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사진전 2 - 꿈터 갤러리 오픈
사진을 다 걸고도 전시 오픈하기에는 준비할 게 많았다.
지난 토요일, 아리셀 참사 희망버스를 타고 화성에 다녀온 밤에 인사동에 갔으나 필방은 모두 문을 닫았다.
다음날인 어제 다시 인사동에 가서 한지로 된 최고급 방명록과 붓펜과 소나무 연필을 샀다.
50매짜리 방명록을 두 권 살까 망설이다 가격이 비싸서기도 했지만, 100명이나 올까 해서, 50명이 다 차면 다시 사러 오기로 하고 한 권만 사 왔다.
간절한 소원이었던 첫 책을 낸 지 어느덧 10개월이 되어간다. 그 책에 나오는 흑백 사진과 그 외 사진을 칼라로 인화해 전시를 한다.
혹시라도 사진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봐 작품 리스트 가격표를 엑셀로 만들어 비치해 두어야 했다.
그 갤러리에는 항시 대기 관장님이 없기에.
내가 만들다 만들다 결국 오 선생님이 작품 사진 파일을 전부 받아 다시 만들어 주셨다.
액자 포함 사진 가격은 액자 가격이 절반으로 그리 비싸지 않게 책정했다. (처음 그 갤러리에 갔을 때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액자였다. 충무로에선 볼 수 없는 고급 목재로 마감도 정교했다.) 그나마 갤러리 전시용 사진은 수익금이 작가와 갤러리 반반이니(작가인 내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설사 팔린다 해도 작가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한 장이라도 팔리면 다행인 사진들이다.
갤러리 입구에 있는 모니터에 작품 사진 대신 다른 사진을 동영상으로 틀기로 했다.
2020년부터 올해 초까지 걸으며 찍은 700장이 넘는 정류장 사진이다.
그 사진들은 '작가와의 대화' 때 질문과 답 시간에 슬라이드쇼로 틀어주던 것이었다.
그 동영상 mp4 역시 오선생님이 만들어 주셨다.
단체로 걸은 건 다 빼고, 자전거 순례도 빼니 좀 줄었다.
그래도 720점이었다.
음악은 'JMeemo - In MeKong 숙희씨와 함께하는 메콩카페에서'를 허락 받아 넣었다.
지하철을 탔다.
문자로 링크가 하나 왔다. 관장님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https://blog.naver.com/foto3570/223552904823
기차를 탔다.
일주일을, 아니 3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정신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완전한 내가 아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동영상에서 제해야 할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달리는 기차에서 갤러리의 오 선생님과 문자로 연락하면서 수정에 수정 맨 마지막에 곰개마을을 삭제하며, 나는 앞으로 학생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단번에 과제를 제대로 못해도 이해하기로 했다. 나 역시 이번 사진전 작업을 하면서 사진집 편집 때도, 홍보문 작성 때도, 동영상 제작 때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거듭했기 때문이다. 살림은 못해도 일 하나는 잘했던 내 총기와 명석함은 갱년기와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받아들임이 힘들어 메슥거렸다.
200km 가까이 아래로 내려와 어깨를 짓누르는 주황 배낭을 메고 터덜터덜 오르막 공용주차장으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 오던 어떤 중년 남자분이 말을 걸었다.
"핵발전소 어디를 다니시는데요?"
"전국의 핵발전소를 다 다녀요."
"왜 걸으시는데요?"
"우리나라에는 울진, 경주 월성, 부산 고리, 영광 이렇게 네 군데 핵발전소가 있어요. 24기에서 22기 정도가 현재 돌아가고 있어요. 그중 월성은 중수로형이라 우라늄에서 플루토늄이 나와 방사능이 아주 많이 발생해요. 그런데 그 핵발전소 1km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그분들은 혈액에서 삼중수소가 나오고, 갑상선 암을 앓고, 아이들은 백혈병에 걸렸어요. 그런데 집이 안 팔려서 이사를 못 가요. 한수원에선 아는 척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분들 이사를 위해서 걷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정성껏 설명하는 사이사이 그분은 살짝 미소 짓는 듯도 했다. 그런데 말을 마치자 그분도 예전에 이 일을 하셨다고 했다.
"그 몸자보 진짜 오래된 건데......"
"전 얼마 안 했어요. 2018년부터..."
그런 동네인 줄 모르고 덜컥 이사 왔다가 엄청난 보수 동네라 당황했었는데, 그렇게 반응하는 분을 처음 만났다. 알고 보니 영광에서 사신 적 있는 원불교 교무님이셨다. 영광핵발전소는 원불교에서 탈핵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 되는 곳이다.
몸자보 붙이고 다니길 잘했다. 이렇게 불시에 누군가에게는 자극을 주는구나.
집에 오니 줄줄이 상사화는 벌써 시들시들 시들어가고 있었고, 콩이는 얼마나 좋았는지 펄떡펄떡 뛰다가 얻어 입힌 하네스에서 빠져나와 맨 몸으로 시동 끈 차 문 옆으로 달려왔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콩이와 산책을 하니 땀에 젖은 리넨이 치덕치덕 다리를 감싸도 비로소 평화가 살며시 찾아왔다.
쌀 한 컵으로 밥을 해서 달걀부침을 깔고 단무지와 우엉을 넣어서 김밥을 말아먹었다.
반찬은 텃밭에서 따 온 고추 세 개.
이메일을 열었다.
오선생님이 보내주신 정류장 mp4가 있다.
볼 때마다 외롭다. 뼈가 저리도록 외로워서 눈물이 난다.
그 멀고 긴 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그때의 시리고 아픈 가슴이 사진을 볼 때마다 되살아난다.
전시장에 오는 분만 볼 수 있는 건데, 능곡이 너무 멀어 못 오시는 분들 중 이곳에 찾아오신 분들께도 보여드리려고 했다. 외로운 분들이 보시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위로를 얻으시라고. 그런데 500MB가 넘어 올릴 수가 없다. 하긴 24분이 넘으니.......
대신 노래를 하나 올린다. 첫 곡이다.
https://youtu.be/N-N3EfOhPGU?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