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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Aug 22. 2024

좋아하는 자리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사진전 4 - 음악이 흐르는 사진전


이틀째 갤러리에 출근한다.

능곡역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너 왼쪽으로 걸으면 소방서 옆에 능곡역프라자가 있다.

입구 벽에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일곱째별의 탈핵 도보순례 사진전'으로 되어있다.

탈핵 순례가 탈핵 도보순례로 바뀌는 동안 난 눈치를 못 챘었다.

그리고 현수막 인쇄가 되어 버렸다.

이번 사진전은 순례 중 도보만 한 거니 맞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두 대 중 한 대에도 사진전 홍보지가 있는데, 나는 거의 계단으로 올라온다.

2층이라 가뿐하다.

맨 끝 유리로 된 자동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제 첫 관람객으로 오신 정미이모의 '숙희 씨와 함께하는 메콩카페에서' 피아노 곡이 정류장 사진에 맞춰 흐른다.  

숙희 씨는 얼마 전 작고하신 정미이모 어머니 존함.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딸과 예쁜 카페를 다니시던 어머니를 추억한다.

어머니는 좋으시겠다. 딸이 그렇게 음악을 만들어 기억해 주어서.


올 1월, 7번 국도 완주 시 감포 무인카페 2674에 들렀을 때 참 좋았었는데 능곡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사람 상대가 어려운 나 같은 사람도 이런 카페라면 운영할 수 있을 듯하다.   

꿈터 갤러리.


오늘은 손님 한 명에서 좀 전에 두 명.

단골이라 이젠 인사도 한다.

이곳의 테이블은 모두 관장님 작품. 원목으로 직접 만드셨다.

비품 용 셋을 제외한 여섯 개의 탁자.

그중 나는 여덟 명은 앉을 수 있는 제일 커다란 탁자 구석 자리에 앉는다.

손님 여러분이 함께 오시면 자리를 비켜드리지만, 이곳은 좀처럼 그럴 일이 없는 한산한 카페.

내가 이 자리에 앉는 이유는 좋아하는 사진들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2017년 나아리와 2018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로 시작한 탈핵 사진 운동이었지만,

혼자 걷기 시작하면서 함께해 준 벗들이 있는 사진,

2020년 2월부터 2023년 1월까지의 사진들이 있는 삼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을 보면 그날 그 시간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날의 환희와 흥겨움과 고통과 외로움과 슬픔과 고독함이.

정면에 있는 울진한울핵발전소 사진에는 맨 처음 도보순례하던 설렘과 호기로움이 담겨있다.

이후 처절하게 외로웠는 줄 알았는데 열한 점의 사진 중 홀로 있던 사진은 한 장뿐이다. 섬진강 길을 걷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쉬려고 배낭을 내렸는데 달아놓았던 몸자보가 사라져서 황망했던 그때.

그런데도 나는 왜 그리 서글프고 애처로웠던가.

그럼에도 나는 계속 걸었고 친구들은 또 찾아와 주었다.


어제 자전거까지 싣고 기차로 오면서, 오늘 무거운 노트북 무게로 어깨가 계속 아프다.

오래 멘 주황 배낭 허리벨트 버클이 화성 가던 날 깨졌다. 그래서 배낭이 더 무겁다.

내 짐을 대신 져 줄 벗은 이제 없다.

그때 내 곁에 함께 걷던 도반은 사진으로 남았다.

그는 황량한 바다로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그 쓸쓸함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그분 덕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사진.

화진포.

어느 지면에도 공개된 적 없는 그 사진이 아마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소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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