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틀걸이 (4)
김순남은 가족의 범위를 정하는 민법 제779조가 가족 밖에 있는 관계를 익명화시킨다고 일갈합니다. 오랜 기간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도 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박탈시킨다고 합니다(김순남, 2022). 실제로「장사 등에 관한 법률」제12조 제1항은 무연고자 시신에 대해서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례의식을 행한 후 일정 기간 매장하거나 화장하여 봉안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여기서 연고자는 배우자, 자녀, 부모, 직계 존비속, 형제 및 자매, 사망 전 치료, 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행정기관(치료ㆍ보호기관)의 장,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 등일 뿐입니다(제2조).
한편, 2023년 일부 개정으로 무연고 사망자라고 하더라도 사망하기 전에 장기적ㆍ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 또는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함께 한 사람,사망한 사람이 사망하기 전에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하는 경우에는 장례의식을 주관하게 할 수 있다는 규정(제12조 제2항)을 신설하였습니다. 함께 살던 사람이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 방법은 법이 정한 연고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야만 행할 수 있는 보충적이고 최후적인 방법에 불과합니다. 유언장이 있다고 해도 법이 정한 가족 뿐 아니라 행정기관의 장에게도 밀리는 순번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지난다고 하여도 무연고자로 규정된 사망자가 연고자로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슬퍼할 권리 뿐만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함께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함께 설계할 권리가 박탈되기도 합니다(김순남, 2022). 2021년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었던 사연이 있습니다. 아파트 쳥약에 있어 노부모부양 특별공급에 당첨이 되었다가, 노부모가 친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당첨이 취소된 사건입니다(디지털타임스, 2021). 아버지가 재혼한 어머니를 38년간 모시고 살았지만, 계부모의 경우 직계존속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것이 이 뿐만이 아닙니다. 건겅보험의 피부양자가 될 수도 없으며, 상대방이 사망한다 해도 유족연금을 수령할 수 없게 만듭니다. 민법 제779조는 함께 거주하는 시민들의 삶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임의적이며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립니다. 그리고 가족 밖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관계 형성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가족만이 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정상적 관계로 규정합니다. 가족에서 배제되는 이들은 관계 속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체성에 대해 사회적 승인을 얻지 못 합니다. 주인이되 주인으로서 인정받지 못 하는 것이지요.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보장받는 것들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법이 정한 가족이라는 관계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는 이 가족의 범위를 민주주의라는 눈으로 바라 볼 필요성에 부딪힙니다.
※ 참고문헌
김순남. (2022). 가족을 구성할 권리. 오월의봄
디지털타임스(2021. 2. 9.자). 38년 모셨는데 계모라서 취소라니? 어이없이 날라간 청약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