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꿈꾸는 직장인들의 전략적인 대안, 이대리의 이직 이야기)
"나는 회사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 금융 분야의 전문 지식들은 물론 금융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었어.
무엇보다 평범한 은행 영업점 직원에서 출발하여 4차 산업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회사 덕분이었다고 생각해.
그뿐만이 아니야. 인간관계가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었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었어. 그리고 다양한 연수와 교육 기회도 많았지. 모두 학교 다닐 때는 상상도 못 하였던 일들이야.
이건 아마 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회사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 내 분야의 다양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만큼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회사는 직원의 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맞아. 회사는 직원 편이 아니야. 부당한 일도 많이 발생해.
동시에 회사에서 나를 만들어 갈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어. 전문성도 기를 수 있었지. 지금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회사 덕에 가능했다고 생각해."
"맞아요, 회사생활에는 양면성이 있는 거 같아요."
선배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어. 그리고 그 선택은 회사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회사에 있으면서도 '나'라는 주체로 살 수 있어야 하지."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충분히 동감은 되었다. 하지만 풀리기 힘든 커다란 답답함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저에게 월급을 주고 있어요. 월급을 받고 있는 한, 회사에 매여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하죠. 그리고 제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막말로 회사에서 먹고살고 있어요.
회사원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사 속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조직에 휘말려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네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나도 회사 생활을 할 때, 초기에는 동일하게 생각했어. 회사원이라고 하면, 회사에 매여 있는 존재임에는 분명하지.
하지만 여러 번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면서, 회사에 대한 관점 자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어."
"회사에 대한 관점이 변한다고요? 이것이 선배가 말하는 이직의 의미인가요?”
“그래, 회사에 대한 관점의 변화. 그것이 중요해.
관점이 변하면 회사에 다니면서도 조직 논리 속에서 벗어나, '나'라는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
그러한 관점의 변화는 지금 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이직을 생각하면,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직을 몇 번 하게 되면, 지금 다니는 이 회사는 내 인생에서 계속 머물 곳이 아니라,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언제든 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직장 생활에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
선배는 커피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요즘 사회적으로도 창업 열풍이야. 네가 만약 창업을 하고 싶다면 적극 권하고 싶어. 하지만 확실한 아이템이 있어야 해. 그리고 함께 할 사람도 필요하지. 깊게 고민하지 않고, 성급하게 뛰어드는 것은 매우 위험해. 지금도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많아?
때로는 직장에 다닌 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당장 뛰쳐나가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해.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달라. 그리고 인생의 과정도, 적성도, 시각도 모두 다르지.
지금 인생의 좌표를 인식하면서, 하루하루에 충실하다 보면 마음이 이끄는 새로운 길이 있을 것이라 믿어.”
대화를 하면서, 선배의 이직 경험을 듣고 싶었다.
“선배는 여러 번 이직을 하셨잖아요? 무엇보다 선배의 경험을 듣고 싶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사를 네 번 옮겼어. 그러니까 이직은 세 차례 한 거네. 차례로 국내은행, 외국계 은행, 공기업, 대기업 순으로 근무를 했지. 다양한 문화와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어.”
“이직하실 때마다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던 거죠?”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어.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직은 나를 전문가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되었어.”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말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이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첫 직장은 국내은행 영업점이었어. 신입 공채로 입사했지. 금융인이 되기로 한 이상 국제적인 금융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경험해 보고 싶었어. 동시에 외국계 회사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 그리고 2년을 영업점에서 근무했는데, 이제는 은행 본사에서 일해 보고 싶었어.
그것이 첫 번째 이직이 되었지.”
선배는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이직은 스마트뱅킹에 관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거였어.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직에 대해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 승진도 했겠다, 나름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스마트폰이 갑자기 출현하고, 손 안에서 은행 업무 대부분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정말 이게 뭔가 싶었지. 호기심도 컸고.”
“선배야 말로 내부 공모를 통해 부서 이동을 해 볼 생각은 없었어요?”
“내부 공모 좋지. 그럴 수만 있다면 분명히 지원했을 거야.
그런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스마트뱅킹이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았던 터라, 은행 내부적으로 부서를 이동할 기회도 없었어.”
“그러면 세 번째 이직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금융 산업의 커다란 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4차 산업과 관련된 기술을 금융 분야에 융합하는 일은 해 보고 싶었어. 또 그동안 내가 쌓은 업무 경험과 역량이 시너지를 발휘할 것 같았고.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서는 4차 산업 관련 기술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어. 그래서 세 번째 이직을 하게 되었지.”
“선배는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을 수동적으로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갔네요. 그 점이 부러워요.”
진심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직장에 처음 취직을 할 때만 하더라도, 내가 이직을 여러 번 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어. 공채였으니까, 지금의 너처럼 계속 그 회사에 있을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이직을 여러 번 하게 되었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얻는 것이 많았다고 생각해.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회사에 대한 관점이 변하는 것 외에도 이직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았다는 건가요?”
“그럼. 이직이 직장 생활의 답이 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그렇다면 이직을 통해 어떤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거죠?”
신입 사원 연수를 받으면서, 입사에 성공한 우리 동기들이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를 확인받는다. 그리고 지금 입사한 이 회사는 우리의 헌신과 노력을 다할 만한 가치 있는 회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연수를 마치고 터질 듯이 부풀었던 자부심은 회사 생활이 계속될수록 점점 사그라져 갔다.
그럼에도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회사의 가치가 곧, 나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건네주는 회사의 명함을 통해 사회 속에서 존재를 인정받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선배는 그동안 회사에서 찾아 헤맸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말해 주고 있었다.
"요즘 직테크라는 단어가 새로 생긴 것을 알고 있니? 국어사전에도 신조어로 등재되었는데."
"직테크라는 단어는 들어봤어요. 자신의 전문성을 높여 연봉을 높이고, 이를 위해 경력을 관리하는 일을 뜻하죠."
"직장인에게 이직은 효과적인 직테크 수단이야.
우선 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고 싶어. 이직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알아 갈 수 있었어.
자기계발의 주요 동기가 되기도 했고.”
선배는 말을 이어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향해 나갈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 바로 그것이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이지.
나 또한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야.”
“사회생활을 해 보니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경제연구소를 운영하시는 선대인 소장님이라는 분이 계셔. 최근 저서인 [일의 미래]에서 이제는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더라.”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으라는 의미가 뭔가요?”
“지금까지는 직장(職場)이 중요했다는 거야. 일을 할 수 있는 장소, 회사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제는 산업과 사회 구조의 변화로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자신만의 직업(職業)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어. 공간으로서의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에도 가더라도 살릴 수 있는 자기만의 업무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거지.
이 분의 말씀에 적극 동의해.
지금은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변화해야 해. 전문성을 길러 ‘나’를 브랜드화하면서, 자신만의 직업을 만들어 가야 해. 그렇게 해야 다가오는 위기들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직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거야.”
어느덧 선배의 말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제는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경험하게 된 빠른 변화들을 보면서 절감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선배의 말대로 이직을 할 수만 있다면, 전문성을 기르기에 효과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 내에서도 사내 공모라는 제도가 있어서 원하는 부서에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열려 있기는 하지만, 매우 제한적인 경우가 많더군요.”
“회사 입장에서는 해당 업무에 맞게 직원을 훈련시켰는데, 다른 업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을 거야.
무엇보다 인사권은 어디까지나 회사가 가지고 있어. 직원은 싫던 좋던 받아 들어야 해.
하지만 이직은 내가 원하는 분야의 업무를 선택하고, 지원하여 그 업무를 하게 되지.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을 하는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선택하는 거야.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내가 가져오고 있음을 느끼게 되더라. 내 삶의 권한을 내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야.”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성과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선배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장난스럽게 물었다.
“너 혹시 금융위기라는 단어는 들어봤냐?”
“그럼요, 2008년에 발생한 사건이잖아요. 그 당시 저는 군대에 있었지만, 그래도 알 것은 다 압니다.”
“금융위기 때 파산한 외국계 투자회사가 있었어. 내가 잘 알던 분이 그 회사에서 근무했었거든. 미국 본사가 파산했으니, 한국 지점은 청산 절차가 진행 중이었지. 걱정이 되어 저녁이라도 사드릴까 싶어 찾아갔어. 그랬는데 그 당시 그분의 반응을 잊을 수 없어. 너무 덤덤하신 거야.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니던 회사가 파산해서 청산중인데요?”
“인생의 예기치 못한 변화 앞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는지 싶더라. 그리고 나도 이 분처럼 해야겠다고 결심했지.
물론 금융투자 업계는 이직이 잦은 특성이 있기도 해. 하지만 그때는 금융업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었어.
그 상황에서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이직을 통해 전문 경력을 쌓아 오셨고, 그만큼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해.”
지금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에 관한 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다.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 예상치 못한 커다란 변화에서 대응할 수 있겠군요.”
“물론이지. 뿐만 아니라 이직을 준비하고, 또 이직을 해서 새로운 직장에 가면서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변화를 연습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선배는 잠시 생각을 하다, 무릎을 치며 말했다.
“내가 이것을 깜빡할 뻔했다. 이직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어. 어쩌면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연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야.”
“그거야 말로 바람직하네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 거라,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겠지.
독일에서는 이직이 많은 직장인들의 연봉 인상률이 더 높을 뿐 아니라 승진에서도 차별이 없어. 미국의 경우에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더라. 평생 연봉을 산정할 경우, 같은 회사에서만 근속한 직원들은 이직을 한 직원들보다 연봉이 50% 이상 낮다는 통계가 있어.”
“50%면 절반 아닌가요? 대단한 차이가 나는 거네요.”
나는 깜짝 놀라 대답을 했다.
“이직 횟수는 평균 15차례 정도 된다고 하더군. 나만 해도 주위에서 이직을 많이 했다는 소리를 듣는데, 미국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야.
이제는 많이 달라질 거야. 미국처럼 이직이 자유로워지고, 이직을 잘하는 사람이 연봉도 많이 받게 되겠지. 높은 연봉과 더 빠른 승진,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서 이직을 하는 거야.”
“선배, 이제 완전히 설득되고 있어요.”
선배는 그 말에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내 회사에서 이직이 더욱 자유롭게 확산되면 좋겠어. 이직이 자유로워지면, 회사에도 여러 가지 이익이 있다고 생각해.”
“책에서 읽었는데, 조직이든, 문화이든 새로운 것들이 많이 섞여야 발전을 한다고 했어요. 저는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이제는 너도 완전히 공감하고 있구나.
이직 문화가 확산되면, 회사들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 다양성이 존중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확산될 거야. 그리고 조직 내 부정적인 요인들보다 성과가 강조될 거야.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그럼요, 기회만 되면 가서 일하고 싶은 곳인 걸요.”
“실리콘밸리에서 많은 혁신이 나올 수 있는 커다란 요인 중 하나로 자유로운 이직을 거론하더라. 미국의 52개 주 중에서 캘리포니아주에서만 경쟁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경쟁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더군.
이직이 보다 자유로운 곳일수록 더 많은 혁신과 발전이 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