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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지막 팽팽 문화제

20241221 토요일 군산 하제마을 팽팽 문화제

by 일곱째별 Dec 23. 2024


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 팽팽 문화제     


하제마을 팽나무를 보러 가는 날은 일찌감치 나선다. 군산에서 들를 데가 많기 때문이다.

12시 반 복성루엔 기다리는 사람 줄이 길고, 마리서사에는 아직 내 신간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성당 팥죽을 먹어야 겨울이 온다던 벗의 말을 기억하고 동짓날 이성당 팥죽을 먹었다. 빈속에 당 스파이크가 강렬했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보니 평화바람 딸기가 생각나서 하나 샀다. 다시 간 복성루엔 찬 북풍을 맞으며 줄이 여전했다. 짬뽕을 포기하고 하제마을로 향했다.


2시 좀 넘어 옥서면으로 들어가 미군기지를 거치고 있는데, 저만치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긴 머리 소녀가 보였다. 얼른 차를 몰아 옆에 가서 창을 내렸다.     


“어디까지 가세요?”

“팽나무요.”     


그럴 줄 알았다. 어서 타라고 했다. 일찍 가서 준비를 도우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소개를 하고 있었다. 앗뿔싸, 겨울엔 두 시 시작이란다. SNS를 하지 않고 귀동냥과 기억으로 다니니 발생하는 일들이었다.     


하제마을에서 평생 사셨던 여 씨 주민이 소개하셨다. 일제강점기에는 팽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다고. 지금의 팽나무는 동네 놀이터이자 각종 회합의 장소였다고. 군산 일 년 살이 하는 분도 계셨고 꾸준히 오시는 분도 처음 온 분도 계셨다.

그들 사이를 어슬렁 거리는 나를 문정현 신부님께서 보시고는 환하고 반갑게 웃어주셨다. 그 웃음이 험한 날씨 뚫고 먼 길 달려와서도 늦은 노고를 사르르 녹여주면서 역시 오길 잘했다고 확인하게 했다.

카메라가 두 대나 촬영 중이었다. 영화 <사수>의 공룡과 <수라>의 황윤 감독. 영상 기록하는 이가 많으니 나는 노래를 따라 했다. 인디언 수니가 기타 치며 부르는 ‘조율’, ‘상록수’를. 문정현 신부님은 노래에 맞추어 지팡이를 흔들흔들 흔드셨다. 눈발도 노래에 맞춘 건 아니겠지만 굵다가 잔잔하다가 그쳤다.

마무리로 모두 넬켄라인 댄스를 하며 팽나무를 한 바퀴 돌았다.


동지에 맞게 순한 맛 팥죽을 먹으며 선물 교환을 했다. 고무장갑, 영양제, 비누, 옷 등등 중에 나는 그림책 <새만금>과 <녹색평론> 188호를 내고 오 드 뚜왈렛을 받고 천 마스크와 강의 때 필요했던 판타롱 스타킹을 가져왔다.

웃음과 나눔 속에서 2024년 마지막 팽팽 문화제가 화이트 동짓날에 끝났다.      


팽팽 문화제팽팽 문화제

     

잠시 들른 평화바람 집에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열세 명이 나누어 먹었다. 언제나 풍성한 오병이어의 기적.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번지고 확장한다.      


서둘러 군산 터미널에 긴 머리 소녀를 내려주고 나포로 향했다. 완두가 해지고 십 분이면 가창오리 떼가 날아간다고 했다. 내가 주로 가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동쪽 철새관찰소 부근에 있었다. 이날 나는 애초에 팽팽 문화제 후에 나포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완두도 가창오리 떼를 보러 간다고 했다.

뛰지 않고 재바르게 걸었다. 왼쪽 강과 오른쪽 농지가 낮았다. 사이를 돋아 강둑 맨 위에 자전거 길을 낸 것이 새만금 시공방식과 동일했다. 강 따라 쌓은 둑은 괜찮을지 몰라도 바다를 막은 방조제는 맨 꼭대기에 길을 만들면 안 된다고 어디서 본 기억이 났다.


날은 흐리고 해는 벌써 사라졌다. 잠시 후 강 건너에서 시커먼 그물 같은 윤곽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려갔다 또 올라 사라졌다. 금강은 거침없이 흐르니 철새들이 50만 마리씩이나 와서 쉬었다 간다. 새만금이 틀어막고 있는 만경강과 동진강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러고 보니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0주기 순례했던 영산강도 하구둑으로 막아 놓았었다. 지류도 아니고 거대한 강을 바다와 닿는 곳에서 막는 인간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나포 가창오리 떼나포 가창오리 떼


새들이 더는 날지 않을 때 아니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때 거기 모인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안녕~”

그 인사가 새들에게 들릴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하는 인사로는 맞았다.

'2024년 안녕, 잘 가.'      


평화바람과 친구들평화바람과 친구들


지난해 11월, 평화바람 20주년 팽팽 문화제 때는 나 혼자 나포에 와서 텅 빈 강둑 위에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내 곁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새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혼자 어두운 강둑 위를 타박타박 걸어 내가 주로 찾는 그곳으로 갔다.

강바람은 칼바람처럼 차가웠지만 견딜만했다.  

강도 하늘도 땅도 어두웠지만 마음은 어둡지 않았다.

작년엔 집에 돌아와 뒤척이다 눈물이 터졌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금강금강


7월 말부터 중간에 사진전 때문에 두 달 빼고 매주 새만금과 전주에 갔다.

매주 그 긴 거리를 왜 갔을까? 처음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채우려는 마음이었다.

살살 페스티벌 때는 열심히 기록하려는 의무감이 강했다.

11월에 부안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전주에서 이어지고 있다.

“다음 주에 봬요~.”

인사하고 돌아가면 또 한 주를 기다렸다. 월요 미사가 끝나야 한 주가 끝났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눈에서 가까우면 마음에서도 가까워지는 게 맞다. 가끔 장을 볼 때마다 평화바람 생각이 났고, 무얼 살 때면 두 개를 사서 나눠주는 게 즐거웠다. 좋은 걸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그건 시켜서 되는 게 아니다. 그 근처로 가려고 일자리까지 구하다가 봉변당할 뻔할 정도로 나는 마음을 폭 빼앗겼다. 명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내게 사람보다 더 끌리는 명분은 없었다. 월요 미사에 매주 가다가 우정이 생겨 버렸다. 새만금 갯벌을 지키려다 친구가 생겼다. 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 식구(食口)다. 그렇게 나는 가끔 식구가 되었다.


딸기 셰프의 정찬 디너와 프리타타와 수제 빵이 있는 조식 그리고 더덕 바리스타의 모닝 원두커피가 종종 생각난다.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요?" 물어주는 완두의 발랄한 초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기에 안식년 끝나고 돌아온 오이의 위트 있는 말투가 더해졌다. 다들 주방에서 요리할 때 접시 위에 스푼과 포크를 놓으시고, 설거지 끝난 밤중에 그릇 정리를 싹 해 놓으시는 문정현 신부님이 계시기에 평화바람 공동체는 깔끔하고 질서 있게 유지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 함께 모인 식탁 위로 까르르 쏟아지는 웃음이 싱그러웠다.


가마우지는 원래 철새였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로 텃새가 되었다. 철새도 환경이 바뀌면 정착한다. 나도 따뜻한 환경을 만나면 정착할 수 있을까? 실은 알고 있었다. 언제든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장소에 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음을. 그 대상이 수라갯벌의 도요새든, 하제마을의 팽나무든, 그 옆에 사는 평화바람이든.

 

팽팽문화제는 매달 셋째 일요일이 지난 토요일에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한다.


https://youtu.be/2HYZxzumzbs?feature=shared



https://www.gilmokin.org/board_02/24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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