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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석 Oct 20. 2017

이직을 결심하다 #6
(이제, 이직은 필수-4)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들의 전략적인 대안, 이대리의 이직 이야기)

4) ‘지금 회사를 떠날 수 있다’라는 생각이 가져오는 관점의 변화

 “선배와 대화하면서 저는 그동안 늘 회사를 중심으로 생각해왔던 것을 알게 되네요.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평생 있을 자리가 아닌데 현실의 순간순간마다 회사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그동안 회사 중심으로 생각해 왔던 이유가 뭘까?”

 “그야 처음부터 제가 어떻게 든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회사에 취업하려고 했지, 회사가 절 필요로 해서 채용한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취업하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결정적으로 회사에서 저는 월급을 받고 있고,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거죠.”

 “회사가 너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그야 당연하죠. 그러니 갑을관계란 말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동등한 지위를 명시해 놓고 있어.”

 “늘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무엇보다 인사고과라는 것이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더군요. 일정한 주기에 따라 인사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요. 회사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월한 위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또 있을까? 회사를 중심으로 생각해 왔던 이유가.”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은연중에 어떤 대상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것 같아요. 특히 군대라는 제도가 있어서, 군 복무 기간 내내 국가에 대한 충성을 주입받죠. 회사에 취직을 한 이후로는 그 대상이 회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선배는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동감하게 되네. 따지고 보면, 회사에서 신입사원 연수부터 시작해서 각종 연수들이 회사에 대한 충성을 제고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충성이라는 단어 대신 헌신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서.”

 “그리고 열정. 열정을 다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열정이 없으면, 마치 무언가 크게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회사에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하면서, 열정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막연했지만, 제 꿈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열정에는 방향이 중요해. 그리고 그 열정은 네 삶을 위한 방향으로 향해 있어야 했고.”

 “맞아요, 그만큼 회사를 중심으로 살았던 거죠.”

 “근데, 너 정말 생각이 많았구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늘 답답했던 생각들을 풀어낼 상대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서 거절을 못했던 것 같아요. 상사의 요구나, 주위의 요구에.”

 나는 잠시 유리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다 말을 했다. 

 “팀에서 문제가 발생할수록 부서장님은 저에게 책임을 맡겼어요. 그러다 보니 차츰 전 팀에서 키맨(key-man)으로 통했죠. 그러면서 주위 직원들도 업무 관련된 일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그것들을 모두 묵묵히 감당했던 거구나.”

 “예, 정말 열심히 했죠. 저는 그것이 헌신이고, 열정인 줄 알았어요. 물론 인사 고과도 늘 신경을 썼어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거든요. 부서장님은 저의 평가자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또 주위 직원들이 업무를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부담은 되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선배는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을 했다. 

 “물에 빠지거나, 불이 나면 늘 소방대원을 찾잖아. 그런데 소방대원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래.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함께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사람을 구하러 갔다가 같이 위험해지면 안 되는 거지.”

 선배는 말을 이었다.

 “나는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자신을 먼저 보호하지 않고서는 남도 도울 수 없어. 이것은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원칙이기도 해. 

 자신의 업무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 그리고 동료를 배려하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동료보다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야.”

 “동료의 요청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을까요?”

 “네 스스로 허용 범위를 설정해야 해.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와 관계는 소중해. 그래서 관계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은 필요하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남는 시간을 남에게 할애해야 하는 거야.”

 “나를 위한 시간이라면, 자기 계발이나 전문성을 향상하기 위한 학습이 되겠네요.”

 “그렇지. 나의 가치를 높이는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해. 좋은 회사는 직원의 가치를 성장시켜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회사지. 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지금 다니는 회사를 위한 것이기도 해. 그리고 다른 직원을 돕는 것은 그다음이 되어야 하지. 

 무엇보다 상사의 요구에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많은 업무를 부담시키고도 그것을 막상 해내면, 수고했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해서 업무를 추가하더라. 내 경험이기도 하고, 국내에는 이런 기업 문화를 가진 회사가 많은 것 같아.”

 “상사의 요구는 정말 거부하기 힘들어요. 때로는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업무를 과중하게 부담하더라도 그냥 따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해. 공손한 태도를 가지고, 자신의 업무량과 상황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관계는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을 때 건강한 거야.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면, 결국에는 파국만 있을 뿐이야.

 네가 그토록 신경 쓰고 있는 인사평가를 할 때는 명확한 평가 기준이 있어. 마음에 안 든다고 터무니없는 평가점수를 줄 수는 없다고.”

 “그래도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나는 일부러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선배는 나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쉽지 않지. 그래서 ‘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상사에게 너의 의견을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한다면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거야. 그런데 만약 네가 언제든지 그 직장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봐. 그렇다면 너의 의견을 정당하게 개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될까?”

 선배의 말이 옳았다.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참는 것보다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지.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비단 사람과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거야. 회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야. 회사와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해. 그리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만큼 거리 두기도 쉽지.”

 “회사와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늘 회사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만 해왔어요.”

  "회사와 거리를 두는 만큼, 그만큼의 시간이 생길 거야. 그 시간을 철저하게 너를 위해 사용해 봐.”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이기적이 되었다고 하지는 않을까요?”

 선배의 표정이 굳었다. 굳은 표정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네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그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늘 다른 직원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신경을 쓰면서 생활해 왔다. 그런데 선배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업무를 문제없이 진행하고 있고, 다른 직원에게 업무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데 뭐가 문제 되는 거지? 

 무엇보다 그들이 너를 찾는 것은 네가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야. 친한 관계가 아닌, 필요에 의한 관계. 그런 관계가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그런 건가요.”

 착잡했다. 다른 직원에게는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나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언제나 스스로 고민해서 풀어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씀해 주시니, 알 것 같아요. 저는 결국 다른 사람이 저를 인정해 준다는 만족감을 즐겼던 것이군요.” 

 나는 풀이 죽은 채 말했다. 

 “얼마 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이 관계에 관해 말씀하시는 프로그램을 SNS에서 본 적이 있어. 그분 말씀이 사람 사이의 관계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유대인 속담에 있듯이 내가 아무리 행동을 잘 하더라도, 10명 중 7명은 크게 관심이 없고, 2명은 싫어할 것이고, 나머지 1명만 좋아할 것이라고 하시더라. 

 회사도 마찬가지야. 어디를 가든 대부분은 나의 행동에 크게 관심이 없을 것이고, 동시에 나를 싫어할 사람은 반드시 있을 거야.”

 “솔직히 충격이네요. 전 관계도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조언을 하시더라.

 사람이 좀 편히 살려면,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라고 말이야.”

 선배는 나를 부드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오프라 윈프리도 남들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지 말라고 하더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

 다른 사람의 시선은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관계에서 있어서는  ‘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건강하냐가 중요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향상하는 거야. 회사라면 더욱 그러하지.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필요하기 때문이라도 자연스럽게 너를 찾게 될 거야.”  

 “지금의 저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근무하던 회사를 떠나보면 헌신이나, 회사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은 공허한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게 돼. 떠나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가지고 가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야. 자신의 역량과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지.

 이제, 지금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생활해 봐. 회사 중심의 시각에서,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삶으로 관점을 변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선배와 대화하다 보니 막혔던 문제들이 풀려가는 느낌이 들어요. 동시에 다른 숙제를 해야 할 것 같고요.

 지금 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니, 그동안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시각들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계속되는 숙제를 해결하는 것 아니겠니? 적어도 문제를 인지했다는 것 자체가 변화가 시작된다는 의미겠지.”

 선배는 직장에서 만났던 분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한 분 계셔.”

 “승진이 정말 빠른 분이셨나요?”

 “전혀 아니지. 연차에 따라 승진을 하시기는 했지만, 승진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전혀 안 하시는 분이셨어.”

 “그런데 뭐가 부럽다는 거죠?”

 “이 분은 집안이 큰 부자셨어. 그야말로 회사는 다녀도 그만, 안 다녀도 그만이었던 거야.”

 “너무 웃기잖아요. 부자라는 것이 부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직장 생활에서 모범이 되는 분은 아니잖아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정말 부러웠던 것은 이 분의 태도였어. 상사에게 크게 깨져도 웃고, 업무가 갑자기 긴박하게 진행되는 힘든 상황에서도 웃고. 당연히 직원들에게는 늘 여유가 있었지.” 

 “그야 그분은 회사는 언제 그만두어도 되니 그런 것이겠죠.”

 “바로 그거야. 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마음의 여유가 생겨. 사람을 대할 때나 업무를 하게 될 때도 한결 다르지. 이것은 떠난다고 행동을 함부로 하겠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야. 

 때로는 업무로 정신없이 바쁜 시기가 있잖아. 그런 가운데서도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활력을 갖게 해.”

 “지금의 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군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느새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면, 주변 사람들도 새롭게 대할 수 있을 거야. 특히 너희 차장이나 수석 같은 사람들을 대할 때도 한결 편해지게 되지.”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사람은 변하지 않아. 

 변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성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야. 네가 변해야 해. 그리고 목적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야. 다른 사람의 어떻게 행동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야 해.”

 “사실 회사에 가면 그들과 부딪치지 않더라도, 은근히 긴장되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났어요.”

 “긴장이 계속되는 인간관계보다 사람을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은 없지. 흔히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기를, 상대방이 부족하면 품어주고, 비슷하면 함께 일하고, 더 성숙했으면 배우라고 하잖아.” 

 “저도 그렇게 하려고 수도 없이 노력했지만, 잘 안되더라고요.”

 “나는 직장 생활에는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이 어떤 거죠?”

 “기계적인 관계. 도저히 소통이 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어쩔 수없이 일을 해야 할 때는 기계적으로 대하는 것이 필요해. 바로 너의 감정과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

 회사에 다니는 목적이 무엇이겠어? 자신의 전문성을 기르고, 역량을 발휘하면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거야. 

 그런 사람들과 친하기 위해 회사에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비하지 않도록 최대한 기계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   

 "그래요. 계속 함께 근무할 것도 아니고, 제가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능할 겁니다.”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대답을 했다. 늘 회사만 생각하면 맴돌던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지 조금은 감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야.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외부의 자극에도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야.” 


5) 이직은 도피가 아닌, 전략적인 선택이다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들은 정말 다양하겠지. 그중에서도 회사에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거나, 상사와의 관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동기들이 몇 명이 있는데, 결국에는 상사 때문이더군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 

 "물론 회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거나, 침몰하고 있다면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겠지.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직은 절대 탈출구나 도피수단이 아니라는 거야. 지금 부서 내에서 처한 상황, 혹은 얽힌 관계들 때문에 벗어나려고 이직을 해서는 곤란해."

 "그래도 기회만 있다면 다른 데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직한 회사가 천국일 것이라는 보장이 있어?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선배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 같았다. 선배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 이직에 성공해서 두 번째 직장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였어. 그 당시 전사 차원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거야. 특히 내가 속했던 팀의 담당 업무 영역에서 유독 많은 사고들이 터졌어."

 "그런 일이 있으셨어요?"

 "그런데 부서장님은 어느 순간부터 팀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나를 불러서 질책하곤 했어. 난 그때 직장생활 3년 차인 행원에 불과했다고. 이직해서 입사한지는 겨우 5개월이 지났을 뿐이었고."

 "아니, 고작 3년 차 행원이면 책임자일 수 없잖아요?"

 "내 위로 팀장이 있었고, 그 위에는 파트장이 있었어. 난 그저 팀원이었고."

 "그런데 어떻게 부서장은 그럴 수가 있어요?"

 "이해가 도저히 되지 않지? 나도 그랬어. 

 알고 보니 부서장이란 사람은 참 소심한 사람이었나 봐. 문제는 계속 발생하는데, 팀장이나 파트장에게 싫은 소리를 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 더구나 해결방안도 제시 못하는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기 싫었겠지. 

 그때 눈에 보였던 직원이 나였던 것 같아. 아예 신입도 아니고, 직급도 만만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년 차 직원에게 그러는 것은 너무 하네요. 지금 저보다도 어려요. 더구나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잖아요."

 "순전히 자신의 답답함을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아." 

 늘 여유가 있던 선배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의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4~5차례 부서장실에 불려 갔을 때였을 거야. 최대한 공손하게 생각하고 있던 말씀을 드렸어. 최대한 공손하게."

 "뭐라고 말했는데요?"

 "부서장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어. 지금 저는 지금 아무런 권한이 없으니, 그런 말씀은 저희 팀 팀장이나 파트장에게 하셔야 해결이 될 것 같다고."

 "그래서 부서장은 뭐라고 했나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 얼굴은 굳었고. 근데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어."

 "더 큰 문제요? 여기가 끝이 아니고요?"

 "부서장이 내가 건방지고 불손하다는 말을 여기저기에 하고 다니는 거야. 그런데 부서장 직위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거라 상당히 파급력이 있더군."

 선배는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나는 같이 웃을 수 없었다. 분명 다른 상황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회사에서 겪고 있는 현실과 겹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이직이 도피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생생하게 와 닿네요. 이직을 해서도 이상한 상황에 휘말릴 수도 있는 거군요, 여우를 피했는데, 호랑이를 만날 수도 있겠어요. 이직이 도피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생생하게 와 닿네요. 그러면 그 당시 선배는 어떤 결정을 하셨나요? 이직을 하셨나요?"

 "아니. 난 그 당시는 이직하지 않았어. 그 회사로 이직하려고 했던 목적이 글로벌한 금융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다는 거였거든."

 불현듯 선배와 처음 독서모임에서 만났던 시기가 그 회사에 다닐 때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데 선배, 저랑 독서모임에서 만났을 때가 그 회사 다닐 때 아니었어요? 그 당시 선배는 상당히 승진을 빨리 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그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야. 그리고 승진도 다른 사람보다 빨랐던 것도 맞고."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승진이 빠를 수가 있었어요?"

 "약 8개월 후에 부서장이 결국에는 좌천되었어. 새로 오신 분은 업무 능력도 탁월하시면서, 상황을 공정하게 보시는 분이셨지."

 "정말 다행이네요. 그분이 선배를 알아보신 거군요."

 선배는 그 말에 어색한 표정을 보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직을 선택할 때의 원칙이 세워지더군."

 "어떤 원칙이죠?"

 "이직을 선택할 때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거야."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지금 본인의 회사 생활을 구성하고 있는 요인들을 모두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야. 회사 생활을 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뭐가 있을까?"

 "우선 연봉이 있겠죠. 어쩌면 월급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복지 혜택도 있겠고."

 "직원 개인의 성장 가능성도 중요한 요인이지. 업무에 대한 만족도 중요하고. 또 동료와의 관계, 상사와의 관계도 있어. 일과 생활의 균형도 있지. 또 본인만이 생각하고 있는 특별한 목적도 있을 거야. 이러한 것들을 각각 따로 생각하지 말고, 모두 함께 묶어서 생각해 봐. 이 모든 것을 별개가 아닌 패키지라고 생각하라는 거야."

 "선배,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만약 상사와의 관계가 힘들더라도, 다른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서 이직을 결정하라는 의미인 거죠?"

 "그래, 맞아. 회사 생활은 패키지인 거야. 회사 생활을 하는 이상 각각의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함께 떠안고 가는 것이지. 살아있기 때문에 때때로 아픔이 있듯이,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제도 발생하는 거라고 생각해야 해. 다른 요인들에서 충분히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한 요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오히려 가치 있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어."

 "이직은 목적이 분명해야겠어요."

 "그래, 이직은 자신의 인생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 되어야 해.”

 선배는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회사 재직 기간이 짧은 것은 경력에 매우 좋지 않아. 사회생활 초기라면 용납이 되겠지만 한 회사에서 업무를 익히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은 필요하지. 이직을 선택할 때는 근무 기간도 감안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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