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광 Feb 04. 2024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연대는 ‘우리’를 기반으로 한다 (3)

그렇다면 내가 연대가 가능한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물론 이것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사람은 모두 혼자 사는 존재라며 '우리란 없어'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우리'를 지구상의 온 인류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동일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우리'의 범위가 바뀔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적과 동지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 역시 그와 유사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와 관련하여 커트 바이에르츠(Kurt Bayertz)는 <연대의 네 가지 용례>라는 논문을 통해 '연대'의 맥락을 분석하였습니다(이하 바이에르츠의 논의는 서유석(2013)의 논문을 참고). 우리는 이에 따라 연대의 범위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연대의 가장 좁은 범위는 공동 목표를 매개로 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을 위한 연대로, 목표를 공유하는 이들 간의 정서적 통합에 기여할 뿐 아니라 투쟁에 있어 서로 간에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노동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 등에서 볼 수 있는 연대입니다. 이러한 연대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이 옳다라는 신념, 즉 정의 관념입니다. 그러하기에 사회운동에서의 연대는 연대를 가능케하는 목표가 이해타산을 넘어설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사회운동에서의 연대는 해당 구성원들에게 강한 의무로도 작용합니다. 연대하지 않을 경우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연대하지 않는 경우는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연대해야 할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노동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집합적 선을 목표로 합니다.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근로조건 향상을 쟁취하기 어렵기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 활동에 참여하는 개인은 참여 그 자체로 위험부담을 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투쟁의 성과물을 조합원만이 향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결과물은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됩니다. 이에 노동운동에 연대하지 않는 노동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온당합니다. 서유석의 표현대로 이런 경우의 "연대는 한 마디로 '무임승차'의 반대말"입니다(서유석, 2013).  


연대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면 사회공동체의 연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회를 내적으로 결합시키고 통합시키는 연대 개념인데, 쉽게 말하자만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의 연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공통된 역사와 생활 방식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초로 해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철학자 크로포트킨(P. Kropotkin) 역시 타인과 협동적 사회관계를 이루려는 성향을 인간 본성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의 책 <사회부조 진화론>의 한 대목을 옮겨 봅니다.


"필자는 이웃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웃사람에게 때로는 물양동이질을 함께 거들어 주거나 달려가 주는 이런 행동이 결코 사랑이란 말로  표현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개별적인 동정도 아니며 그보다 무한히 넓고 큰 의식(감정)이며, 지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하는 과정에서 동물이나 인간 가운데 서서히 진전된 본능이다."(크로포트킨, 2008)


사회공동체의 연대는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맹자가 제시하는 예 역시 크로포트킨이 들었던 사례와 비슷합니다. <맹자>의 내용을 옮겨봅니다.


"인간은 모두 ‘不忍人之心(사람을 잔인하게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선왕이 "불인인지심’을 갖고 있었으니, 이에 ‘不忍人之政(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치)’이 있게 된 것이다. ‘불인인지심’으로 ‘불인인지정’을 행한다면 천하는 손바닥 위에서 움직일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불인인지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옴과 같다. 지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모두 깜짝 놀라 '則隱之心(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마음)'올 갖게된다. 그것은 안으로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려는 것이 아니고, 마을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며,아이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오명을 싫어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번역은 최영진, 2001, p377)


사회공동체를 국가로 환원하자면 국가에서의 연대가 됩니다. 그리고 이 연대는 사회보장 정책으로 제도화 됩니다. 연대가 국가가 행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있어 이념적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크로포트킨이 말하는 물양동이질 함께 하기, 맹자가 말하는 우물에서 아이 구하기가 제도화되는 것입니다. 


국가의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는 것을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사회보장기본법 제2조). 사회보장이란 국민을 사회적 위험에서부터 탈출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위험에 대해 법적 정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ⅰ) 특정의 사건이 한 사회 내 다수의 개인에게 빈번히 발생 및 누적되며(다수의 현상), ⅱ) 이 사건이 해당 개인에게 위험으로 작용하여 당사자가 누리는 삶의 질을 저하시켜(개인적 위험), ⅲ) 사회 전체적으로 이 위험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사회적 합의)이라 말입니다(김홍영, 양승광, 2020). 이 설명에서 볼 수 있다시피 사회보장은 개인적 위험에 사회가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 합의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이 합의는 사회공동체적 연대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사회보장을 포함환 국가의 복지정책 실시는 빈부의 책임이 개인과 함께 사회구조에 기대어 있다는 반성이기도 합니다. 국가가 설계한 사회구조로 인해 빈곤이 발생했다고 한다면 이를 시정할 책임도 국가에게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국가는 재분배 정책을 실시하여 빈곤에 빠진 이들을 구출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대를 가장 넓게 확장한다면 그 대상은 인류를 대상으로 합니다. 여기서의 연대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게 됩니다. 해외 구호활동이나 그에 대한 후원 역시 이러한 연대의식에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셀러(Max Scheler)는 연대를 전체 도덕계를 하나의 커다란 통일체로 묶는 원리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연대의 원리로 인해 모든 이는 타인의 행동과 욕망, 장점과 단점에  대해 공동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경성크리처 - 시즌1> 제8화 캡처


2023년에 제작된 드라마 <경성크리처 - 시즌1> 제8화가 떠오릅니다.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던 금옥당의 주인 장태상(박서준 분)은 웅성병원에서 생체실험 대상이었던 조선인을 구합니다. 그 덕에 죽을 목숨이 되었지만 마에다(수현 분) 덕에 가까스로 살아나옵니다. 마에다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장태상에게 당신답지 않게 왜 남의 일에 목숨을 걸었냐고 묻죠. 장태상은 화가 났다고 대답합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생체실험을 당하는 꼴을 보니 그냥 화가 났다고 대답합니다. 이에 마에다는 같은 조선인으로서 참을 수 없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장태상은 같은 사람으로서 첨을 수가 없었다고 대답합니다. 


마에다의 질문과 장태상의 대답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에다는 장태상에게 당신 안에 아직 조선인이라는 사회공동체가 존재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조선인이라는 소속감이 남아있었냐고 물었던 것이지요. 충분히 그럴만한 것이 장태상에게는 막대한 부가 있었기에 조선인이라는 사회공동체가 필요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에다의 말은 틀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장태상의 말은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조선인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이러한 잔인함에 화가 났던 것이지요. 그리고 장태상의 그 대답 덕분에 마에다의 마지막 질문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린 아직 친구인가요?"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입니다. 

우리의 친구는 어디까지인가요? 

우리의 '우리'는 어디까지인가요?  



※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김홍영, 양승광. (2020). 근로자로서 재직하지 않는 자에 대한 육아휴직 급여의 배제. 노동법연구, (49), 105-137.

서유석. (2013). ‘연대’(solidarity) 개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 철학논총72, 385-407.

최영진. (2001). 인의 미학적 해석-측은지심을 중심으로. 유교사상연구15, 373-386.

크로포트킨. (2008). 상호부조진화론(구자옥, 김휘천 옮김). 한국학술정보.

넷플릭스 드라마 <경성크리처-시즌1>. (2023). 제8화.

이전 27화 <런온>의 미주는 왜 벽돌을 들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