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 맺는 기쁨 Sep 21. 2021

젖을 먹여 아이를 키운다는 것

나의  모유수유 이야기

나는 내가 전에는 그 누구도 본 적 없던, 들은 적 없던, 불러본 적 없던 생명을 창조하여 오직 아기씨에게만 허락된 가장 내밀한 몸의 중심부에서 생명을 키워낸 것도 신기하지만, 태어난 아기가 내 몸에서 나온 양식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경이롭다.

 

구약의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시듯 내 몸은 끊임없이 하얀 젖을 만들어 아이의 필요를 채운다.


젖을 먹는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자기 입 속에 넣어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과는 달라 이 시기의 아이는 누구도 해하지 않고 순진하고 무구하게 악의 없이 삶을 지속해나간다. 그래서 아이는 그저 사랑스럽고 귀엽다.


엄마 젖을 통해 육신과 정신의 만족감을 느낀 아이가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낙원을 누리듯 평화로운 잠에 빠지면 나는 아이의 살짝 벌린 입에서 젖을 빼내려고 시도하지만 대부분 세 번쯤은 실패한다. 아이 입에서 젖을 뺄 때 설핏 잠에 든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모아 진공청소기처럼 다시 젖을 빨아들이면 나는 숨죽이고 가만히 기다렸다가 다음 기회를 노린다.


아이 몸에 모인 젖은 아이가 잠을 통해 꿈과 환상, 예지 사이에 머무를 때 아이의 살과 피를 만드는데, 엄마의 몸이 아이의 세계를 이루는 이 신비에서 나는 속세에 새겨진 신성을 발견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는 배가 고플 때 엄마 젖에서 나는 향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입을 쩝쩝거리는데, 돌이 넘어간 아이는 엄마 옷을 가슴까지 올려서 손으로 엄마 젖을 잡고 입으로 쏙 넣어 먹는다. 이른바 셀프 수유다. 가끔 손톱 자르는 타이밍을 놓쳐 아이 손톱에 젖가슴이 긁히면 아이가 한숨 자고 일어나면 깎아야지 되뇌다가 또 까먹고 다음번 수유시간이 돌아오곤 하는데 그래도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돌 지난 아이가 젖을 찾을 땐 아이가 졸려서 투정할 때이므로 엄마는 아프다고 아이 입에서 젖을 빼거나 볼멘소리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빠호호 할머니의 것처럼 매끈한 아이의 잇몸에서 이가 나기 시작하면

젖꼭지 위로 나란히 딱딱한 것이 느껴지는데 치아의 개수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젖에 쪼르르 닿는 이의 감촉을 느꼈을 때 이제는 슬슬 단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다. 물론 마음만 먹고 한참 뒤에 실천하게 되지만 말이다.


우리 집 둘째는 항상 입에 젖을 물고 나면 눈을 치켜뜨고 엄마를 쳐다본다. 아이는 기분 좋을 때는 엄마와 눈 맞춤한 후 젖을 입에서 떼고 환하게 미소 짓고는 다시 젖을 물어 젖 빨기에 집중하고, 잠이 급하거나 배가 고플 땐 오래도록 눈만 마주친 채 황급히 젖을 빤다.


두 입술을 모아서 젖을 물때 입술에서 세심하고 청아한 소리가 나고 입을 놀려 젖을 빨아 목구멍으로 넘기는 '흠흠' 소리가 뒤따른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르고 풍요로운 소리다.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손바닥으로 놀고 있는 젖을 툭툭 치더니 이제는 손가락 여러 개를 사용해서 젖꼭지를 요리조리 가지고 논다.

쭉쭉 당기고 튕기고 손바닥으로 누르고 쥐고 검지랑 엄지로 만졌다가 검지랑 중지에 끼웠다가 한다.

재밌는 건 이제 다리를 들어서 발까지 사용해서 젖을 가지고 노는데 네 입에 들어갈 거니 하지 말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킨다. 아이는 온몸으로 우주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렇게 나는 내 온몸으로 아이의 몸짓을 받아준다.


젖을 먹여 둘째를 재운 후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를 기다리는 첫째에게 다가가 살짝 안고 이마 위에 뽀뽀를 해준다.


"많이 기다렸지? 언니가 잘 기다려줘서 기쁨이가 잠들었어. 고마워 열매야"


그렇게 먹이고 재우고 안아주며 아이를 키운다. 나는 사그라들지만 내 젖으로 만든 아이의 세포와 시냅스 연결망, 아이의 손과 발에 남은 엄마의 감촉, 목구멍으로 넘기던 엄마의 몸, 이마에 닿았던 엄마의 입술과 귓가에 들려왔던 엄마의 다정한 말소리는 여전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다.

수유 후 품에서 잠든 둘째 쪼꼬미 시절



커버사진 ; 안녕, 아가야 알리키 브란덴베르크 그림/글    네버랜드 세계의 걸작 그림책 081, 시공주니어
작가의 이전글 어떤 깨달음은 이렇게 오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