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인가 봄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봄은 야한 기교와 현란한 말로 나를 유혹하였으나, 결국 실망을 주는 신의 없는 애인과 같았다.
나는 의뭉스럽게 보라색 띠의 바깥에 위치한 자외선을 감추고 안전하고, 너그러운 듯 비추는 봄의 빛도 싫었지만, 더 싫은 건 어중간한 온도로 부는 음흉스러운 봄바람이었다.
나는 느긋한 그 바람이 지겹다가도 꽃샘바람이 불라치면,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옷깃을 더욱 세게 여몄다.
봄이 와 겨우내 움츠리던 만물이 깨어날 때면, 나 혼자 겨울바람 쌩쌩 불던 그 거리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봄이 와도 보여줄 것이 없었다. 향기로운 꽃도 새파란 잎도, 그리고 생명도 내 것이 아니었다. 찬란한 빛 속에 나의 앙상한 가지와 거친 줄기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겨울엔 외롭지 않았다. 다들 나와 비슷해 보였으니까. 겨울바람에는 누구나 나처럼 흔들렸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부대끼는 미치도록 스산한 소리는 내 영혼을 깨웠고, 나는 그 소리에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여름은 사랑스러웠다. 뜨겁게 비추는 여름 햇볕에 모두가 흐물흐물 늘어졌으나 사실, 그 속에는 끔찍하도록 활발하게 움직이는 에너지가 깃들어 있었다. 새파랗게 짙어가는 녹음이,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그것의 증거일 것이었다.
나는 가을 역시 좋았다. 그 선선한 바람은 인생에 닥칠 혹독한 겨울이 예고했다. 나는 그 바람 앞에 벌벌 떨며, 결국 마주할 겨울 앞에 한없이 겸손해졌다. 떨어진 낙엽은 나의 어두움을 못 본척하며 살며시 덮어주었다.
봄이 다시 찾아왔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올해도 겉만 번지르르하다. 이것은 날카롭고 치열하면서 아니 그런 듯 고약한 심보를 속 깊은 곳에 감추고 있다. 봄은 혼자 잘 먹고 잘 살아 때깔 좋고 윤기가 좔좔 흐르지만, 사실 지독한 계산 속에 자신이 키운 생명을 뜯어먹는다.
아! 나는 이토록 아름답고 잔인한 봄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