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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석 Oct 18. 2017

이직을 결심하다 #2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들의 전략적인 대안, 이대리의 이직 이야기)

3) 이대리의 이야기

 커피전문점에 들어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한동안 말없이 밖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마음도 편했다. 

 선배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을 걸었다.

 “너, 회사 생활은 문제없니?”

 “아니, 왜요?”

 선배에게 우울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사람에게 내 기분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산에서 만나서 내려오는 동안 나에게 많이 이야기를 했지만, 그중 회사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어. 그 회사에 지금도 다니고 있고, 대리가 되었다는 말 뿐이었지. 그것이 이상했어. 지금 네 시기는 싫던 좋던 회사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을 때잖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할지, 또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로 몰랐기 때문이다. 선배는 다시 물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재미있어?”

 순간 배에서부터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는 기분이 들었다.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면서 대답을 했다. 

 “일이 재미있으면, 월급을 왜 주겠어요. 일이 재미없으니, 월급을 받는 거 아니겠어요?”

 나도 모르게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답해 버렸지만,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계속하기 힘들지.”

 ‘의미’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와 사람에 대한 실망감, 현재 상황에 대한 우울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감정들이 휘몰아쳐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격한 감정이 되어 선배에게 모든 것을 토로해 버렸다. 

 “올해로 5년을 일했어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일했어요. 항상 원칙대로 일했고, 성실하게 생활했습니다. 늘 제 몫 이상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러다 보면 보상보다는 더 큰 책임을 떠안게 되더군요. 이것까지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상사가 그렇게 요구를 하는데, 그것을 거부할 수 없더군요. 말로는 제가 능력 있어서 책임을 더하는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지난 승진에서는 누락되어버렸어요.

 더구나 회사는 어떤지 아세요? 최근 1년 전부터 계절만 바뀌면, 구조조정 이야기가 돌고 있어요. 진짜인지는 모르겠는데, 인사 업무를 전문으로 했던 사람이 사장으로 부임하시면서 그런 소문이 신빙성을 얻고 있단 말입니다. 회사를 분할해서 매각해 버릴지 모른다, 자회사와 합병할지 모른다는 등 이런 소문을 접할 때마다 일할 의욕이 상실되어 버립니다. 

 더구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저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입 때부터 IT솔루션을 기획하고, 그 솔루션에 대해 영업하는 업무를 담당해왔습니다. 처음 1~2년은 나름 보람이 있었어요. 새로 배우는 것도 많고, 기획과 영업을 함께 한다는 것에 나름 자부심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제 업무가 한 마디로 전문성이 없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IT 개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회사 분위기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상품을 기획하기보다는, 기존에 나와 있는 기술을 개선해서 눈앞의 매출을 올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요. 배울 것이 없습니다. 이제 신입도 아니고 전문성을 쌓아가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떤 경력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만 늘고 있을 뿐입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해 버렸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느끼고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선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를 내 넋두리를 듣느라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부서를 옮기려고 해봤어? 회사 내에서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는 내부 공모 같은 프로그램도 있을 것 같은데?”

  선배의 표정과 말투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불편함이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내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고, 더 알고 싶다는 듯이 주의를 기울였다. 

 “부서를 옮기려고 몇 번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더군요. 몇 번은 다른 직원과의 경쟁에서 밀린 것 같고, 또 한두 번은 지금 부서에서 놔주지 않더군요.”

 “잠깐, 이건 문제가 있는데? 부서에서는 업무 때문에 필요하다고 놔주지도 않았으면서, 승진에서는 누락된다고?”

 선배는 양 미간을 찡그리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는 내 눈을 쳐다보면서 분명하게 물었다.

 “너 지금 부서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거구나?”

  선배는 나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선배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문제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모두 말해버리기로 했다. 

 “저의 팀 책임자로 차장이 부임해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2년이 넘었네요. 근데 이 사람이 정말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무능력한 데다가, 일할 생각도 없는 사람. 근무태도도 정말 문제가 많았습니다. 지각도 잦고, 근무시간에 수시로 자리를 비우고.”  

 선배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로 끌었다.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 사람을 조심해야 해. 조직에서 별 것 아닌 사람으로 취급받는 사람.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일으키더라. 그런 사람은 회사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야비한 짓을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상사들에게 있는 힘껏 아부하고. 

 그런데 그런 사람을 윗선에서는 관리를 안 했니?"

 “선배 말이 맞아요.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이 회사에서 살아남았나 싶은 사람이었어요. 차장 위에 수석이 저희 팀을 포함해서 3개의 팀을 관리했고, 그 위로 부서장이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수석과 부서장의 관계가 점점 벌어지더니, 매우 안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수석은 업무 능력이 부족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요. 부서 내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지요.”

 “그러면 수석이 차장이란 사람을 더욱 감싸고돌았겠군. 자기편을 만들어야 하니까.”

 “바로 그거예요. 심지어 수석은 저의 업무 성과를 차장이 한 것으로 보고한 적도 있어요. 당시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죠. 연말 성과 평가 때나 돼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차장은 마음껏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너희 팀은 더욱 엉망이 되고. 수석은 무조건 차장을 보호하려고만 하는 것이고. 그런데 업무는 진행되어야 하는데, 자기들을 그럴 능력은 없고. 당연히 그럴수록 더 많은 업무와 책임이 너에게 전가되는 거구나.”


4)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선배의 분석은 예리했다. 말 몇 마디에 부서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부서장님은 정말 열심히 하시는 분이에요. 늘 늦은 밤까지 일하시죠. 그만큼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분이시고. 저에게도 잘 해주세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자기가 해결해야 할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거잖아. 부서장이란 사람은 너희의 팀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으면서도, 자기 부서에서 벌어지는 일이 외부로 알려질까 싶어 덮으려고만 하는 것 같은데?” 

 할 말이 없었다. 부서에 내에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부서장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결국에는 이 사람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석이 부서장과 사이가 매우 안 좋다면, 네가 열심히 하는 만큼 수석은 너를 싫어할 거야. 너를 부서장 편이라고 생각할 테니.”

 “맞아요, 선배. 저희 팀에서 담당해야 하는 일은 결국에는 제 책임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우리 팀의 팀장은 엄연히 차장이잖아요? 심지어 부서장님이 직접 저에게 업무지시를 하시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제 책임과 업무에 최선을 다 할 뿐이라고요. 그런데 그럴수록 수석과의 관계는 더 벌어지기만 합니다. 저는 그저 대리일 뿐이잖아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답답할 뿐입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언성을 높이며 말하고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을 멈추었다. 선배는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대안은 있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이 상황을 원망하고 힘들어만 했지,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사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지내다 보니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로또를 사는 것이 한 주의 행사가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계속 주식에도 관심이 가고, 어떤 정보가 없나 기웃거리게 되더군요.”

 “주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지금과 같은 저성장 상황에서는 투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옳지. 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 가치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이야.”

 선배는 잠시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주식은 어디까지나 투자일 뿐이지. 무언가에 돈을 걸고, 그것을 통해 인생 역전을 기대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에 불과해. 설사 운이 좋아서 돈을 벌게 되더라도, 그 돈은 네 인생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선배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해보니, 돈 자체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여. 무엇보다 지금의 너의 심리 상태라면, 그것은 투기에 가까울 것 같아. 

 투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윳돈을 가지고 하는 거야. 특히 직장인의 투자는 더욱 그래야 하지. 회사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업무가 엄연히 있는데, 다른 곳에 신경을 더 쓰는 것은 직무유기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는 바로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더라. 나의 가치를 높이면, 돈은 따라오게 된다. 그리고 나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이고.”

 “선배, 지금 제 상황에서 어떻게 저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의 모든 것은 막혀 있어요. 그냥 하루하루 죽어라 일만 할 뿐이지요. 그런데 그 성과도 공정하게 평가받지 않고 있어요. 여기서는 별다른 희망도 보이지 않아요. 특별히 다른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너는 지금 길을 찾고 있잖아? 지금 회사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 데다가, 또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도 불안해. 전문성도 없는 것 같고. 더구나 관계는 엉망이야.”

 선배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상황이 바로 그랬다. 엉망이었다. 그때 선배가 말했다.

 “이직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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