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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맺는 기쁨 Jan 06. 2024

오래도록 견고하던 나의 세계

자기 치유 기록 샘플 NO.1




아난다 캠퍼스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하 아기시)' 12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기시' 1주 차에 나는 나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람들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를 썼다.

가장 먼저, 나에게 편지를 쓰고, 남편, 엄마, 아빠, 아이들 순으로 편지를 썼다.

짐작건대, 내가 이번 생에서 풀어야 하는 관계(숙명)라는 숙제의 대상이 바로 저 편지 순이었을 것이다.


편지는 구절마다 고통과 절망, 원망이 담겨있었다. 나의 글들은 사랑스럽지 않았다. 나는 쓰고 읽는 내내 아프고 끔찍했다.


나는 과거에 나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겨우 '로또를 사고, 그 돈으로 서울의 땅을 매입하라는', 지금의 '남편이 아니라 더 완벽해 보였던 그를 만나 결혼하라는' '하지만 그 결혼 또한 불행할 거라는', '원가정의 큰 불화를 막되 깊이 개입하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는 나를 버려두고 왜 도망가지 않았냐 했다. 나처럼 당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먹고사는 배은망덕한 년을 왜 낳았냐 했다. 왜 나를 내치지 않았느냐고, 왜 그때 몸을 던졌던 그 바다에서 죽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아빠에게는 우리 가정을 담보로 아빠의 사랑을 구했으니, 필사적으로 행복한척하라고 하였다. 우리 가족은 아빠 때문에 사는 내내 지옥이었다며 그분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남편에게는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언제나 차가웠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죽은 후라도 살 수 있도록 위로와 축복의 말을 전했지만, 엄마의 삶이 얼마나 기쁘고 충만했는지는 고백할 수 없었다. 차마 그런 거짓을 쓸 수는 없었다.


나는 편지에 쓴 것처럼 평소에도 나와 가족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온몸의 에너지로 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눈빛으로 말투로 몸짓으로 삶의 선택으로 그것을 증명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통해 당신은 피폐하고, 착취당했으며, 어리석었고, 사랑받지 못했으며, 인생이란 기쁘지 않고 고통스럽고 무거운 의무만이 가득하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것이다. 나는 대체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목숨처럼 소중한 이들에게 나는 왜 그런 저주를 퍼붓고 있었을까? 내 세계에 든 이 역병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기시 1주 차 세션 중 나는 안내자로부터 알아차림과 원하는 부와 명예 권력 중 무엇을 얻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노벨문학상이요. 이제 '본질'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실속 없는 것은 너무 지겨워요."


나는 내가 그것을 가지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리라 진짜로 믿고 있었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이 이렇게 하찮은 인생을 값지게 해 줄 구원이라 믿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여태껏 믿고 따르던 신을 버린 대가여야였다. 그 아름다운 것이 나와 우리를 진짜로 구원할 것이었다. 알아차림이 바로 실속이라는 가르침은 이미 가진 것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니 하는 개소리여야 했다. 이 하찮은 삶이 바로 가장 소중한 삶의 현장이라는 것은 나를 여기에 붙들어 놓으려는 작당의 헛소리여야 했다. 내가 올라가지 못하고 더 가지지 못하게 더 누리지 못하게 막는 악마의 속삭임이어야 했다. 내게 거룩은 성공이고 성취였으며, 나는 그것에 내 영혼을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요이땅하면 그것 향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로 이것이 아기시 1주 차의 확인한 내 민낯이었다. 그런데 정말일까? 실제로 나와 우리의 삶은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것일까? 나는 정말 지금 바로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일까? 내가 놓쳤던 진실은 없었을까? 내 의심이 시작되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이미 오래도록 견고하던 나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Pr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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