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훈 초대전 CaCl2 Graphy-부산 갤러리 051
사진을 내리자마자 하루 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학교 단체 버스를 타고 부산국제영화제 참관 차였다.
27회, 28회 모두 혼자 영화를 보았다.
남미 다큐멘터리와 이란 다큐 영화였다.
그런데 이번 29회 때에는 상영관 대신 해운대에서 달맞이 공원으로 향했다.
2022년 1월, 부산 오륙도에서 고리 핵발전소까지 걸었던 그 해운대를 지났다.
미포에서 올라가 레일바이크 정류소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도보순례 추억에 잠겨 흥겨웠다.
그런데 그렇게 높은 줄 알았다면 마을버스를 탔을 것이다.
지도에는 왜 등고선 표시가 없는 것일까?
서울 평창동 같은 분위기의 고급 주택가 고지대를 삘삘거리며 올라갔다.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갤러리 051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CLOSED
아뿔싸
강재훈 선생님께 곧장 전화했다.
선생님은 키르기스스탄에서 돌아오셨는지 전화를 바로 받으셨다.
비밀번호를 알려주시곤 또 다른 분도 부산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아무도 없는 남의 공간에 들어서는 일은 모든 감각과 동작을 경직되게 만든다.
가만가만히 입구에서 기다렸다.
간소한 주방을 둘러싼 스탠드 형 나무 테이블로 보아 손님들이 바처럼 앉아서 무언가를 먹는 듯했다.
싱크대 위로 짜인 나무 선반에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잊었던 공방 꿈이 소로록 솟아올라왔다.
그런 공간. 나만의 작업을 할 수 있고 간간이 다른 이들이 찾아주는 그런 공간을 꿈꾸었다.
지금은 사라졌는 줄 알았던 그 꿈이 불쑥 올라온 걸로 보아 언젠가는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지 않을까.
언젠가는. 언젠가는.
누군가의 공간에 책상 하나 놓고 조마조마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자유와 평화가 소복이 쌓인 공간.
잠시 후 관장님인 김홍희 작가님과 포토청 백홍기 전 회장님 가족과 69기 가족이 올라오셨다.
텅 빈 갤러리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약속도 없이 부산 그 낯선 곳에서 각지에 있던 사람들이 만났다.
그걸 통계와 확률로 따진다면 0.000... 몇의 퍼센트에 해당할까?
인연이란 이런 것이다.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만나는 일.
그러니 그런 만남을 어찌 우연이라고 할 수 있으랴.
갤러리에는 스무 점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검은색 정사각형 나무 액자에, 간격을 아래만 조금 넓게 자른 매트에 싸인 흑백과 칼라 사진들.
눈이 오면 길에 뿌리는 염화칼슘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무언지 모를 액체와 고체가 섞인 형상.
제설제였다.
드디어 선생님의 학부 전공을 살린 화학 현상이 작품이 되었다.
시대상을 반영한 경고성 예술이다.
당연하게 스치던 걸 문제의식으로 바라보는 시각, 기자정신이다.
단순한 미감 추구가 아닌 선한 계몽, 길바닥에 뿌려진 과잉 속에서 건져올린 가르침이다.
사진전 설명은 글 잘 쓰시는 선생님의 웹포스터로 대신한다.
염화칼슘 그래피는 2024년 9월 6일부터 넉넉하게 두 달 가까이 10월 말일까지 한다.
갤러리 051 관장 김홍희 작가님은 몇 명 알지 못하는 사진가 중 한 분.
담양에서 지내던 2022년 여름, 화순 운주사 앞 천불천탑 사진문화관에서 하던 한국 현대 사진가 초대전에서 고리 핵발전소를 본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김홍희 선생님은 부산 그 부근에 사셨다고 한다.
비 오는 날 찍은 그 사진과 비슷한 앵글의 내 사진이 있다.
갤러리 051은 작업실과 스튜디오를 겸하고 있다.
오디오와 컴퓨터 기재는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최고급 사양이었다.
목각과 글씨
스탠드에 붙여놓은 흰 종이마저도 예술적으로 보였다.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작업실.
음악과 커피와 사진이 있고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