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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Jun 24. 2022

'개념러'라는 착각

물 300톤이 어느 정도 양인지는 알고 얘기하자.

 허걱.

 콘서트 한 번에 물을 300톤이나 쓴다고?

 요즘 여기저기 가뭄때문에 난리인 마당에 이게 제정신이야?

 그런데 쓸 물 있으면 소양강에나 뿌려줘라.


 얼마 전에 나도 참 재미있게 본 드라마에 살짝 귀여우면서 엉뚱한 노처녀 캐릭터로 출연했던 모 배우가 <싸이 흠뻑쇼>를 비판하며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의 파장이 꽤 크다.

 원래도 개성 있는 배우였지만 이전 출연작과는 다른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해서 떡상할 일만 남았다고 봤는데 이번 일로 떡락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안타깝다.

 뭐, 세상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일은 언젠가부터 만연해 있는 '개념러병'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본다.

 그 의견의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사회적 이슈에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연예인을 '개념 연예인'이라고 추켜세워주는 언론 보도나 '불쌍한 우리 동네 길냥이 잡아가지 마시고 먹을 음식과 물을 주세요.'라는 트윗에 개념 있다, 깨어 있다, 따뜻하다 등등의 댓글들이 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사회적 이슈에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 연예인들은 샐 수 없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소신대로 꾸준히 일관된 행동을 보여준 연예인들은 그만큼 많았나? (보도가 안 됐거나 내가 관심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 수는 정말 극소수가 아닐까 싶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고양이에게 음식과 물을 주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위생 관리가 되지 않은 고양이들이 계속 밖에서 생활하도록 보살피는 것과 그 고양이들을 전문기관에 넘겨 제대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까?


 어떤 이슈에 관하여 자신만의 생각이나 태도는 당연히 가질 수 있다.

 동네 길냥이들이 불쌍하다는 감정 역시 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혼자만의 생각에서 빠져나와 말이나 글을 통해 남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할 때 비판이나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내 의견에 동의하거나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인정 또는 칭찬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글을 쓸 때면 누군가 인정해주거나 칭찬해주기를 바란다. 

 조회수나 라이킷 수가 많으면 기분이 좋고 칭찬하는 댓글이 달리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결국 SNS나 이곳 브런치나 글을 올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있어 보이고 싶음'의 표현이 아닐까.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면 일기장에 쓰면 그만이다. 


 소신 발언을 하는 연예인과 길냥이를 동정하는 트위터 사용자. 

 두 경우는 서로 비슷하지만 전자는 심하게 말하면 허세, 조금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심리에서 나온 행동이고 후자의 경우는 감정 또는 감성에 치우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신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만 그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렵고, 감정적인 트윗을 날리는 것은 쉽지만 어떤 것이 더욱 옳은 일인지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어렵다. 

 개념 있는 것처럼 보이고는 싶지만 실제로 개념 있게 행동하기는 어렵고 힘들거나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이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말과 글만 앞세우는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 300톤에 분개한 그 배우도 같은 케이스일 것이다.

 온 나라가 가뭄인데 어떻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몇 시간 놀자고 낭비할 수 있단 말인가 화가 났을 것이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느꼈을 것이고 '어? 이거 좀 개념 있는데?' 했을 것이다.

 그래서 300톤이라는 물의 양에 딴지를 걸고 비판했을 것이다.

 뭐,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딴지를 거는 그 대상에 대한 검증은 확실하게 했어야 했다.


 300톤의 물이라니 어마어마해 보인다.

 300톤을 kg으로 환산하면 300,000kg이다.

 그리고 물 1kg을 부피로 환산하면 1L이다. (이건 과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기준이다.)

 그럼 물 300톤은 300,000L가 되는데 우리나라의 물을 관리하는 K-water(수자원공사) 홈페이지에는 국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이 2020년 기준 약 295L라고 나와있다.

 그리고 싸이 흠뻑쇼의 회당 관객수는 25,000명 정도 된다고 하니 한 번 공연하는데 1인당 소비하는 물의 양은 300,000/25,000 = 12L가 된다. 하루 물 사용량의 약 4%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실 변기의 1회당 물 사용량이 대개 10~12L라고 하니 싸이 흠뻑쇼에 오는 관객들이 화장실에 가서 물 한 번씩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25,000명의 관객들이 몇 시간 동안 신나게 즐기고 공연에 관련된 스태프들의 일자리가 생기는 대가가 변기 한번 내릴 정도의 물이라면, 이게 어마어마한 낭비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엄청 어려운 계산도 아니고 자료를 찾기 어렵지도 않다. 순간적인 감정을 5분만 억누르고 따져 봤다면 그 배우는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이고,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고 누구나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물이라는 자원은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의견에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그야말로 관점의 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행동에 비판을 가하기 전에 본인은 그만한 행동을 했는지는 물어보고 싶다.

 농민들은 가뭄에 피가 마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물을 막 쓸 수 있느냐는 감정적인 비난을 하기에 앞서 본인은 피 마르는 농민들을 위해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게 순서 아닐까.

 쩍쩍 갈라지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자비로 양수기라도 동원했다면 그런 논리로 비판해도 될 것이다.

 나 역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물을 많이 쓴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이미 수년간 계속되었다가 코로나로 중단됐던 콘셉트의 공연을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다시 하는 것일 뿐이다.

 가뭄에 힘들어하는 농민들을 생각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 공연으로 인해 농민들이 상처받는다는 증거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비난하는 건지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 누군가의 행동을 비판하려면 그 행동의 어떤 면이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밝혀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은 그러한 비판을 할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둘 중 하나라도 만족되지 않았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역풍을 맞을 마음의 준비 또한 필요하다.

 단지 '개념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한번 찔러보기에는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언어의 온도>로 유명한 이기주 작가는 그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말의 품격>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순간 상대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검지뿐이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한다. 세 손가락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검지를 들어야 한다


 개념 있어 보이고 싶다면 그에 따르는 무게도 감당하는 것이 맞다.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그 '개념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은 그냥 내 마음속에 묻어 두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냥 남몰래 스스로 만족하고 지나가는 게 모두가 편안해지는 길이지 않을까.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대책 없이 뿜어져 나오면 '프로 개념러'가 아닌 '프로 불편러'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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