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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제일 예쁠 때예요!

by 시 선

올해 내 나이 마흔다섯, 어느덧 40대 중반이다. 가끔 놀란다 내 나이에.


서른두 살에 첫째를 낳고 5년 뒤 둘째를 낳아 10년 넘게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나이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냥 잊혔다. 잊어도 상관없었다. 둘째를 가졌을 때 노산으로 고위험군에 속해 몇 가지 산전 검사를 더 받아야 했을 때를 빼곤 굳이 내 나이를 상기시킬 일도 그럴 필요도 전연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40대 중반, 중년 여성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매일 타게 되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저 여자가 진정 나란 말인가. 저리도 피곤해 보이는 바랜 기색의 저 여자가. 내가 언제 저렇게 나이가 들었나. 얼굴에 주름은 왜 저리도 많이 생겼나. 그 발랄하고 상큼했던 나는 어디 가고 처진 피부와 잦은 인상으로 미간엔 떡하니 주름만이 남았나.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단발머리의 젊은 엄마가 한 손에는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한 손은 5살쯤 돼 보이는 어린이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심란했던 나의 마음은 호기심과 기대감에 찬 눈길로 유모차에 앉아 있는 둘째로 보이는 더 어린아이에게로 갔다. 우리는 딱히 인사를 나누는 이웃 사이는 아니지만 전에 봤을 때 이 아이는 목도 가누지 못해 유모차에 누워만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목을 빳빳하게 가누고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게 아닌가. 나는 금방이라도 아이가 생글생글 웃어 보일 것 같아 아이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유모차 옆에 서 있는 말괄양이 삐삐 같은 첫째 아이가 자기 동생과 눈을 맞추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첫째 아이는 모두들 동생만 바라보니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우리 첫째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둘째를 낳자, 첫째는 매일 둘째만 끼고 있는 엄마의 관심을 끌고자 다섯 살 어린 동생의 뒤집기를 따라 하고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아기 같은 표정으로 엄마를 부르곤 했었다. 또 동생처럼 발라당 누워 기저귀를 갈아달라며 때를 쓰기도 했다. 우리 첫째 생각이 나자 나는 그 삐삐 같은 아이가 왠지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져 최대한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너 정말 멋진 모자를 썼구나! 너무 잘 어울리는 걸!"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오늘 이 아이가 핑크색 스팽글로 장식된 햇빛가리개용 모자를 쓴 데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겠다 싶어 모자를 들먹거리니, 삐삐 같은 아이는 수줍은지 대답은 하지 않고 빙긋이 웃어 보였다.

"모자가 좀 예쁘죠! 이 모자를 쓰면 제가 꼭 공주가 된 것처럼 특별해진다니까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대신해 아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젊은 엄마를 본다. 옆에 딸려 있는 두 아이만 없었다면 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이다. 그 작고 마른 몸집으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고 바쁠까.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지. 온종일 자기 얼굴 한번 들여다볼 시간도 없겠지. 머리 감고 옷 갈아입는 시간은 사치일 뿐이지. 겨우 둘째 아이를 재우고 나면 첫째 아이가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보챌 테지. 아직 좋은 엄마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르면서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나름 애쓰겠지, 고군분투하겠지. 그 나이 때 젊었던 나를 보는 것 같아 애잔한 연민을 느낀다. 그러다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 사이에, 나는 주책없이 그녀에게 '해 주고 싶은 말'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때가 제일 예쁠 때예요!"


전에 내가 한참 동안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지금 나처럼 누군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봐주고 절로 미소를 짓다가 엄마인 나를 건너다보며 던진 말이었다. 중년 또는 그 이상 연령대의 여성분들이 그랬다. 내 머릿속엔 그녀들의 목소리와 말투, 표정들이 다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때 난 그녀들이 툭 하고 던진 그 말 한마디가 참으로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야속하게도 느껴졌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이렇게 지치고 힘든데, 볼품 하나 없이 초라한데, 우리 아이들이 예쁘니 그것도 '제일 예쁠 때'이니 엄마인 나더러 다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 같아서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아마도 미숙했던 내가 엄마가 되는 순간 주어지는 모든 책임과 그 무게감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리라.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가 있어 힘들고 괴롭고 울 일도 많다지만 동시에 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이가 있어 즐겁고 행복하고 웃을 일도 많다. 아이 때문에 드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어느새 아이 덕분에 긍정적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일도 매 순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엄마로서 감수해야 할 모든 것들은 내가 엄마로서 누리는 그 절대적인 행복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을, 그때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그저 '한번 스치는 눈길로 아이들 예쁜 것만 보지 말고 내가 힘든 것도 좀 알아줘요'하고 외치고 바라는 것이 나의 진실된 속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때가 제일 예쁠 때예요!"


이제 더는 그런 말을 듣지 않는 지금,

내가 그런 말을 하고 싶은 지금, 깨달은 바가 있다.


아이들은 그때가 정말, 제일 예쁘다는 사실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는 태어나서 3년 동안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그게 전부라고. 이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팩트(fact)다. 내가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 보니 알겠다. 그 말이 진리라는 것을. 그저 아이의 순수하고 해맑은 존재 자체가 부모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효도'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클수록 더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부모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되기는 힘들다. 부모가 아이의 존재만으로 느꼈던 그 순수한 사랑과 행복감은 아이를 키우면서 때때마다 변하게 된다. 부모 또한 사랑받고 싶고 때론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 모든 욕심과 기대로 조금씩 훼손되기도 한다. 게다가 부모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독립된 존재로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존중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부모 역시 계속해서 아이와 마찬가지로 산 넘고 산 넘기를 감행해야만 한다. 한데 그 과정에서 아이가 그때만큼 순수하고 예쁘게 느껴지는 일은 점점 드물어진다. 아이가 크면 부모 눈에는 예쁜 짓을 해야 예쁜데,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아주 가끔씩 뿐이라는 거다.



더불어 '그때가 제일 예쁠 때'라는 그 말은 엄마인 내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그때가 제일 예뻤다. 비록 세수도 못한 채 머리에 빗질은커녕 옷 한번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지만, 그때가 가장 젊었고 활기가 넘쳤으며 그때가 가장 아이를 향한 온전한 사랑으로 나 스스로 충만하여 자체발광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솔직히 1년 전 사진만 봐도 아니 계절만 바뀌어도 알 수 있다. (언제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고 예쁠 때라는 것을...) 요즘엔 매일 선크림과 립스틱도 바르고 반듯하게 잘 차려입고 다녀도 그때만큼 예쁘지 않고 빛나지 않다는 것을 매번 절실히 통감한다.


23층! 엘리베이터 문이 철컥 열린다. 나는 두 아이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젊은 엄마와 눈인사를 나눴다.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그 한마디 말은 혼자 속으로만 꾹 삼켰다가,


곧, 다시 꺼내어 거울 속 내게 말한다.


"○○야, 너도 지금이 제일 예쁠 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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