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2,09,16 월요 미사
12월 첫 월요일 오후 세 시. 부안 해창 갯벌이 아니라 전주 전북도청 앞으로 갔다.
‘새만금만이 현장이 아니라 책임 있는 이들의 의무를 요구하도록’ 모인 신부님들과 신자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송년홍 신부님은 35년 새만금 개발의 이유를 탐욕이라고 하셨다. 개발 욕망과 돈, 이익, 물질만능주의 등. 2050년 완공 예정이라는 새만금 사업은 들어간 돈보다 앞으로 들어갈 돈이 더 많은 사업, 전라북도민이 아닌 도지사와 정치권과 결탁한 토건업자들을 위한 사업. 그렇게 만들어진 새만금은 상시 해수유통을 해야 한다. 이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생태적 회개. 오염, 투기, 붕괴의 삶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걷고 일회용품 쓰기 않고 미사에 참석하는 것 등.
이날 미사 중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영정 사진을 들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맞았다. 부산에서 구미 한국 옵티칼 하이테크까지 열흘 동안 걸었던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이 뚜벅이 마지막 날인 전날, 바로 찾아간다고 했던 김제의 산재 사망 이주 청년이었다.
미사 후 아들을 잃은 엄마와 친구를 잃은 친구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 다섯 살에 몽골에서 한국으로 온 故 강태완은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26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군포에 살던 故 강태완은 인구소멸 지역인 전북에 취업해서 5년이 지나면 국적을 준다는 조건에 따라 김제 HR E&I 에 취업했다. 그런데 입사 8개월 만에 특수장비차량에 끼어 사망했다. 그리고 사측의 공식 사과 없음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익산 원광대학교병원 장례문화원에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전라북도에서 죽음을 본다. 갯벌도 사람도.
화요일 심야의 비상 계엄령, 수요일 새벽 해제.
목요일에 그를 추모하러 익산까지 갔지만 만나지 못한 채 돌아왔다.
이날은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 복원을 위한 미사라기보다는 윤석열 퇴진·탄핵 촉구 시국 미사였다.
12월 3일 심야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비상계엄령과 155분 만의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과 약 여섯 시간 만의 계엄 해제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역사를 45년 뒤로 끌어내린 모욕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행동하는 시민의식은 진화하고 있었다.
12월 12일 목요일 오후, 故 강태완의 유족과 사측이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는 13일 익산에서부터 14일 김제를 거쳐 경기도 군포로 올라와 치러졌다.
12월 15일 원광대학교 산본 병원
토요일에 국회의사당 앞 문화예술인 시국 기자회견과 북토크를 마치고 일요일 오전에 산본역에 내렸다. 때마침 흰 눈이 폴폴 내렸다. 하늘도 태완 군을 포근히 배웅하는 듯했다.
아담한 빈소 영정 사진 앞에 흰 국화를 놓고 몸을 둥글게 말아 엎드렸다. 일어나 마주한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어머니 옆에 외국에 있다던 누나가 서 있었다.
접객실에는 고인의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그의 작업복 옆 모니터 속에 살아있던 고인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10월 19일에 촬영한 영상의 고인 분량 풀영상이었다. 만 다섯 살에 한국에 왔으니 고인에게 한국어는 모국어였다.
내 옆에는 조근조근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두 주 전 전주 전북도청 앞에서 고인과 중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했던 이. 그이는 박사 논문을 쓰던 2018년, 군포에서 2년간 고인의 어머니와 고인과 함께했었다고 했다.
정말 착하게 살았던, 착하게 살 수밖에 없던 이주 아동, 소년, 청년이었던 고인.
고인은 체류 자격을 위해 자진 출국해서 몽골에 다녀와야 했고, 국적 취득을 위해 전라북도 소재 회사에 취업했고 애사심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취업 후 체류증을 받자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서 사고 일주일 전에 소원이었던 엄마 드라이브를 시켜주었다. 회사로 돌아가면서 크리스마스에 오겠다고 인사하고 갔다는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2024년 11월 8일이었다.
회사는 사고 원인을 고인의 ‘애사심과 책임감'으로 돌리며 공식적인 사과와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 수립안이 없었다. 그러나 전국에서 관심을 갖고 연대하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12월 10일, 유족과 합의했다.
고인은 약속대로 크리스마스 전에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애통하게도 갈 때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인을 오래 기억하겠다고, 건강하시라고 말했다.
어느새 바깥에는 눈이 그쳤다.
https://brunch.co.kr/@seventhstar/417
대림절 셋 째주, 세 개의 촛불이 켜졌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하다.”
아홉 분의 신부님 중 이가진 신부님이 강론하셨다.
위기에 강한 우리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태우 후보 시절부터 전라북도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새만금에 쏟아붓고 있다.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갯벌이 죽어가고 있다. 바다 생명과 철새들의 보금자리였던 그 땅이.
내측 수위 –1.5미터를 유지하는 방식은 생태계를 악화시키고, 갑문을 많이 열수록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발표. 해수유통이 되면 갯벌은 살아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 인간도 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사로잡혀 새만금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심어주신 양심 그리고 자신의 존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스스로 얼마나 복음화하고 있는지. 빛과 소금이 되어 희망을 간직한 존재가 되도록. 행동하는 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세 번의 미사로 당분간 전주 미사에 못 간다.
3주간 계절학기 매일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주 월요일 오후 세 시에 전북도청 앞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 복원을 위한 미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