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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이다

by 일곱째별


출근길에 휴대전화기를 보니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와있었다.

전화를 해보았다.

어제 콩이 미용을 해준 동물병원 미용 선생님이셨다.

콩이 괜찮으냐고 물어보셨다.


작년 5월 말 산책 중 콩이 앞다리 분쇄골절 사고 후 수술과 입원과 두 달간의 내 집 안 요양 후 7월, 다시 바깥으로 내보내면서 선물로 태어난 지 7년 만에 첫 미용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10개월 만에 무더위를 앞두고 다시 해 준 미용이었다.


미용 선생님은 콩이 털이 촘촘하게 엉켜서 가위 컷은 안 된다고, 결국 제일 굵은 6mm 이발기로 미셨다. 샴푸 후 다시 미용을 하시면서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그런데 옆에서 거들던 내가 주인집 개라고, 작년에 사고 나서 수술도 내가 시켰고, 목줄도 내가 몇 번이나 길이를 늘이며 사 준 거고, 간식도 비싼 구충제도 내가 사 먹인다고, 콩이 미용을 힘들어하시니 동물미용학원에 다니려고 했는데 기간이 너무 길고 학원비도 비싸서 못 다녔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오전 10시 반부터 시작한 미용이 정오가 지나며 선생님은 결국 사전투표도 점심 식사도 못 하셨다. 그런데 미용비를 깎아주셨다. 그리곤 오늘 아침, 미용 때문에 스트레스받았을 콩이가 걱정되어 전화를 하신 거였다.


"주인집 개라는 말에, 세상에 이렇게 고운 사람이 다 있나 싶어서 내가 고마워서 전화한 거예요."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 미용하시는 선생님이 내게 고맙다고 전화를 하셨다.


요사이 속이 정말 시끄러웠다.

오래전 일이라 잊으려고 했었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고통 중에 도움을 요청한 극소수의 믿을만한 사람들은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지만 선택과 결정은 내 몫이었다. 어쩌다 잠시 평온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다시 예전처럼 남몰래 눈물바람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절박하게 답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을 통해 나를 보게 하셨다.

고운 사람.


수업이 끝나고 영상 공모전에 수상한 학생 중 한 명과 출연자를 만나기 위해 세종보 한두리교 아래로 갔다.

마침 12차 미사를 드렸다.

학생을 다시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집에 돌아와 학교 온라인학습시스템에 접속했다.

출연자인 팀장님이 학생에게 전해주신 다큐멘터리 영상 링크가 다시 학생을 통해 내게 전달돼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되는 영상이었는데 재생해 보았다.

그러다 46분 55초 지점이었다.


https://youtu.be/mFL-fSpFdp8?feature=shared


46:55

바위가 말했다.


"왜냐하면 강을 막았어도

여니까 이렇게 회복이 돼요.

사람을 탓하지 않아요.

그리고 자기 모습을 잃지도 않거든요."


"그리고 자기 모습을 잃지도 않거든요."


나는 물이다.

나는 거대한 물이다.

나는 유유히 흐르는 광활한 물이다.


51:12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가 말했다.


"강은 정직합니다.

한 뼘이라도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강입니다.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려고 자기 욕망에 취해서

거짓말을 일삼던 정치인들이 강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낮은 데가 강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인 거죠."


"강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직한 강인 나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나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나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모습을 잃지 않는다.

나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병원 미용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나는 고운 사람이다.


주님은 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다.

전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의외의 방법으로

기가 막히게

알려주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는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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