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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Jan 04. 2024

연대는 동정이나 자비가 아니다

연대가 아닌 것 (1)

앞에서 저는 연대를 결합된 공동체에서 니오는 구성원 간의 상호 책임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만의 정의가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밀 리트레(Emile Littre) 역시 1877년 발간된 <프랑스어 대사전>에서 연대에 대해 채무에 대한 공동의 책임이라는 법률적 의미와 함께 "둘 이상의 다수자 사이에 성립하는 상호적인 책임"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라이너 촐, 20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으로 연대가 무엇인지 구체화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결합된 공동체라는 개념도, 책임의 범위도 모호하기만 합니다. 연대가 무엇인지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에 효과적인 방법은 먼저  연대가 아닌 것을 제외해보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제외할 것은 동정 혹은 자비입니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지하철 내 객실 통로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옵니다. 이 남성은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도, 낡은 옷을 걸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객실을 훑은 후 다시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복사물을 앉아있는 승객들의 무릎 위에 차례차례 올려놓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양해도, 상대방의 동의도 없습니다. 손글씨가 복사된 이 종이를 봅시다. 여기에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왔는지, 지금도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고 적혀 있습니다. 그는 승객들에게 잠깐의 시간을 허락한 후 자신이 놓아둔 복사물을 다시 회수하러 객실을 돕니다. 이때 한 중년 여성이 핸드백에서 지갑을 찾습니다. 이에 그는 자신의 걸음을 멈추고 중년 여성의 행동을 기다립니다. 그 여성은 지페 한 장을 복사물과 함께 그에게 건네줍니다.


중년 여성의 행동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당연히 선행일 것입니다. 동정이라 부를수도, 자비라 부를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행동을 연대라고 부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중년 여성의 행동이 저 남성에 공동체 의식, 그로 인한 책임에서 유발되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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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예로 국내외 구호단체에 행하는 우리의 후원이 연대에서 비롯된 것인지, 동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점검할 필요도 있습니다. 많은 수의 국내외 구호단체의 광고가 연출하고 있는 모습은 퀭한 눈, 축 쳐진 입술, 마른 볼, 들춰 맨 아기 등입니다. 광고에 삽입된 문구 또한 메시지 또한 잠재적 후원자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케 하는, 그리하여 전화기의 ARS를 누르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그 이유는 수혜자의 정보가 구체적이고 생생할 수록 잠재적 후원자가 기부 필요성에 공감할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예종석 외, 2017). 그래서 여러 광고에서는 수혜자의 사진을 첨부하거나, 혹은 광고 모델로 하여금 수혜자의 모습을 재연토록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에 밝은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부나 후원을 유도하기 위해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동정심을 일으키는 영상이나 사진 등은 오래 전부터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는 비난이 일어 왔습니다. 빈곤 포르노는 촬영 과정에서 대상자의 인권을 유린한다거나 수혜국 및 해당 국민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불러 일으킵니다. 또한 이러한 광고는 후원자와 수혜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선을 긋게 됩니다(주세린, 2023). 그들은 우리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 객체로만 인식됩니다.  


이러한 빈곤 마케팅이 노리는 것은 후원자의 동정심 유발일 뿐 시민들의 국적을 넘어선 연대가 아닙니다. 광고에서 보여주는 그들은 잘 사는 국가의 시민이 여유가 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합니다. 광고는 잠재적 후원자에게 공동체 일원로서의 책임을 호소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동정이나 자비, 자선을 요청할 뿐입니다. 그리고 후원자는 손쉽게 ARS를 누르고 가슴 한 켠에 선행을 했다는 뿌듯함을 챙깁니다.   



※ 참고문헌

라이너 촐. (2008).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최성환 옮김). 한울아카데미.

예종석, 이상균, 김영미. (2017). 기부 광고에서 수혜자에 대한 책임 귀인이 기부자의 공감과 기부 의도에 미치는 영향. 미디어 경제와 문화, 15(1), 7-49

주세린. (2023). 가난은 ‘활용’될 수 없다, 빈곤 포르노의 실체. 덕성여대신문(20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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