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 맺는 기쁨 Aug 11. 2023

내 인생의 점괘

트라우마 대불림을 치유하는 법, 유명화



부모님의 이혼 후 나는 교회에서 위로를 얻었고,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처음 사랑을 했고, 실연도 했다. 나는 사랑이 떠난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미워한다고 믿었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였음을 깨달았다. 사랑을 잃은 후 아비를 얻은 나는, 세속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때 내가 사랑한 사람은 나처럼 어리고 예민한 남자였다. 그는 우울하고 차가웠지만, 나와 있을 때만큼은 작은 볼우물을 만들며 수줍게 웃었다. 낭만적인 감정에 맹렬히 빠져든 나는, 지독하게 그를 사랑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냉정한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던 외아들인 그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나만이, 나의 무한한 사랑만이 그를 유년 시절의 외로움에서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는 무정하게 나를 떠났다. 그가 자신을 구원할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그를 원망했다. 그를 붙들 아름다운 것이 없다며 나를 미워했다. 나는 이 상실에 너무 아파서, 단지 한 계절의 사랑이었음에도 대학 시절 내내 애도해야 했다.


지금의 나의 남편은 그런 나를, 한결같고 깊은 마음으로 품어주었다. 남편은 오랫동안 나에게 구애했다. 그 또한, 나의 첫 연인처럼 아버지의 부재- 첫 연인의 경우 아버지의 죽음, 남편의 경우 한량의 아버지- 가운데 성장했다. 그들의 어머니는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았고, 아들에게 냉정했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를 세상의 조건으로 따져 내쳐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에게 받지 못한 돌봄과 사랑을 그가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와 결혼했다. 나는 때로 괴롭고 불안했지만, 이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남편이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탐색의 시간을 가질 때, 2년간 혼자 생계를 책임졌다. 내가 먼저 남편의 진학을 제안했으며, 남편이 승진 공부를 할 때는 친정으로 내려가 뱃속의 둘째 아이를 품고, 첫째 아이를 혼자 케어했다. 나는 그렇게 남편의 부모, 남편의 구원자가 되고자 했다.


아버지의 부재와 강한 어머니에게서 소외된 존재를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 이것은 내 삶을 이루는 삶의 추동 중 하나였고, 나는 이성 관계에서 반복되는 이 패턴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내자 유명화의 '트마우마 대물림을 치유하는 법'을 읽으며 '내 패턴'이 사실, '가족의 패턴'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 가족의 트라우마가 대물림되고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북한군 장교였다. 그는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신앙 때문에 남한에 남기로 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북에 처와 아이들이 있었지만, 할머니와 만나 결혼해 다시 가정을 꾸렸다.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방에서 책만 읽었고, 할머니가 여문 손으로 가정을 일궜다. 이따금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책을 밖으로 던지며 허구의 세계에서 나와 지아비 노릇 제대로 하기를 요구했으나, 할아버지의 고집도 만만치 않아 두 분의 갈등은 골이 깊었다. 그래도 두 분의 자식 사랑은 대단해서, 아버지는 아낌없는 사랑과 돌봄 속에서 유년 시절 보낼 수 있었다. 어려운 시절이었고,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아버지는 책보가 아닌, 책가방을 맸고, 고무신이 아닌 운동화를 신었으며, 바쁜 농번기 때 농사일을 하지 않고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내 아버지 열아홉 살 때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의 완벽한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죽음 후에 신을 저주하며 신앙을 버렸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했다. 유년 시절이 아버지에게 영원히 봄이 지속되는 샹젤리제였다면, 그 이후의 시절은 불타는 타르타로스의 심연이었다.


아버지는 신을 떠난 후,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아비의 자리를 여자의 사랑으로 대신하려 했으나,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결혼을 했으나, 아버지는 아내 품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며, 오랫동안 완벽한 사랑을 찾아다녔다. 아버지는 신이 앗아간 유년 시절을 육체의 오르가즘 속에서 재경험했던 것 같으나, 순간의 쾌락은 쉽게 사라졌다. 그리고 당연히 가정은 깨졌다. 나는 찾을 수 없는 것을 찾다가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머니가 미우면서도 불쌍했고, 그들의 불화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나 또한 말할 수 없이 불행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부녀에겐 같은 패턴이 있었다. 우리 인생엔 '아버지의 상실'이라는 이슈가 반복되고 있었고, 자신의 때에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천국'과 '구원'이 우리를 옳아 메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우리 때에만 존재했던 아픔이 아닐 거라는 직관의 감각을 느꼈다. 사실 나의 할머니도 당신의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이 책 안에 내 인생의 점괘가 구절구절 드러났다.


가능하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내가 아닌 나로 살고 싶었다. 내 아버지와 같은 내 연인을 만족시킴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실패한 그들의 인생을 구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아비를 일찍 잃은 혹은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란, 아버지 대신 가정의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의 냉정한 사랑 속에 자란 남자들을 골라서 쉽고 빠르게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이 시도는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나는 남을 구원할 수 없었다. 나는 신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아버지의 삶을 반복함으로 부모의 삶에 공명하고 있었다. 나는 가족 내 서열을 거슬러 아버지의 어머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또한 외도로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함으로, 가정의 버려서 자신의 딸이 아버지를 잃게 함으로, 윗대의 아픔에 공명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구하려는 것이 내 삶이 아니었듯, 아버지가 회복하려는 것은 사실 자신의 천국이나 자신의 유년시절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살려던 삶은 사실 선조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대를 이어, 빙의된 듯 죽은 이들의 삶을 우리 인생에서 반복하며 불행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안내자 유명화는 나를 옥죄는 마음은, 그물처럼 얽힌 관계에서 생겨나서 성장하고 트라우마가 되어 대물림된다고 한다. 그녀는 이것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치유는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아난다 캠퍼스의 '아기시'수련을 통해 부모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들을 떠나 내 인생에 서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반복되는 내 트라우마를 직면했고, 나의 선조들이 슬픔과 절망을 선택하였음에도 그들은 그들 삶으로 생명에 봉사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나와 아이들은 기쁨의 편에 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현재 정화의 과정 중에 있다. 나는 선지자들을 통해 얻은 지혜를 내 삶에 구현시키며, 타인을 구할 수 있다는 오만을 기꺼이 반납하고, 겸손히 내가 되기를 간절히 구한다.


나는 직관적이고 역동적인 치유를 행하는 샤먼의 신탁에 앞에 엎드려 순종한다. 나는 이제 신탁대로 산다.


내게 내려진 신탁은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 아버지, 저는 당신들을 덮친 운명에 동의합니다. 이제 당신들의 운명을 힘으로 받습니다. 그 힘을 생명으로 받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크시고 저는 작습니다. 이제 당신을 슬픔에 두고 저는 기쁨으로 물러섭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의 부모에게 배웁니다. 저는 단지 당신의 여자입니다."


트라우마의 대물림은 끊어졌다. 새로운 점괘가 펼쳐진다. 자기 자리에 자신으로 서자, 지난 세월의 행과 불행을 담은 생명의 힘이 나와 남편을 통해 내 아이들에게 흐른다. 어둠과 죽음마저 창조적인 힘을 발한다. 부모가 그렇듯 아이들은 이 힘을 토대로, 자신의 리듬대로 자신을 산다. 이 가정의 각 존재는 존재함 자체로 생명에 봉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고 우리 삶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저 완벽하다.



# 아난다캠퍼스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자기 치유 과정'에서 읽었던 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 저녁의 불편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