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
2025년 11월 마지막 날, 향적산에 올랐다.
11월에서 12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사이를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치유의 숲 은행나무는 노란 잎을 본 적도 없는데 그새 이파리가 하나도 남지 않고 떨어졌다.
신당 근처 백구는 여전히 점잖게 사람이 와도 짖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고 지긋이 내려다보다 말았다.
바닥에는 낙엽이 가득했다. 산길은 미끄러웠다. 해남 달마산 땅끝천년숲옛길이 그랬듯이.
경량 크로스백에 텀블러 하나 넣어갖고 출발했지만,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 직전 계단으로 이어진 길 아래 인부 두세 명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한 번 지나치고는 으스스 음침한 골짜기 산당이 있어 피해 다니던 길이었다. 다음에 왔을 땐 그 길이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리 궁금하진 않았지만 일단 사진을 찍어놓았다.
국사봉에 올랐다.
내가 늘 가던 곳 쪽으로 출입금지 줄이 설치돼 있었다.
건너가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사람이 산에 금을 그을까?
어린 아들과 젊은 아빠가 흥겹게 올라왔다.
얼른 자리를 떠 거대한 바위를 넘어 향국암 쪽으로 내려왔다.
300미터 가파른 그 길에서 누굴 마주친 적은 여태 한 번도 없었다.
정상 바위 부근에서 소나무 가지 하나 떨어져 있어서 크리스마스트리를 할까 하고 손에 들고 내려왔는데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었다. 기껏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 손만 사용하며 내려와서는.
산에 있는 것들이 인간 세상에 들어가면 그만한 멋을 내지 못할 듯, 살던 곳에 묻히는 게 나을 듯해서.
중간에 산길로 다시 접어들지 않고 하산했다.
쌓인 낙엽으로 길이 보이지 않았다.
비석 없는 무덤들에 표식이 되어 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땅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앞으로 향적산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인도에서 800미터를 올라가 주차장에서 장비를 내려놓았다.
9킬로미터에 두 시간 30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무엇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글쎄 약간의 다리 근육이 생겼을까.
그래도 분주하면서도 쓸쓸한 11월 마지막 날, 가을산을 몸으로 느껴서 좋았다.
그렇게 겨울을 맞는다.
이렇게 열 번째 향적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