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2025년 5월 전주전북지방환경청 앞 천막농성
학교 특강으로 초빙한 강재훈 선생님을 모시고 전주로 갔다.
“신부님~”
천막 옆 문정현 신부님을 뵙자마자 신나게 불렀는데 아뿔싸 오후 세 시 미사 중이었다. 전주 전북지방환경청 앞에선 두 번째,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복원 기원 월요 미사로는 28회째였다.
강재훈 선생님은 2019년 청와대 앞 9일 기도 때 문정현 신부님과 문규현 신부님 사진을 한겨레 신문에 실으신 적이 있다. 물론 나도 두 분을 찍었지만, 선생님 사진이 실린 신문을 들고 가 두 분께 드리면서 그 사진을 찍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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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비하면 두 분 중 문규현 신부님은 눈에 띄게 노쇠해지셨다.
강재훈 선생님은 저녁 6~7시 선전전까지 계시다가 식사와 차를 드시고 밤 기차로 서울에 올라가셨다. 지나고 보니 지리산 나무 이후로 지인 초청 천막농성 연대의 시작이었다.
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느리를 태우고 전주로 갔다. 느린 만큼 매사에 여유 있는 느리는 신부님의 서각을 둘러보더니 후원하겠다고 했다. 숱한 작품 중에서 그이가 선택한 작품은 특이하게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파인텍 투쟁 때 20여 일, 김진숙 복직 투쟁 때 48일 단식한 이답게 행동하는 신념이 드러났다.
점심 선전전 후 소풍처럼 정희 씨의 도시락을 먹고 화장실에서 느릿느릿 설거지하던 중에 완두가 뛰어오셨다. 기차 놓친다고. 우리도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기차 시각을 완두가 챙겨준 덕에 나는 쏜살같이 차를 몰아 느리를 전주역에 내려주었다. 그리도 느린 느리는 2분 만에 기차에 올라 무사히 서울로 갔다. 하지만 급하게 가는 바람에 서각을 챙기지 못해 다시 전주에 오기로 했다.
제29차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복원 기원 월요 미사에 갔다.
미사 후 간디학교에서 왔다.
학생들의 춤과 노래에 이어 저녁 선전전 내내 외치는 함성은 젊음의 열기가 무언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대전 탈핵신문 읽기 모임 후 전주로 갔다. 제30차 월요 미사가 시작되었다. 서각 근처에 소라와 조개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수라 갯벌에서 온 것일 터.
장난기 가득한 완두의 요청으로 오이와 나와 아리오나는 땅바닥에 누워서 부동의 양말 홍보 영상을 촬영했다. 누가 이렇게 재미나게 노는 우리 나이를 감안할 수 있을까.
아~ 수라 장터. 전문 시위꾼 평화바람은 작명의 달인인가. 이름도 참 잘 짓는다.
전주 전북지방환경청 앞에 장터가 섰다. 헌 옷 몇 가지 대충 있는 아나바다일 줄 알고 갔는데 웬걸 남원 인월에서 온 장인과 딜위의 공예품, 도자기 공예, 친환경 주방용품, 헌책과 헌옷, 광주 아시아 목판화연구소와 설치미술팀, 대안학교 솟대와 팔찌 만들기, 채식 김밥과 메밀전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가득했다.
음~ 나는 지난 부동의 양말 두 켤레에 이어 대나무 칫솔과 고래와 북극곰 배지와 도자기 꽃병과 종이컵 크기의 도자기 컵을 샀다. 컵 하나는 주인이 좋은 일 한다고 선물로 주고, 하나는 잊었던 커플 병이 도져서 샀다.
오후 다섯 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공연에는 팽수의 여는 소리, 광주 나무의 친구 강숙향, 캄캄밴드, 까만 개 흑당이와 함께 온 오지은과 나무, 인월 장인의 대금과 나무의 연주와 노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동의 중창단의 노래가 있었다.
모두 함께 노래하는 즐거운 시간으로 수라장터는 끝났다.
아~ 수라 장터는 아수라 판이 아니라 아~ 수라갯벌을 지키기 위한 장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