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2026, Good Bye 2025’
치유의 숲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잠옷 바지로 갈아입었다. 단체로 구입한 바지로 갈아입었을 뿐인데 입꼬리는 올라가고 기분은 들뜨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잠옷 바지로 갈아입은 다섯 여자는 풍선을 불었다. 글씨 풍선으로는 창문을 장식하고 둥근 풍선들로는 벽을 장식했다. 찬 바람이 부는 바깥 날씨와는 달리 방안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한 달 전 우리 모임의 대장 산토가 진안군 정천면에 있는 ‘진안 치유의 숲’ 숙소를 운 좋게 예약했다며 1박 2일 신년회를 하자고 했다. 산토의 말에 좋다며 모두 손뼉을 쳤고 회장인 단비가 신년회의 모든 일정과 계획을 짰다.
그리고 오늘, 60대 중반 다섯 쌍 부부의 신년회가 시작되었다. 단비, 보리, 진보, 마늘, 루미가 하나씩 준비해 온 음식과 과일로 푸짐한 저녁 식사를 끝냈다. 남자들이 설거지하고 식탁을 깨끗이 정리한 후, 보리가 준비한 몇 가지 주제로 새해맞이 마음 나누기를 했다.
. 지난해 가장 좋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 손주가 태어났어요. 딸아이가 임신했어요. 손주가 유치원에 들어갔어요.
. 계획대로 되지 않아 아쉬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 어깨가 아파 수술을 했어요.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셨어요. 다이어트에 실패했어요.
. 지난해를 돌아보며 소감을 네 글자로 표현해 보면?
- 이만하면, 그럭저럭, 그냥저냥, 잘버텼다, 최고예요, 수고했소
. 2026년 새해 계획을 네 글자로?
- 정신차려, 건강하세, 만사형통(萬事亨通), 운수대통(運數大通), 운외창천(雲外蒼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부분의 일이 우리 삶의 생로병사였다. 새해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며 살기로 했다.
마음 나누기가 끝나자 단비가 휴대폰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 단체 릴스를 찍을 시간이에요.”
“릴스가 뭐예요?”
다들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젊은이들이 아기를 업고 안고 단체로 춤추는 영상을 본 적은 있지만 감은 오지 않았다.
“오, 우리가 릴스를 찍는다고요?”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단비가 꿀팁을 알려주었다.
“음악에 맞춰 몸만 살짝 움직여주면 됩니다. 예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박자가 중요해요. 박자만 잘 맞추면 됩니다. 준비됐나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며 음악을 기다렸다.
“뮤직”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음악이 나왔다.
“엥? 갑자기?”
휴대폰에서 나오는 명령어에 우리는 시작부터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엉거주춤 왼쪽 어깨를 으쓱, 오른쪽 어깨를 으쓱하며 박자를 맞춰 보려 했지만, 점점 빨라지는 리듬에 웃느라 박자마저 놓치고 말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 다시 갑니다.”
“뮤직”
“아이코, 벌써?”
처음부터 찍고, 찍고, 또다시 찍었다. 아무리 찍어도 도무지 박자와 몸동작이 맞지 않았다. 춤보다는 웃음보가 먼저 터졌다. 웃음으로 릴스를 찍는다면 최고였을 것이다. 잠시 쉬는 틈에 조용하던 마늘이 말했다.
“아이고 나는 춤 못 춰. 안 할래.”
그러자 진보도 말했다.
“나는 좀 빼고 하면 안 될까? 나 때문에 작품 망치는 것 같네요.”
남자들 쪽에서도 힘들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나는 요즘 어깨가 아파서 잘 안 올라가는데.”
“왜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음악이 나와? 누가 음악 시작할 때 ‘큐’ 사인 좀 해줘요.”
“음악이 못 쓰겠네. 음악을 다른 거로 바꿔 봐요.”
그러거나 말거나 단비와 보리는 신났다. 흥이 오르자 음악에 관계없이 앉아서 찍던 릴스를 일어서서 빙빙 돌며 춤을 춘다. 우리는 단체로 미리 준비한 모자와 안경을 쓰고 온몸으로 춤을 추었다. 한번 찍고 배꼽 빠지게 웃고, 또 찍고 턱이 아프게 웃었다. 어찌나 많이 웃었던지 입과 볼이 아팠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젊은 친구들의 생기발랄하게 펄쩍펄쩍 뛰며 놀던 모습의 릴스를 생각했는데 우리의 릴스는 멋진 춤이 아니라 서로 웃다 끝나고 말았다.
몇 가지 게임도 밤 10시까지 했다. 구구단 외워 숫자 2를 빼고 말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단은 무난히 통과했지만 3단부터는 시간이 필요했고 빨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7단, 8단은 어려워 전직 수학 선생님도 틀렸다. 우리는 수학 선생님이 틀렸다며 더 좋아했고 수학 선생님은 자진해서 탁자에 엎드리며 스스로 ‘인디언~~밥’을 외쳐 모두를 즐겁게 했다. 세계 여러 나라 이름 말하기에서도 우리는 이미 했던 나라만 계속 반복했다.
“그 나라 아까 갔다 왔다니까요?”
또 웃었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많은 나라 이름이 생각난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붙인 긴 신문지를 발로 빨리 잡아당기기, 젓가락으로 종이컵 옮겨 쌓기, 가운데 종이컵을 인원수보다 한 개 부족하게 놓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돌다가 ‘멈춰’ 사인에 맞춰 종이컵 잡기 등. 걸리는 사람은 인디언 밥을 해서 엎드리게 하고 등을 두드렸다. 학창 시절에 많이 했던 놀이를 오늘 밤 또 하게 될 줄 몰랐다.
해맑은 웃음으로 우리 안의 어린이가, 청년의 순수함이 깨어나면서 찌들었던 일상의 두께가 말끔히 해소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 때문에 활짝 웃지 못하고 살았을까? 앞으로 내 삶이 릴스를 찍을 때처럼 즐겁고 유쾌하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2026년을 릴스 찍는 기분으로 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2027년 신년회에 다시 모여 더 멋진 릴스를 또 찍자고 약속하며 한바탕 또 웃었다.
*릴스: 인스타그램에서 제공하는 15초~90초 정도 길이의 숏폼 동영상.
*만사형통(萬事亨通):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림.
*운수대통(運數大通): 운이 트여 크게 형통함.
*운외창천(雲外蒼天): 구름 밖에는 맑은 푸른 하늘이 있다는 뜻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희망의 의미.
동영상 촬영 육성민
*2026년 진안고원길 걷기가 시작됩니다. 관심있는 분은 010 9279 2340 (총무팀장) 님께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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