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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맺는 기쁨 Jan 09. 2024

그분의 목숨 건 사랑 덕분에

자기 치유 기록 샘플 NO.2

아난다 캠퍼스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하 아기시)' 12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 2주 차에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내가 기록한 은근히 기분 상하는 것부터 폭발할 것 같은 분노까지의 넓은 스펙트럼의 '화'의 항목을 자세히 관찰하고 분류해 본 결과, 나는 내 삶이 내 통제 밖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압도적으로 통제 욕구가 높은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믿었기에, 이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나는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 심한 생존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진정 친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예측하고 조절해야 했기에, 일상의 여유나 기쁨을 잘 느끼지 못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가여워하며, 내게 자주 휴식을 권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쉬라고. 거기에 잠시 멈춰서 하던 일을 놓고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고 수영도 하고 오라고. 나는 그런 다정스러운 남편의 말에 무척 화를 냈다. 남편이 자신의 언어와 몸으로 "당신이 이미 충분히 좋은 아내고 엄마야"라고 말하는데도 나는 그를 믿지 못하고 끝없이 나를 증명하려 했었다.


'당신은 내게 쉬라고만 하지, 내가 당면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잖아! 당신은 내가 내 마음과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늘을 주관하고 땅을 통치하는 신이 될 수 없잖아! 내가 지금 여기를 통제할 수 없다면, 나는 절대로 쉴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어. 나는 멈추지 않고 움직일 거야. 나는 나를 통제하고 말 거고, 당신과 아이를 내 질서 안에 두어서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꼭 이루고 말 거야. 나는 삶 앞에 버둥대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어. 나를 사랑할 수 없으면, 당신도 아이들도 온전히 사랑할 수가 없어!, 나는 지금 충분치 않아. 내가 지금껏 이렇게 사는 것은, 무능했던 내 부모 때문이고, 그들처럼 역시 무능한 당신 때문이야.'


나는 나의 부모가, 나의 남편이, 내가 무능하다고 믿었다. 이 대를 이은 '무능' 때문에 소중한 내 아이를 망칠 것 같아 나는 몹시나 두려웠다. 나는 왜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남편을 무시했을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아이와 나를 돌보고, 안락한 곳에서 가정을 꾸린 이 남자를 나는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나는 왜 이 남자가 충분하다는 모든 신호와 증거를 무시하고, 그를 무능하고 부족하다고 여겼을까?


나는 모든 것을 통제하여 책임지려고 하는 것과 이미 충분한 남편에게서 만족 못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의 여성성을 검토해야 했다. 딸의 여성성은 어머니를 통해 형성된다. 나는 그동안 나의 엄마를 불쌍하다고 믿었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엄마, 남편이 없다고 무시당하며 험한 일을 하고, 두 아이를 혼자 키워온 엄마, 그렇게 늙고 초라한 엄마를 나는 동정하고 있었다. 내가 남편을 믿지 못하는 것은 불쌍한 엄마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전능한 남편이라는 환상의 존재가 부재한 현실에서,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했다.


명백했다.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내가  나의 엄마가 이룬 모든 삶의 업적을 무시하며 내가 아는 세계의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망상과 달리, 엄마는 강한 여자였다. 그분은 삶의 고난과 한계 속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선택해 사는 분이였다. 그분은 나와 동생을 지금껏 살아오게 한 생명의 근원이였다. 내가 엄마를 착취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나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신 거였다. 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처럼, 잔다르크가 그 젊음을 조국의 영광을 위해 바쳤던 것처럼 엄마는 자신과 자식을 위해 삶의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하신 것이었다. 나는 여태껏 누군가의 목숨 건 사랑 속에 살아왔던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남편의 말처럼 미래를 향해 달리는 것을 그만두고, 지금 내가 이뤄온 이 달콤한 열매를 누리는 것이었다. 나는 열매 맺는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나 자신 때문에.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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