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4~26 토일요일 전북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하제마을 팽나무
2025년 5월 24일 토요일 오후 세 시부터 한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하제마을 팽팽문화제.
일 년에 두 번, 5월과 10월에 하는 캠핑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지부 지도위원과 장영식 사진가와 차해도 한진중공업 퇴사자와 고공농성 500일에 구미에서 만났던 말벌 동지 셋이 참석했다.
문화제 시작 즈음에 김진숙 동지에게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상략) 수라의 마지막 장면에 절망인 듯 희망인 듯 작은 구멍 속으로 숨어들던 너, 흰발 농게. 바닷물이 막힌 게 13년이라 했다. 쩍쩍 갈라져 허옇게 말라버린 갯벌에서 넌 어떻게 견뎌온 걸까?
내가 풀 한 포기 없는 크레인에서 309일을 간절히 기다린 게 있었듯 박정혜가 불탄 공장 옥상 위에서 503일을 애타게 기다리는 게 있듯 어쩌면 생명은 기다림만으로도 쉬이 소멸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주먹보다 작은 너를 보면서 했다.
이제 곧 장마다. 인간들은 모든 걸 다 망쳐놓고 봄이면 산불이 두렵고, 여름이면 폭우와 혹서가 두렵고, 겨울이면 폭설과 혹한이 두렵다. 산불 피해자들은 가난한 농부들이었고 몇 년 전 장마에 장애인 언니와 어린 딸과 함께 반지하 셋방에서 빗물에 잠겨 숨진 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합원이었다.
말벌 동지들, 민주당 후보조차 새만금 신공항 건설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공약이고 그게 진보인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지키고자 하는 생명을 70년을 건너온 말벌 동지들이 함께 지켜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겨울을 점점 추워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눈부신 문명의 발전이 만들어낸 재앙. 내일모레 생일을 맞는 밤비 동지가 내 나이쯤이 될 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광장의 목소리들이 흰발농게의 평화에도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투쟁은 끝나지 않듯 흰발농게가 포기하지 않는 수라는 흰발농게의 것입니다. 큰부리도요의 것이고 칠면초의 것입니다.
이 싸움도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고맙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이어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1991년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여고 야고 보수고 진보고 싸그리 나쁜 놈들. 안 할 짓을 하면 나쁜 놈들 아녀? 어쩌자는 거여?
저 부안에서 군산까지 33.9km. 방조제 쌓아서 뭐 하는 거여? 막아놓으니까 거기다 농지를 만든다고? 이 멍청한 놈들아. 소금밭에다 농사가 되겠냐? 안 되지. 갯벌은 다 썩어가고. 뭇 생명들 다 죽어가고. 어쩌자는 거야?
할 수 없이 하루 두 번 해수유통을 한다. 멍청한 놈들아. 그걸로 되냐? 안 되지? 거기다가 무슨 국제 골프장을 만든다, 국제 카지노를 만든다, 태양광 단지를 만든다. 야 이 미친놈들아. 멀쩡한 갯벌을. 그렇게 엉뚱한 짓을 한다는 거, 해서 된 일 있냐? 아이고 작년에 세계 잼버리 대회를 한다고? 그 창피를 누가 몰라?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에라이 정말 창피나 떨고 그런 짓을 계속하고 있어?
우매한 전라북도민들, 거기서 무슨 돈벼락 맞는 줄 알고 그거 안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전두환 노태우한테 속아서 지금까지…… 용납할 수가 없어.
내 동생 문규현 신부, 성직자라는 사람이 해창 갯벌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해. 그래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아. 오체투지 그거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닙니다. 그래도 새만금산업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거야. 거기다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 거야. 아이고. 그런 미친 짓 왜 하느냔 얘기야. 보다 보다 볼 수가 없어.
시민활동가들이 세종시 국토부 환경부 앞에 천막을 쳐놓고 전주 전북지방환경청으로 옮겼어요.……그래서 내가 지난 3월 31일에 (그 앞에) 천막을 쳐놓고 지내요. 어찌나 더운지 금년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 돼요.……(그래도) 내가 끝까지 할 거요. 저자들이 그거 무시하고 할망정, 할 소리는 해야겠다는 마음인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거기서 지내고, 팽팽문화제는 토요일이거든요. 팽팽문화제는 빠질 수가 없거든요. 오늘이 쉰세 번째인데 한 번도 안 빠졌거든요. 앞으로도 빠지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팽나무처럼 버텨봐야겠다. 600년 팽나무, 고려 때부터 견디신 팽나무처럼. 새만금 해수유통 하라. 하네 마네 하는 그런 땅을 또 메꿔서 미군기지 확장을 한다. 활주로 더 만들어서 연결시켜서 만든다. 여러분 화 안 나요? (나요)
야금야금 여기까지 먹어오더니 갯벌 메워서 활주로 확장한다? 새만금 국제공항이야? 1846년도에 김대건 신부님이 쪽배를 타고 상해에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한 분이야. 그런 데야. 거기서 미군기지 확장하면 중국이 가만있겠다. 중국민항이 뜰 수 있어요? 중국이 받아줄까요? 거짓말하지 마. 미군기지 확장이야. 미군기지 확장은 하면 안 돼. 더는 줄 수 없어. 이게 우리 마음이에요. 진짜 분해서 못 살겠어요.
저는 미군기지 근처만 오면 이 등골에서 설사가 올라와. 꼼짝을 못 해요. 화가 그렇게 나요. 한 달에 한 번씩 그런 다짐을 해야겠습니다. 600년을 견뎌온 팽나무 앞에서 우리도 팽나무처럼 꿋꿋하게 서서 자주(自主)하고 외세의 간섭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다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의 공분을 달래듯 군산시립교향악단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주자 두 분의 감미롭고도 유쾌한 연주가 있었다. 일순 팽나무 앞에서 흥겨운 춤바람이 불었다.
격렬한 춤바람은 잔잔한 넬켄라인 댄스로 변하여 팽나무를 한 바퀴 돌았다. 모처럼 즐거운 에너지 소모 후 든든한 한 끼의 빠에야와 공룡 영길 샘의 연잎밥과 미역 국수와 들깨 수제비와 두부조림과 공룡 설해의 참외 샐러드 등으로 풍성한 식사를 했다. 거기에 내 상추도 곁들였다.
팽나무 앞에 삼삼오오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지금까지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이 김재주 택시 노동자의 510일인데, 6월 1일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동지 511일째예요. 그럼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이 되는 거예요. 그날 저는 뭐라도 할 거예요.”
내 말에 맞은 편의 김진숙 동지도 무얼 할까 고민하셨다. 곧이어 날은 어두워지고 해남의 나무가 팽나무 아래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며 노래로 공연했다. 그믐달이 가까워 적요하지만 따스한 밤이었다.
이어 공룡 설해가 준비한 팔레스타인 영화를 감상하기 직전이었다. 김진숙 동지의 야윈 어깨가 추위 속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움츠러들어 있었다. 나는 차 안에 있던 캠핑 의자를 조립해서 가져와 김진숙 동지에게 앉으시라고 내드렸다. 일 년에 하나씩 사 모은 캠핑 의자 둘 중 올 초에 산, 기약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고 싶던 그 의자를 야외에 펼쳐 누군가를 앉힌 건 처음이었다.
다음날 새벽 팽나무 앞에서 해남의 나무와 구미에 가기로 약속을 한 후, 5월 26일 월요일 오전 아홉 시를 기다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이지영 사무장에게 전화했다. 고공농성 511일, 국내 최장기가 되는 6월 1일에 해남의 나무와 공장으로 가겠다고. 그런데 잠시 후 사무장이 전화를 했다.
“페이스북 안 하시죠? 방금 김진숙 지도위원님이 6월 1일에 구미역부터 공장까지 희망 뚜벅이 하신다고 올리셨어요.”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