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소설집을 읽고
잠언과도 같은 이 문장에 나는 꽤나 집착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이 무엇인지, 왜 슬픔인지, 얼마나 큰 슬픔인지 찾으려고 애썼다. 헤매 다녔다. 도대체 슬픔은 어디 있는 걸까? 나는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 옆에 올해 아홉 살 아들에게도 물어봤다.
"아들아, 슬픔은 뭐니, 뭐라고 생각해?"
"그냥 눈물 나는 거."
"너는 언제 눈물이 나는 데?"
"음, 그건 비밀이야."
누군가의 비밀을 밝혀 내려는 듯 책을 펼쳐 본다.
양귀자 님의 『슬픔도 힘이 된다』는 1987년부터 6년 동안 발표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묶은 소설집이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산꽃
천마총 가는 길
기회주의자
슬픔도 힘이 된다
숨은 꽃
이렇게 총 5편의 소설을 담았다.
앞에 두 소설은 연작소설처럼 이어진다. 첫 번째 소설 「산꽃」의 주인공인 '그'는 아버지의 유해를 옮길 자리를 찾고, 두 번째 소설 「천마총 가는 길」에서 '그'가 이장을 앞두고 보상금을 받으러 고향으로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돈으로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경주를 관광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실 이 여정은 그에게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계획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계획은 아주 단순했다. 다시 살아보는 것, 마음 깊은 곳에 울혈로 남아있는 압박감을, 부채를 떨치고 새롭게 살아는 것이 그의 유일한 계획이었다."
-양귀자, 『슬픔도 힘이 된다』 40쪽-
다음 두 소설에도 '그'와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내면에 고뇌를 둘러싼 '그'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내면적 고뇌를 외면적인 형상으로 드러낸다는 데 있다. 앞에서 '그'가 새롭게 살고자 내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면 다음 두 소설은 '그'가 그 결정을 내리 계 된 계기를 마련해 준 1987년 6월 항쟁 그 이후의 일들을 그린다.
세 번째 소설 「기회주의자」는 직장 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그것이 제 권리를 요구하는 내부적 과정에서 노조원의 다양한 형태를 묘사하는데 여기서 '그'는 원인 모를 감기로 인해 고통받는다. 누군가의 말대로 그것이 공기 탓인지, 정말 공기 때문일지 '그'는 끝내 알지 못한다.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소설, 「슬픔도 힘이 된다」는 교육 현장의 비리에 저항하여 참된 교육을 수행함으로써 강제로 해직된 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교조 지회의 지회장인 '그'를 중심으로 사무실 현판식을 여는 짧은 몇 시간의 일을 기록한다.
"가로 40센티 세로 30센티의 작은 현판은 작지만 큰 것이었다. 저 혼자 외롭게 하는 일에 현판을 달 수는 없다. 현판이, 아니 현판식이 소중한 까닭은 그 속에 함께 뜻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버둥거리다 말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현판이 상징하는 하나 됨의 조직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그는 불현듯 김 목사의 말을 떠올렸다. 슬픔도 힘이 된다……."
-양귀자, 『슬픔도 힘이 된다』 201쪽-
그 슬픔까지도 힘이 되기에,
아니, 슬픔이야말로 힘이 된다는 것을.
교사들의 연약하면서도 힘찬 연대를.
현판식이라는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숨은 꽃」이 있다. 이 소설은 앞의 것들과는 좀 다르다. '그'가 아닌 '작가 자신'이 직접 화자로 등장하여 마치 에세이처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작가는 글쓰기의 미로에 빠진 자신을 "그 지긋지긋한 내 속의 외침을 땅속 깊이 파묻어버리고 혼자만 도망쳐올 수 없을까 해서 꾸민 음모"로서 홀로 여행을 떠나고 그 여정 중 우연히 어떤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김종구, 바로 그가 이 소설의 시작점이자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그의 목소리를 열심히도 채집한다.
"사는 일이 가장 먼저란 말이오. 사는 일에 비하면 나머지는 다 하찮고 하찮은 것이라 이 말입니다."
-양귀자, 『슬픔도 힘이 된다』 241쪽-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작가는 다시 한번 자신의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미로에서 출구를 잃은 나, 아침저녁으로 먹히고 아침저녁으로 우는 시인의 뜸부기, 안개 속으로 사라진 김종구, 자신의 꽃말을 암호로 만든 지브란, 그리고 의사의 바느질,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으라는 것인가."
-양귀자, 『슬픔도 힘이 된다』 288쪽-
「숨은 꽃」까지 5편의 소설을 모두 읽어 내리니 어둡고 축축한 뭔가가 나를 감싸고돈다. 그건 슬픔이었다. 소설은 1980년대 군사 독재 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이 그들의 전반적인 삶 곳곳에 녹아있었다. 슬픔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을 말한다. 동시에 그 시대 자체가 슬픔이라 말한다. 억압된 현실 속에서 느끼는 그 절망과 비통함은 감히 분노나 절규도 될 수 없기에. 그것을 과연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저 슬퍼할 뿐이다. 그러나 그 슬픔은 결코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슬픔을 지렛대 삼아 나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슬픔이야말로 힘이 되는 서사를 전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현실과 그 슬픔을 우리에게 폭로한다. 폭로함으로써, 이 소설의 존재 자체, 그 슬픔이 곧 힘이 된다.
슬픔은 어떻게 힘이 되는가?
결국엔 희망, 슬픔을 이겨내고자 하는 힘이 '희망'이 된다. 슬픔이 있기에 희망도 가능하다.
"어디서부터 어디를. 나는 짓밟힌 귀신사에서 본, 모래더미에 파묻힌 이름 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어버린 꽃 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양귀자, 『슬픔도 힘이 된다』 289쪽
작가는 '숨은 꽃'을 떠올리며 여행을 마치고 기계 앞에 앉아 쓸 힘을 얻는다.
마치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듯이.
'드러나지 않는 이 힘, 그러나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이 힘이 보여주고자 하는 뜻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