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틀걸이 (1)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는 책 <고립의 시대>를 친구 빌리기 경험으로 시작합니다. 노리나 허츠는 어플을 통해 '친구'를 빌리고 기다리는 동안, 그에게 딱 시간당 40달러어치의 친밀감을 기대합니다. 혹시 이 친구라는 단어가 성적인 파트너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첫 경험자다운 걱정도 합니다. 하지만 노리나 허츠는 만난지 몇 분 만에 그 걱정을 내려 놓습니다. 둘은 몇 시간 동안 맨해튼 중심가를 돌며, 미투 운동에서부터 좋아하는 책들을 이야기 하고, 의류매장에서는 서로의 옷을 골라줍니다. 우정을 위해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도 잊습니다. 스마트폰 클릭 몇 번으로 우정을 주문하는 것, 노리나 허츠는 이를 '외로움 경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노리나 허츠, 2021).
그는 외로움이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몇 가지 사실을 내어놓는데,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 노년 범죄의 원인입니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65세 이상 노령층의 범죄 건수가 4배로 급증한 것에 대해 일본의 한 교도소 소장은 그 원인을 노령층의 외로움에서 찾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노인이 사회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소소한 경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감옥이 "집에서는 찾지 못 하는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감옥에 갇혀 보살핌과 동료애를 얻는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역시 외로움의 문제를 비켜나갈 수는 없습니다. 2023년 인천시자살예방센터는 '인천시 1인 가구의 자살에 대한 인식과 자살위험 관련 요인 분석'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경인일보, 2023). 이에 따르면 다인 가구 거주자 중 자살 고위험자는 30.1%였던 반면 1인 가구 거주자 중 자살 고위험자는 54.1% 였습니다. 자살 경험 시도에서도 7.9%와 18.8%로 배 이상의 차이가 났습니다.
실제로 경찰청의 변사자료를 활용하여 자살 동기를 분석하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납니다(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2022). 2020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정신적 문제(38.4%), 경제적 문제(25.4%), 육체적 질병(17.0%) 순이었습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통계를 살펴보면, 수치의 변동은 있으나 순위의 변동은 없었습니다(그림_2016-2020년 동기별 자살 비율 추이 참조). 자살의 원인이 된 정신적 문제를 외로움이라고 치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로움이 정신적 문제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림] 2016-2020년 동기별 자살 비율 추이
의학계에 따르면 외로움이 정신 건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한창수, 2021). 3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연구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하루에 담배 15개피를 피우거나 알코올 중독과 비슷한 정도로 건강에 해롭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암 환자의 경우에는 외로움이 심할수록 면역수치가 감소하고 통증, 우울감, 피로감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롭고 고립된 삶은 자극저하와 운 동부족, 무기력감과 연결되면서 심혈관 기능 저하와 수면장 애를 일으키고, 그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건강 지표가 악화된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고독사의 문제입니다. 외로움과 관련되어 자살이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의 문제라면, 고독사는 죽음을 발견하는 단께의 문제입니다. 법에 따른 고독사의 정의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ㆍ병사 등으로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입니다(고독사예방법 제2조).
보건복지부가 행한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총 3,378명으로 전체 사망자 수의 약 1.1%에 해당합니다(보건복지부, 2022). 최근 5년간 이 수치는 2,412명(2017년, 0.8%) - 3,048명(2018년, 1.0%) - 2,949명(2019년, 1.0%) - 3,279명(2020년, 1.1%) - 3,378명(2021년, 1.1%) 였습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최근 5년간 고독사 중 자살로 인한 사망 비중은 16.5~19.5% 였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사망자 중 자살로 인한 사망 비중이 4.2~4.7%임을 감안하면 외로움이 자살과 고독사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고독사의 증가 원인을 1인 가구의 증가 및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꼽습니다(유병선, 임주완, 김주연, 2022). 이 두 가지 중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입니다. 1인 가구라 할지라도 사회적 관계가 원활하다면 고독사로까지 이어질 확률이 적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구에 따르면 지금의 1인가구는 자발적 1인가구이기보다는 환경에 의해 발생한 비자발적 1인가구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관계형성이나 도움을 청할 사회적 네트워크를 찾기에 힘들어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변미리, 2015).
※ 참고문헌
경인일보. '나 혼자 산다' 사회에 보내는 경고신호… 1인가구 자살 고위험 연구 결과(2023. 9. 10.자)
노리나 허츠. (2021). 고립의 시대(홍정인 옮김). 웅진씽크빅
보건복지부,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2022.12.14.)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2022). 2022 자살예방백서
변미리. (2015). 도시에서 혼자 사는 것의 의미: 1인가구 현황 및 도시정책 수요. 한국심리 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1(3), 551-573.
유병선, 임주왕, 김주연. (2022). 증가하는 1인가구, 고독사 현황과 대응과제. 복지이슈포커스, 14, 02-32.
한창수. (2021). COVID-19 시대의 울분과 외로움 관리를 위한 연결성의 중요성. Journal of the Korean Medical Association/Taehan Uisa Hyophoe Chi, 64(6).
*커버사진: Unsplash의Sam Moghadam Khams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