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나는 사람에게 삶의 방향을 바꾸는 어떤 특정한 점 같은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것은 선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면에서 보았을 때는 선이지만, 입체로서는 나무의 뿌리처럼 원형에 붙어 수많은 가지로 나뉘고 다시 나뉘는 형상이고, 인간이 감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보자면, 시간과 공간을 통합한 우주의 시작과 끝과 같은 모습이다. 말하자면, 나는 특별한 순간에 변화하거나 성장한 것이 아니다. 성장의 가능성은 과거나 미래에 있고, 이 과거는 조상들의 수많은 과거를 거슬러 오르고, 결국 나를 이루는 원소가 별이거나 농축된 힘 자체일 때까지 다다를 것이며, 이 미래는 불어오는 바람이나 해를 덮는 구름 또는 빙그르르 돌며 떨어지는 살구나무 꽃잎 또는 끝없이 팽창하는 에너지일 테니.
그래도, 만약 인생에 그런 점의 순간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한가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소설가가 되겠다는 마음먹게 되었는지를. 사실 이것이 성장인지, 퇴행인지, 둘 다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그날 아이에게 사 줄 무지개 색깔 바스켓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 바스켓만 있다면, 아이가 내 육아휴직 수당을 몽땅 들이부어 산 무지개색 그림스 원목 장난감들을 잘 가지고 놀거라 희망했다. 고백하자면, 사실 이것은 자기기만이었다. 나는 그것 또한 아이 흥미를 끌지 못할 거라 짐작했었다. 다만 나는 존재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강박적으로 아이에게 집착하며 돈지랄을 하는 비루한 나 자신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하며 소비 행위를 지속해야만 했다. 마침 언니 공동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무지개 바스켓을 팔고 있었고, 카페 가입 후 장난감을 사고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둘러봤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인증 글과 공동체의 사회공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곳은 나처럼 검색으로 공동체에 가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대부분 오소희 작가님에 대한 팬심이나, 여성 연대를 목적으로 가입하는 곳이었다. 바로 그날 내가 그 카페를 가입한 것이 나를 성장하게 한 내 삶의 터닝포인트라면 포인트겠다. 아니, 전환점이라기보다는 운명이라고 말하는 게 더 좋겠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입한 후지 1년이 채 되기 전에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내 비록 문학을 위해 생계는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4년이 넘는 긴 육아휴직이 끝난 올 5월 나는 직장으로 돌아가 간호사로 살 것이지만, 그 선택 또한 글 쓰는 삶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며, 이것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만 하며 살아온 내가 한 가장 낭만적인 결정이었으므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는 거기서 비폭력 대화, 나를 찾는 글쓰기 모임, 공간살림세레모니, 느린 독서회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나에게 묻게 되었다. 만약 가장 나다운 희열을 쫓는다면, 그 삶이 내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겠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 표현하는 세상”, 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에게 글을 쓰고, 해석하는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단한 재능이 아닐지라도, 대단한 재능이 될 수 있는 재능임은 분명해 보였다. 특히 공간살림세레모니를 통해서 실존하는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느린 독서회를 통해 나는 나를 이루는 사상을 검증했다.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그래 그것은 세계관이다. 나의 세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역시 이것은 ‘점’ 안에서 표현하기엔 너무나 넓고 깊은 이야기이다. 점을 넓히고 넓혀, 점을 파고, 파 바다처럼 커다란 구덩이로 만들어 담아야 할 나의 서사다. 뭐가 이리 거창하냐고? 혹시 누가 아는가, 다음 세대에 출판될 문학 교과서에 나의 이름이 있을지, 나의 시가 있을지, 나의 소설이 있을지. 혹시 모르지 않는가? 다음 세대의 영웅이 나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녀가 세상을 구할지.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지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교수님! 나의 성장 포인트가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밖에 답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