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의 관계 (2)
평등의 유형인 기회/조건/결과의 평등은 자유의 구현 방식에 관한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복지 논쟁입니다. 복지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느냐, 아니면 축소하느냐에 관한 대립입니다. 이것은 복지가 그냥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지는 국가 예산의 투입을 전제로 하며, 예산의 확보는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제약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재산권은 개인이 가지는 자유의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유지상주의의 견해를 봅시다. 자유지상주의는 그 명명된 이름처럼 자유를 평등보다 중시합니다.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하지만 평등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명제로 이해합니다(선우현, 2012).
이 입장에서 자유는 내가 밧줄에 묶여 있다가 풀려나는 것처럼 즉각적이고 체험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평등은 비교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A가 귤 하나를, B가 귤 두 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것이 평등에 반한다고 하여, B가 가진 귤 중 하나를 뺏는 것이 적절할까요? 둘 다 동등하게 귤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고 하여 평등하다 할 수 있을까요? A의 귤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또한 이 입장에서는 평등을 목적으로 많이 가진 자의 몫을 더 가져오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생산할수록 빼앗기는 것이 많아질 텐데 어느 누가 힘들여 더 생산하려고 애쓰겠습니까?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재산권에 대해 강력한 보호를 선호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자유지상주의에서는 복지의 확대가 다수의 무임승차자를 발생시킨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을 안 해도, 노력을 안 해도 생계가 보장된다면 일할 의욕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사회 전체의 발전과 성장에 복지의 확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따라 자유지상주의에서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 법 앞의 평등에 한정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지상주의의 논리는 쉽게 깨어지고 맙니다. 자유지상주의의 첫 번째 오류는 국가의 역할을 과소평가했거나, 모르쇠로 왜곡했다는 점입니다. 위 사례에서 국가는 B의 귤을 가져와 국가의 몫으로 하지 않습니다. 귤을 쪼개어 구성원들에게 나누어 주게 됩니다. 그 형태는 복지사업으로도, 공공 개발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국가가 B의 귤을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아주 강력한 사회주의국가가 아닌 한, 귤 하나를 통째로 가져올리는 없다는 점입니다. 귤 하나가 열 쪽이라면 다섯 쪽이든 여섯 쪽이든 많은 양을 B에게 남겨 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자유지상주의가 말하는 생산력의 저하 역시 우려할 바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유지상주의의 두 번째 오류는 생산이 생산자의 기여로만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생산은 모두의 기여를 바탕으로 합니다. 미국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Ann Warren)이 2012년 연설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의 공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자원이 필수적입니다. 원자재를 들이고 만들어진 상품을 내보낼 도로도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뿐일까요? 경찰과 소방관이 있기에 사업장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국가의 예산으로 만들어집니다. 국민 모두가 낸 세금으로 말이죠.
자유지상주의의 세 번째 오류는 인간을 돼지로 격하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먹는 것만으로 욕구가 해결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 안전, 애정, 존중, 자아실현이라는 다섯 가지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분류가 옳건 그르건 간에 인간이 생존만으로 욕구가 충족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지의 확대가 무임승차자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논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결여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은 복지의 확대를 통해 실질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발전을 추동하는 길이라고 합니다(아마티아 센, 2013). 개인이 복지로 인해 더 건강해지고 교육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이것은 그 사회의 생산력 향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런온>에서 기선겸 역시 오미주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 못 따는 게 다 선수 탓인 거 같죠? 꿈나무들을 알아봐 주고 키워 내 주는 환경 자체가 체계적이지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꿈나무들이 운동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던 거고요.”
따라서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의 실질적 자유가 확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평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티아 센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발전을 자유의 목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모든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을 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습니다. 모든 발전, 즉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발전은 개인의 자유 확장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아마티아 센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지상주의자일지 모릅니다.
※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선우현. (2012). 평등. 책세상.
아마티아 센. (2013). 자유로서의 발전(김원기 옮김). 갈라파고스.
JTBC 드라마 <런온>. (2020). 제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