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를 시작했다.
첫 주는 학생들이 현재 거저 갖고 있는 '젊음'에 대해 쓰라고 했고,
둘째 주는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에 대해 쓰라고 했다.
어제는 강박 관념과 무상으로 감사한 것들에 대해 쓰기 과제를 내주었다.
개학 첫날,
인도네시아 학생으로부터 초콜릿을 받았다. 아마 방학 때 고향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날 원도심레츠에서 식사 후 여러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설탕이 씹히는 듯한 맛이었다.
나중에 맛을 설명하니 정작 학생은 못 먹어보았다고 했다.
선물도 감사한데 자신은 먹어보지도 못한 걸 선물하다니 더 감사했다.
2주차,
에티오피아 학생에게 수업 후 한국어 수업을 별도로 해준다.
닷새 동안 쉬지 못하는 수업, 과제도 많을 텐데 한국어 교재 답을 많이도 써왔다.
내가 한글 쓰는 순서를 알려주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쓴다.
그 모습이 대견하다.
4주 차 목요일,
학생 한 명이 1.8리터짜리 빨대 달린 텀블러 컵을 생일선물해 달라고 해서 받았다고 가져왔다.
내가 플라스틱을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지난 학기 내내 매일 카페에서 플라스틱 컵에 아이스커피를 담아 오던 학생도 드디어 텀블러를 가져왔다.
No Plastic
내 메시지가 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4주 차인 어제.
쉬는 시간에 로비에서 학생들이 타로카드를 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깃발 달린 집에 가면 안 된다고 하셨지만,
아이들이 재미 삼아하는 거라 괜찮다고 했다.
"무얼 생각할까? 곧 나올 책의 반응? 아니 그건 잘 될 거고...... 사랑"
"오~~~"
아이들이 환호했다.
놀랍게도 세 장 다 엄청 좋다는 게 나왔다.
THE FOOL 바보처럼 그 사람만 쳐다보는 / 맞다. 순정 일색.
QUEEN of SWORDS 여왕의 포용력을 가진 / 그렇다. 바다같다.
THE LOVERS 서로 사랑하는 / 그래야지. 짝사랑 사절.
"근데 내가 생각하는 건 너희들인데?"
"에~이" "알죠, 알죠." "알아도 직접 이렇게 말로 듣는 건 또 다르죠."
그러고 보니 이번 추석에 슈퍼문을 보고 소원을 빌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을 한단다.
그렇다면 누구랑 할까?
이젠 설렘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
평론가에게서 추천사를 부탁하는 400여 페이지의 원고와 함께 온 전통과자 오란다 20봉,
얼마 전부터 불이 켜지지 않던 12년 된 전기 스탠드에 몇 년 전 귀정사에서 어떤 분이 사다 준 전구를 갈아 끼웠더니 켜진 불,
서울 성북동 부근의 작은 도서관에 내 탈핵 순례 책이 꽂혀있다는 소식,
집에서 쉬고 콩이 목욕시키고 자전거 타고는
모락모락 기름칠도 아닌 물칠이 반드르르 말캉말캉하게 갓 지은 저녁 잡곡밥,
몇달간 묵은 마지막 김치에 자연드림 꽁치통조림 넣고 끓인 밍밍한 김치찌개,
배부르게 먹고 글쓰는 지금.
이 모든 게 무상으로 주어진 내 감사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