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대신 진실
나는 아이들이 나처럼 살게 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이라는 삶의 숙명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대로 자라지 못한 채 부모를 원망하고, 사는 내내 열패감에 시달릴까 봐 정말 두려웠습니다. 나는 내가 최선의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언제나 차선을 강요받았고, 한 번도 진정 원해서 선택한 적이 없으며, 안간힘을 써도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남에게 빼앗긴 채 살아왔다고요.
나는 그래서 애써 좋은 사람 되어야 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이런 나의 분노를 들키면 안 되기에, 내 욕구는 항상 뒤로 미뤄야 했어요. 다른 사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날 참 좋아했어요.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그 덕을 참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참 오래되니까,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내 감정과 욕구를 읽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나를 존중하지 않는 내가 밉고 너무 싫어지더라고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행복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자주 불행했습니다.
가난과 열패감이라는 유산,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감, 내가 싫어 다른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을 아이에게 물려주면, 내 아이가 나처럼 불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유 수유를 오래 하고, 동화책과 독일제 원목 장난감을 집에 가득 두며 가정 보육을 오래 했습니다. 하지만 내내 불안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걷히고, 그분들의 사랑이 내 온 존재를 뒤덮고 나자, 나는 나의 두려움이 '가난, 열패감, 강박감'등이 아니라, '내 존재에 대한 입체적인 감각'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생의 조건이 아니라, 생에 대한 인식 또는 믿음 때문에 가지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만들고, 나를 키워낸 큰 생명의 운명의 품에 나를 맡기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삶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내 두려움의 현신이던 그 많은 책장과 책들, 장난감을 불안과 함께 비울 수 있었습니다.
항상 이 운명의 품에 안기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책장과 책, 장난감을 비운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나는 내 감정과 욕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미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살만해졌습니다. 다리 뻗고 누울 자리 생겼습니다. 내가 있는 지금-여기에 그런 곳이 생겼습니다.
당장은, 다시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습관적으로 내가 싫어지고, 불현듯 내 아이들의 인생을 내가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 때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안겨야 하는지 아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아주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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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캠퍼스의 공간살림 명상 중에 작성한 살림 메시지입니다.
#씨앗글: 아난다 박미옥의 '일상으로의 황홀한 몰입 살림 명상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