아가는 족족 다 문을 닫음.

네 군데째 들러서 5천 원짜리 액상과 알약 혼합 비타민제를 사 먹고 집에 돌아오니

19시. 콩이는 오늘 동거 이래 최장 여섯 시간 동안 바깥에 있었다.

사료는 조금 먹었고 마지막 한 송이 남은 자귀나무 꽃까지 산책하면서 맞은편 집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잘 있었다고 한다.


자동차로 퇴근하시던 옆집 아저씨는 미용한 콩이랑 나를 보시더니

"콩이 호강하네, 호강하네."

거듭 말씀하신다.

그 아저씨는 지난번에도 개도 주인을 잘 만나야 된다고, 그동안 콩이가 똥구덩이에 살다가 평생 최고로 행복해 보인다고 하셨다. 콩이 오기 전부터 그 집에 사셨으니 콩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바로 옆에서 다 보고 계셨던 거였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다 생각을 하고 있다. 그걸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있을 때 발설하고 만다.   

나는 그 아저씨 덕분에 두 번의 위로를 얻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의 충격과 상처를 염려해 주셨고,

두 번째는 콩이의 실내 생활이 좋긴 한데 답답한 건 아닐까 반신반의하던 내게 '콩이 평생에 최고로 행복해 보인다'라고 단언해 주셨다. 제삼자의 평가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번 사고와 동거를 통해 나에겐 긍정적인 반응이 매우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조언이나 사무적인 평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콩이는 내가 짐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니 급한 마음에 남은 사료를 와구와구 먹는다.

콩이는 보통 어디 가려고 하면 남은 사료를 급하게 먹는다.

배가 차야 나가서 활동할 때 좋다는 걸 아는가 보다.

오늘부터 바깥에서 재울까 하다가 모기떼 기승에 털도 없는 얇은 피부가 걱정 돼 20시쯤 데리고 들어옴.

물로 배와 발을 씻기고 키친타월과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연고 발라줌.

현관에 두었다가 시원한 다용도실로 옮겨줌.


아픈 개한텐 북어가 좋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주일에 북어채를 사다 놓았다.

외부 생활하기 전에 북어를 고아서 먹이고 내려 보내야겠다.


*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

오늘 새만금 가는 길에 문자가 왔다.

보험금에 대한 손해사정내역이었다.


그러니까 5월 27일 월요일 콩이 사고 후 수술한 28일에 사고 현장에 가봤다가 유기견들인 줄 신고했다가 주인이 있는 개인 줄 알게 되었다.


다음 날인 5월 29일, 수술비 마련을 위해 하지 않던 당근에 내 새 자전거 리어패니어 세트를 내어놓자마자 가해견주 전화가 왔었다. 가해견주는 운전자 보험 특약 일상배상책임보험에 한도 없이 가입했다고 했다. 알아보니 그 보험에서 자기네 개가 남의 개를 물었을 때 치료비를 배상해 준다고 했다. 가해견주는 자기 부담금 20만 원만 내면 된다고 했다.


콩이가 퇴원하던 6월 5일 수요일, 손해사정사가 찾아왔다.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와 콩이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동물 등록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손해사정사는 당장 보험금을 받을 건지 치료가 다 끝난 후 받을 건지 정하라고 했다.

동물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통원 치료 후에 받으라고 알려주셨다.

콩이 퇴원하는 길에 동물등록을 했다.

비용은 2만 원이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시 동물보호정책으로 추후에 환불해 준다.

콩이는 태어난 지 7년 만에 출생등록 아닌 동물 등록을 한 셈이다. 나라는 서류상 주인이 생긴 것이다.  


6월 12일 X-ray를 찍고 발사했다.


6월 26일에 동네 병원에서  X-ray를 찍었다. 그 병원에선  X-ray 자주 찍어서 좋을 것 없다고 한 달 후 마지막으로 찍고 확인하자고 했다.


콩이 사고 난 지 두 달 된 7월 26일 금요일, 마지막 X-ray를 찍고 진단서와 함께 청구서 사진을 손해사정인에게 보냈다. 애견용품과 구충제, 사료, 미용 등은 보험 처리되지 않고 오로지 치료비만 청구할 수 있다.

오전 10시 반에 사진을 보냈는데 사정인이 오후 3시쯤에 도착했다.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신분증과 통장사본을 가지고 나오라고 해서 가지고 나가서 서류 한 장에 사인을 했다.

일주일 내로 처리된다고 했는데 주말 지나고 오늘이 월요일인데 벌써 입금이 되었다. 정말 빠르게 처리해 주었다.


사고 나던 날, 정신을 차릴 수 없던 그 당시, 항생제 먹여 데려오라는 집주인에게 수술비를 전액 대겠다는 조건으로 수술을 받게 했다. 동물병원 의사도 가능성 없다던 시골 가해 견주의 배상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20일 전인 동거 서른 닷샛 날, 큰고모가 궁금해하셔서 콩이 사진을 한 장 보내드렸더니 문자가 왔었다.

 


'콩이가 편하고 기분 좋은 표정이네.~~ 사람이건 짐승이건 도움과 사랑을 받음은 행복을 느끼게 하겠지?~진실된 베풂은 나에게도 보람을 느끼게 하지~ 콩이가 잘 회복됨은 너에게도 편안함과 기쁨을 주는 거란다~~ 그냥 집주인 말대로 했다면 평생 마음의 짐으로 순간순간 괴로움이 따를 거야~~ 인간 각자의 본연의 숨겨진 마음의 결실이랄까? 네가 바르게 자라서 고모는 참 좋단다!!'



나는 '진실된 베풂'을 했을 뿐인데 기대하지 않았던 경제적인 배상을 받았다.

두 달간 꼼짝 못 하고 집에 묶여 있어야 했지만 그동안 큰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바르게 자랐다는 칭찬을 받았다.

남의 눈에 티라도 잡힐까 봐 안간힘을 쓰고 살았다.

어디 가서도 꼬투리라도 잡힐까 봐 지레 방어막을 치고 살았다.

그동안 얼마나 긴장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남의 개 산책 시키다 사고 난 걸 책임진 게 바르게 자랐다는 칭찬을 받다니 정말 감사하다.

때론 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하는 점검을 한다.

그런데 내 '본연의 숨겨진 마음의 결실'이 사랑과 박애로 보인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순간에 사고 발생한 콩이를 구하고 고친 건 그동안 우리 사이에 쌓인 사랑과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콩이고 콩이가 나였다고 해도 콩이는 나를 구해주고 고쳐주었을 것이다.  


콩이는 어느 집에서 이곳으로 팔려와 집주인과 세 번의 세입자를 맞았다.

첫 세입자가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해서 집주인이 사 오신 게 콩이다.

귀여운 아이들이 살았다던 그 집은 이사 가고, 다음에 살던 사람은 커다란 개를 안고 거실에서 함께 자던 사람인데 그 개를 콩이가 물어서 이사 갔다. 세 번째 만난 나는 싱글 라이프인데 콩이만 쳐다본다. 그러니 콩이도 상대적으로 내게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모두 콩이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이번 사고 후 그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감사하다. 콩이는 나 한 사람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멀리서 응원과 마음으로 받았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로부터의 사랑이 무한대로 퍼져나가는 엄청한 힘. 그 힘을 받아 콩이가 완쾌해가고 있다.


이제 오늘밤 아니면 내일밤이 이 동거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콩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달간 실내 생활을 해보았다.

나를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먹고, 얼마나 많이 씻고 청소하고,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음악을 듣고 사는지 처음 보았다.

나도 처음엔 냄새나고 더러워서 힘들었던 콩이와의 동거가 하루 두 번씩 안고 오르내리니 점점 익숙해졌고, 내가 움직이는 족족 쳐다보는 CCTV 같은 눈길이 부담스러웠던 동거가 콩이가 내려가고 나면 그 미소가 아쉬울 것이다. 현관에 콩이가 버티고 있으니 그동안 잘 때 무섭지 않았다.


이제 콩이는 밖에 나가도 2층에서 소리가 들리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내가 보이지 않아도 예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그것이 동거다.

아픈 상대를 완쾌할 때까지 책임지고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의 실천인 동거까지 할 수 있게 해 준 콩이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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