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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Feb 01. 2024

<런온>의 미주는 왜 벽돌을 들었을까

연대는 ‘우리’를 기반으로 한다 (2)

그렇다면 '우리'라는 개념으로 나와 타자를 묶는 이유는 서로가 동일하다는 인식, 혹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라는 단어로 수식 가능한 단어들에는 '연대'라는 단어가 붙여지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 - 사회 연대, 우리 공동체 - 공동체, 우리 계급 - 계급 연대등과 같이 말입니다. 


한편 국가, 가족과 같은 단어는 '우리'로 수식 가능함에도 '연대'와 함께 쓰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연스럽지만 국가 연대는 부자연스럽고,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지만 가족 연대는 어색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나 가족 내 구성원 간에는 연대 의식이 필요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국가는 법으로, 가족은 혈연으로 결합된 것이기에, 연대라는 의지적 매개체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이미 결합되어 있기에 '연대'라는 단어가 별도로 붙어 쓰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 반대로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연대'라는 말이 쓰이는 이유는 연대 의식말고는 국가들에 서로간 책임을 지울만한 매개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제조약 역시 기대고 있는 것은 서로간 신뢰에 불과하니까요.


연대가 바닥에 깔고 있는 서로간 동일성에 관한 인식 내지 목표는 철저히 주관적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는 한국의 자본가와 국가라는 집단을 매개로 하여 연대를 실천할 수도 있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국가의 노동자와 계급 연대를 실천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본사가 한국에 있는 모기업의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노동착취가 행해질때, 한국에 있는 노동조합이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로 그 소식을 듣고도 모르쇠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누구와 연대하느냐는 내가 나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인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 인식이 항상 용이한 것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의 단순한 말, "너 자신을 알라."가 명언으로 회자되는 것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매우 어려운 탓입니다. 그래서 연대는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나의 적이 누구인지 앎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헬스(Michels)같은 경우는 연대가 방어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라이너 촐, 2008). 그에 따르면 연대의 형성에 있어서는 날카로운 대립물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대항할 때야만 충분히 연대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죠.


드라마 <런온> 제13화 캡쳐

드라마 <런온> 제13화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부모님 없이 이모와 같이 사는 수빈이 또래와의 다툼으로 혼자서 출석정지를 당하게 되고, 수빈은 이를 풀기 위해  또래의 엄마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수빈에게 못 배워먹었다는 말과 함께 엄마든 이모든 데리고 오라는 쏘아붙입니다. 이 때 갑자기 벽돌을 들고 나타난 미주(신세경 분)가 중년 여성의 차를 벽돌로 찍어버릴듯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당황한 그녀가 미주의 정체를 묻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 얘 언니. 부모 있는 거 뭐 유세라고"      


미주와 수빈은 친자매도 아니었으며, 대단히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기선겸(임시완 분)을 몇 번 따라가서 수빈이 속해 있는 육상부 훈련을 참관한 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요?  제14화에서 선겸에게 털어놓는 미주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난 가끔 그런 생각 하거든요. 나한테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그거는 내가 지금 뭔가에 결핍이 있다는 거거든.  
나도 수빈이가 당하던 그런 순간들에
내 손잡고 가서 지랄해 줄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뭐 그랬던 거 같아요.  


미주는 그 중년 여성의 모습으로 인해 학창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이 떠올랐을 겁니다.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해도 나를 위해 목소리 내 준 어른 한 명 없었던 시절이 생각났을 겁니다. 이 중년 여성은 미헬스가 언급했던 날카로운 대립물이었을 것입니다. 미주로하여금 수빈과 연대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매개체였던 거지요.



※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라이너 촐. (2008).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최성환 옮김). 한울아카데미.

JTBC 드라마 <런온>. (2020). 제13,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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