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광 Feb 15. 2024

가족이라는 틀은 허울에 불과할까

가족이라는 틀걸이 (3)

드라마 <런온>에서 법적 개념을 떠나 이상적인 가족에 가까운 결합을 따진다면 선겸이나 단아네 보다는 미주(신세경 분)와 매이(이봉련 분)의 관계일 겁니다. 미주와 매이는 한 집에서 생활을 함께 합니다. 둘은 학교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이며 지금은 영화배급사 대표와 프리랜서 통번역사의 관계입니다. 미주가 20대 초반 매이 언니를 만나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니 둘 간에 형성된 신뢰 관계는 대단히 끈끈합니다. 그렇다고 연인은 아닙니다. 매이는 잠시 한 집에 거주하기로 한 선겸에게 자신은 무성애자이니 삼각 치정 관계와 같은 걱정을 안 해도 좋다고 일러둡니다. 둘은 꼭 가족 '같은' 관계일 겁니다. 제16화에도 이를 반영하는 대화가 나옵니다.


미주 :  나는 내 인생에 나 밖에 없는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닐 때가 많은 것 같아. 언니가 내 가족은 아니지만.

매이 : 꼭 호적에 나란히 올라야 가족이냐? 같은 피 섞여야 가족이야? 우리 엄마는 계속 너 막내 딸이라고 하던데. 이 불효막심한.


보호종료아동 출신인 미주가 매이를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된 것입니다. 매이는 미주의 언니가 된 것을 넘어, 미주에게 엄마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엄마에게도 막내 딸을 만들어 준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확인한 민법상 가족의 범위, 즉 혼인과 혈연으로만 가족이 형성된다는 규정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2021년 행해진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역시 이러한 의문이 생뚱맞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여성가족부, 2021).  이 조사 설문 중 하나는 법적 혼인, 혈연으로 연결되어야만 가족이라 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물었는데 동의한다는 응답은 51.1%,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8.9%였습니다. 아직까지는 동의한다는 응답이 조금 높지만, 이 정도 차이라면 팽팽하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눈여겨 볼 것은 이전 조사와의 비교입니다. 2019년부터 매년 행해진 이 질문에 동의율이 67.3%→64.3%→51.1%로 낮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점입니다.  


<런온> 제16화 캡처


그렇다면 지금의 가족 규정은 사람에 따라, 생각에 따라 무시해도 되는 틀에 불과할까요? 법이 가족을 뭐라 규정하던지,  한 집에서 함께 살면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미주와 매이의 이야기에 '만일'을 더해 생각해 봅시다. 


① 미주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갔다고 합시다. 당장 큰 수술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매이는 보호자로서 그 수술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② 수술에도 불구하고 미주의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의학적으로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다고 합니다. 이 때 매이는 미주의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 상황에서 매이는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매이에게 동의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법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등을 할 경우 환자 또는 환자의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제24조의2),  연명의료결정법 역시 연명의료중단 결정에 있어 가족(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의 진술을 요구하고 있으니까요(제17조, 제18조). 함께 살아왔던 미주와 매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생사를 오가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매이의 의사는 배제됩니다. 가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서로에 대한 돌봄임에도 불구하고, 돌봄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서는 가족에서 추방되는 것이지요. 법이라는 강력한 규율로 인해 말입니다. 


※ 참고문헌

여성가족부. (2021).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보고서.

JTBC 드라마 <런온>. (2020).



이전 02화 외로움의 해결 방안이 가족은 아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