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차례 나물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부침개 팀은 벌써 오전 일찍 일을 마친 뒤였다. 내가 시댁에 도착했을 때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시댁에는 며느리가 둘 있다. 큰며느리인 나는 나물을, 작은며느리인 동서는 부침개를 담당한다. 어제 온 동서는 아침부터 시누이, 도련님과 함께 자신의 할당량을 진작에 마친 터였다.
사실 동서는 늘 할당량 이상을 한다. 동서가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부침개를 맡고 어머님이 나물을 준비하셨다. 그때 나는 고구마, 두부, 민어, 동그랑땡, 이름 모를 큰 생선까지 총 다섯 가지 전을 부쳤다. 동서가 들어오면서 산적꽂이가 추가되고, 고추전과 표고버섯 전까지 더해졌다. 고추전은 고추를 반으로 갈라 씨를 제거한 뒤 두부와 여러 양념을 섞어 다진 속을 넣어 부친 것이고, 표고버섯 전은 겉을 칼집으로 꽃무늬를 내고 줄기를 떼어낸 안쪽에 역시 두부를 갈아 만든 속을 채워 부친 것이다. 지름이 거의 내 팔 길이만 한 큰 소쿠리 하나를 보기 좋게 가득 쌓아 올렸다. 새롭게 추가한 전은 동서 스스로 장을 보고 준비해 오며, 시댁 방문이 늦을 것 같은 날에는 집에서 해오곤 한다. 게다가 시집오기 전부터 아버님 생신에 도련님 편으로 보냈던 잡채는 매번 손수 해오고 있다. 어머님 말씀을 빌리자면, 직장을 다니는데도 그렇게 다 준비하고 만들어 오는 것이다.
큰며느리인 나는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나 취나물, 버섯, 도라지, 이렇게 보통 다섯 가지 나물을 한다. 내가 직접 장을 보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정이 있어 시댁 방문이 늦을 때면 그냥 늦는 대로 일을 시작하는데, 내가 늦는다고 해서 나물이 되어 있는 경우는 일절 없다. 나물은 무조건 큰며느리 손을 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점심을 먹은 후 동서와 도련님, 남편과 아이들은 다이소로 쇼핑하러 갔다. 시누이가 아이들에게 추석 선물로 다이소 상품권을 준 것이다. 나 혼자 남아 마치 나머지 공부를 하듯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잠깐 부엌에 들른 아버님이 한 마디 건네신다.
"넌 왜 혼자 하노?"
"제가 늦게 와서요,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나?"
하시곤 막걸리와 전 몇 개를 챙겨 가신다.
취나물을 볶는데 양이 어마어마하다. 프라이팬에 꽉 차서 뒤적거리기가 힘겹다. 더 큰 문제는 간이 골고루 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간장을 막 부어서도 안 된다. 시댁에선 주로 조선간장을 쓰는데 뭣 모르고 부었다간 말도 못 하게 짠맛이 나서 낭패 보기 일쑤다. 잠시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비닐장갑을 낀 손에 간장을 조금씩 부어 나물 하나하나 주물러가며 간을 배게 한다. 차라리 싱거운 게 낫다. 간이 짜면 그 많은 나물이 먹어 치워 없어질 때까지 짜다는 핀잔을 들을지 모른다. 내가? 아니, 이 나물이.
“내가 뭐 도와줄 게 없을까?”
뒤에서 막 버섯 손질을 마친 시누이가 묻는다.
“선혜야, 너 지난번에 우리 베트남 여행 갔을 때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라 조금 놀랐어. 난 원래 네가 되게 소극적이고 뒤로 물러나 있는 줄 만 알았는데, 바다에서 다이빙하는 모습도 그렇고 좀 의외였어. 네 성격이 원래 그런 거야? 아니면 태희한테 눌려있던 거야?”
“제가 많이 달라 보였나요? 거기선 밥을 차리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멋쩍게 웃는다.
“언니…, 제가 사실 시댁에선 기가 조금 죽어 있어요. 저 스스로 작아져요. 그래서 제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네요.”
“그래? 왜? 어떤 면에서?”
“아무래도 저만 돈을 벌지 못하는 데다가 음식도 좀 그렇고요. 일도 빠르지 못해서요.”
“아, 그래? 나는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전혀 몰랐네.”
언니(시누이)는 알까? 내가 왜 시댁에서 작아지는지….
한때는 나도 꽤 잘하는 며느리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장손인 남편 덕에 나는 갑자기 신분 상승인지 뭔지 종갓집 큰며느리가 되었는데, 우리 집에선 막내로 태어난 데다 차례나 제사 같은 풍습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명절 때마다 부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허둥댔고, 그 며느리의 역할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까놓고 말해서 나란 사람은 종갓집의 큰며느리 감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시댁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네, 네, ' 하면서 어머님 아버님 말씀을 잘 듣는 거라 믿었다. 그렇게 배웠고, 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전에 제사가 평일에 있을 때면 나는 남편도 없이 첫째를 아기띠에 매고 전철을 3번 타고 다시 기차를 갈아타 시댁에 가곤 했다. 난 그런 식으로 내 나름 며느리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동서가 들어오면서 나의 최선은 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시댁에서 나는 줄곧 하라는 대로만 했다면 동서는 그걸 뛰어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댁에 방문할 때마다 잡채는 기본이고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 왔다. 언젠가는 캠핑에 쓰는 냉장고를 통째로 가져온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안엔 음식 재료들로 잔뜩 채워져 있었다. 그걸 보고 시어머님, 시누이, 나를 포함한 세 여자는 모두 할 말을 잃고 감탄을 금치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때맞춰 나는 형님다운 멘트를 날렸다. 나도 모르게 불편해진 마음은 한구석에 비켜둔 채 말이다.
“어머님, 요즘 세상에 동서 같은 며느리 없어요.”
정말이지 그건 사실이다. 동서는 정말 보통 여자가 아니다. 동서는 시댁에 늦게 와도 늘 당당했다. 아마 모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었으리라.
게다가 동서는 빠릿빠릿하니 일도 정말 잘한다. (여기서 일이란 시댁에서 며느리들이 주로 하는 여러 가지 노동을 말한다) 처음에 내가 동서를 보고 놀랐던 건 어머님이 나물을 데치셨을 때였다. 난 가만히 서 있었는데 동서는 싱크대 아래 채반을 꺼내 어머님 앞에 바로 받쳤다. 한마디로 눈치가 빠르고 센스가 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런 센스가 부족하고 행동이 느려 아마 동서와 내가 부엌에서 같은 시간만큼 일한다면 그녀가 나보다 몇 가지는 더 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큰며느리로서 또 그녀의 형님으로서 웬만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야 할 것 같고, 또 그래야 마음 편히 누워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서가 원체 손이 빠르고 야무지게 일을 잘하여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어머님은 동서가 일을 잘해서 얼마나 잘됐냐고 늘 말씀하시지만 그 일 잘하는 동서의 존재가 큰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어머님 보시기엔 큰며느리가 나서서 작은며느리를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또 내가 그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보다 일을 잘하는 동서를 내가 어떻게 진두지휘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 누구를 진두지휘하겠는가. 시댁에선 누가 봐도 동서가 일을 잘하고 준비도 많이 해온다는 것을 알 텐데 큰며느리가 있으니 대놓고 칭찬하기도 신경 쓰일 것이다. 나 역시 큰며느리로서, 그녀의 형님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바로 그 타이틀이 문제다! ‘차라리 동서가 큰며느리고 내가 작은며느리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면 모두가 편할 것을, 누구보다 내가…!’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한다.
한동안 나는 이 모든 걸 나의 열등감과 질투 때문이라 여겨 스스로 몹시 괴로워했다. 시댁 식구들은 동서의 활약으로 모두 즐겁고 편안하기만 한데 나만 이렇게 왠지 불편한 것은 내 자존감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럴수록 나의 존재는 점점 작아지고 시댁에 있는 것이 못내 더 불편해졌다. 친정을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 자신을 향한 그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렇게 쫓기듯 친정으로 가려하면 나는 한 번 더 곤란해지곤 했다. 친정이 포항인 동서는 명절 때마다 친정에는 가지 않고, 시댁에서 하루 더 자거나 저녁까지 먹고 늦게 떠나는데, 그것을 보고 어머님은 “작은 동서는 명절 때마다 친정도 못 가는데 큰 동서가 돼서 친정을 못 가서 안달”이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동서와 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고, 나는 명절날 친정에 가려고 짐을 싸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했다.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나 스스로 '며느라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이다. 내가 더 이상 '며느라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건 시댁에서 작아질 이유가 없다. 내가 돈을 못 벌더라도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일이 느리더라도, 이래저래 동서와 비교가 되더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서가 애써 준비한 음식을 그저 맛있게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며느라기'에 속한 나는 이대로 마냥 즐길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작은며느리보다 더 잘하는 며느리가 되는 길이다. 음식도 더 많이 해오고 명절 내내 친정에도 가지 않고 시댁에 있으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댁에서 큰며느리로서 나의 위상이 설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적어도 작은며느리와 비교해 그 존재가 작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작은 며느리가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단지 큰며느리로서 인정받고 존재감이 작아지는 것을 대비해서 그런 것이라면 말이다. 큰며느리이기 전에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시댁에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지키고 존중하는 일일 테다.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음식을 억지로 준비하고 엄마 집이 코 앞인데 가지도 않고 시댁에 머물러 있는 것은 결코 나를 존중하는 방법이 아니다. 아니, 이것저것 묻고 따지지 않아도 요즘 세상에서 내 상식으론, 그건 아니다. 그냥 나는 시댁에서 작아지는 쪽을 택하고 만다.
시누이는 보통 명절 전날 시댁에 가곤 했는데 올해는 긴 연휴 동안 친정에 머무르면서 추석 당일 새벽 5시 반에 아이들을 깨워 시댁으로 출발했다. 시누이 시댁에도 며느리가 둘 있는데, 다른 며느리가 보통 명절 당일 아침 7시쯤에 온다며 그 시간에 맞추는 듯했다.
“어차피 올 추석엔 동서가 시댁에 안 오니까 나는 당일에 가도 별 부담이 없어!”
가뿐하게, 언니(시누이)는 말했다. 어머님이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으시니 점심 먹고 출발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안심했다. 역시! 며느리가 시댁에서 명절날 점심만 먹고 떠나고 싶은 건 다들 같은 마음이구나. 또 서로 다른 며느리를 의식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문제는 내가 아니다.
'며느라기'를 당연하게 여기고 강요하는 오래된 가족 문화에 문제가 있다.
'며느라기'에 속해 있는 이상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불편할 것이다. 아무리 멀쩡한 여자를 앉혀놔도, 잘나고 돈 잘 벌고 학벌이 높으신 박사님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나는 시댁에서 바라는 큰며느리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런 현실이 내게는 여전히 버겁고 불편하기도 하여, 때마다 돌아오는 명절이 그리 달갑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이것이 내가 큰며느리로서 지고 가야 하는 무게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우리나라에 명절이 달갑지 않은 며느리가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가까이 그 누구보다 애쓰는 작은며느리 동서도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그렇다 해도 나는 이 '며느라기'에 서서히 균열을 내고자 한다.
이제 더는 나 스스로 작아지고 싶지 않다.
(모든 이미지의 출처: 신수진,『며느라기』)『며느라기』)『며느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