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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ug 24. 2016

문래동 3가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책방에서 문학하다 <윤동주처럼>

남세스러운 시대윤동주를 호명하다    

문래동의 좁은 골목에는 눈길을 끄는 요소가 가득하다
문래동의 좁은 골목에는 눈길을 끄는 요소가 가득하다


지난 7월 29일 이른 저녁, 윤동주의 내밀한 속살을 엿보고픈 이들이 문래동 골목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골목 한구석을 차지한 작은 책방이었다. 청색종이라 이름 붙은 그곳에서는 김응교 시인의 특강 <윤동주처럼>이 열리고 있었다.      


문래동 3가의 청색종이에서 김응교 시인의 강연 <윤동주처럼>이 열렸다
문래동 3가의 청색종이에서 김응교 시인의 강연 <윤동주처럼>이 열렸다


김응교 시인은 자기반성으로 강연의 첫 운을 띄웠다. 시인이자 윤동주 문학 연구자인 그는 윤동주의 우상화를 비판하는 포럼을 열었던 과거를 고백하며 그간 학계에서 윤동주를 과소평가해왔음을 시인했다. 한국사회가 윤동주를 반공의 전사로 우상화한 탓에 윤동주 문학이 평가절하된 것은 물론 그 본질조차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문득 중고등학교 시절의 국어 시간이 떠올랐다. 기억은 곧 윤동주와 이육사, 김수영을 읽을 때면 늘 그렇듯 저항의 흔적을 찾던 모습으로 이어졌다. 기실 윤동주를 비롯한 그들의 문학은 정치적 필요로 혹은 문단의 권력 아래 이용되어 온 걸까.


201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윤동주로 가득 찬 해였다.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영화 <동주>의 관객이 100만을 넘어섰고 복간본 시집 열풍이 뒤를 이었다. 올해 윤동주 타계 71주년을 맞으며 저작자 사후 70년간 존속되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덕이었다.


김응교 시인은 윤동주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삶을 풀어낸다
김응교 시인은 윤동주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삶을 풀어낸다


행간을 잃은 시대에 윤동주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볼 수 있던 건 귀한 일이었지만 자본주의의 등쌀에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김응교 시인은 <서시>를 차용한 기아자동차 CF와 윤동주가 하숙했던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서 팔았던 ‘윤하뻔(윤동주 하숙집 뻔데기)’을 언급하며 윤동주에 대한 맹목적인 상업화를 비판했다.


“윤동주를 만들어진 우상쯤으로 함부로 봤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고 나서 어설피 말했던 내 시늉이 남세스러워졌다. 지리멸렬한 시대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던 큰 고요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질긴 사랑이 지금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응교 시인의 말이다. 저항시인의 이름을 외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윤동주를 만끽한 2016년에도 시인의 남세스러움은 분명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주(東柱)가 아닌 동주(童舟)     


윤동주처럼>이라는 특강의 제목은 그의 저작인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에서 따온 것이다.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십자가>). 김응교 시인은 ‘처럼’이란 조사를 한 행으로 분리한 윤동주의 의도에 주목했다. “이웃을 내 몸‘처럼’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면서도 그 귀찮은 길을 ‘행복’이라 말하던 시인”이 윤동주였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호모 사케르’로 일축되곤 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서 호모 사케르는 사회로부터 배제당하는 형벌은 받은 죄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이 용어에 오늘날의 현상을 덧씌워 이 시대의 폭력적인 정치와 삶에 노출된 모든 인간을 호모 사케르라고 명명했다. 말하자면 호모 사케르는 사회에서 격리된 후에야 그 사회가 만든 법질서 안으로 편입할 수 있는 벌거벗은 생명이다.


그래서일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시인의 울림은 번잡한 시대에 더 큰 공명을 울린다. 김응교 시인은 “그리고”라는 단어의 아마득함을 말했다. 윤동주는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자기성찰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이후에 “그리고” 나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 노래한다. 그런 윤동주의 다짐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팔복>)하는 소망에도 “그녀가 누워본 자리에 누워보는”(<병원>) 공감에도,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라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위로>)는 자조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뭇 진지하게 또 유쾌하게 강연에 귀 기울이는 청중들
사뭇 진지하게 또 유쾌하게 강연에 귀 기울이는 청중들


윤동주는 시를 발표할 때면 원래 이름인 東株대신 童舟라는 필명을 사용하곤 했단다. 그만큼 이름을 떨치려는 욕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김응교 시인은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을 동경의 마음으로 부르던 동주의 일화를 함께 소개했다. 아낙네가 구르마를 끌고 가면 뒤에서 밀어주고 일하다가 지쳐 있는 농부 아저씨와 자주 대화했다는 동주의 삶은 그의 시와 똑 닮아있다.      




문래의 밤은 저물고      


윤동주의 자취를 정신없이 좇다 보니 1시간 30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강의가 2시간을 훌쩍 넘겼다. 강연이 끝난 후에도 다과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담소가 이어졌다. 저마다의 동주를 뒤로하고 청색종이를 나오는 길, 영화 <동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싶은 것이, 시인이 되고 싶은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종이를 찢어발기던 동주, 그 젊은이가 세상을 뜨고 70여 년이 흘렀다. 만약 동주가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시인을 “슬픈 천명”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철공소와 예술의 흔적이 어우러진 문래동은 독특한 향취를 풍긴다


뒤돌아본 문래에는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작업실, 작은 서점과 아늑한 카페가 어우러져 있었다. 어색한듯하면서도 독특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이 공간은 예술가들이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로 사라진 철공소의 자리를 알음알음 메꾸어 형성된 공간이라고 한다. 약 1백여 공간에서 2백 50여 명의 예술가가 활동 중인 문래에는 회화, 사진 등의 시각 예술 분야, 춤, 연극, 퍼포먼스 등의 공연 예술가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문화 활동가들이 활발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MEET 포스터


앞서 소개한 청색종이의 <윤동주처럼>은 2010년 개관한 문래예술공장이 올해로 7년째 진행하고 있는 ‘지역문화예술지원 프로젝트 MEET(Mullae, Energing&Energe Tic)’의 일환이다.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활성화하고, 작품을 통해 지역과 소통한다는 취지 아래 지난 6년간 457명의 문래동 예술가와 19,000명의 시민이 MEET를 거쳐 갔다.        


2016년 MEET에는 모두 17개의 개인창작 혹은 프로그램이 6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니 독특한 전시와 강연을 만나보고 싶다면 혹은 그저 무더운 더위가 지겹게 느껴진다면 무작정 문래로 향해보자. 텁텁하기만 한 여름이 조금은 달콤해질지도 모른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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