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의 평등_평등의 세 번째 유형
평등의 세 번째 유형은 조건의 평등입니다. 조건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수긍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성찰을 통해 도출되었습니다. 기회를 모두에게 주는 것만으로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조건까지 맞추어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 그래야만 합리적이고 수긍할만한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입니다. 기회를 넓게 보아 조건까지 동등하게 갖추어진 상태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앞에서 서술했던 기회의 평등을 ‘형식적 기회의 평등’이라고, 지금 다룰 조건의 평등을 ‘실질적 기회의 평등’으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청년 취업 시장을 대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는 서열화되어 있습니다.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뿐 아니라 사업장이 가진 문화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물론 취업 희망자에 따라 중요시하는 가치는 다르기에 일자리의 서열이 획일화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임금 및 근로시간과 같이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만 본다면 덩어리 지어 서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낫고, 동일한 중소기업이라고 하더라도 2‧3차 하청 사업장보다는 1차 하청 사업장이 낫습니다. 또 하나의 기업 안에서는 계약직 일자리보다는 정규직 일자리가 낫습니다. 소위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그 희소성이 전제됩니다.
서열화된 청년 취업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은 평등한 기회 제공을 전제로 합니다(양승광, 2018). 하지만 이 기회라는 것이 입사시험 응시 기회와 같은 형식적 기회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직업 확보를 위한 능력 형성 기회의 평등한 보장을 의미합니다. 실질적으로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조건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그러하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좋은 직업에 대한 접근 기회가 차별적으로 제공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을 노동권적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노동시장 진입 전부터 노동 기회가 제한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를 공지영의 소설 제목인 ‘의자놀이’로 표현한다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세 개의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다섯 명의 청년이 준비하고 있는데, 그 출발선은 각각 다른 상태입니다.
따라서 청년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첫 번째로 확보되어야 할 것은 미취업 청년들의 출발선을 되도록 맞추는 일입니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토지에 예속된 농노가 토지의 속박으로부터 이탈하여 자유로운 인격으로서 활동할 것을 요구한 것에서 출발했습니다(이희성, 2004). 이를 감안한다면 미취업 청년들의 출발선이 조정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2018년 논문을 통해 이러한 출발선 조정을 ‘공정노동권의 보장’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그 상태를 그린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위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조건의 평등 역시 경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대로 된 경쟁, 공정한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기회뿐 아니라 각 개인에게 부여된 조건 역시 동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계급,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을 전제로 부여되는 기회의 평등은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할뿐더러 사회적 자원 배분 차원에서도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조건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과는 다르게 사회적 자원의 투입을 요구합니다. 부모에 따라 발생하는 차등적 조건을 사회 공동체가 시정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건의 평등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을 우리 주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청년 미취업자를 위한 정책으로는 ‘서울 청년수당’을 들 수 있습니다. 서울 청년수당은 중위소득 150% 이하의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6개월간 매월 50만 원을 지급합니다. 아동‧청소년 정책으로는 ‘서울런’이 있습니다. 서울런은 수급권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등의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 및 학습 멘토링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울런에 관해 정책적 효과성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과는 상관없이 그 목적이 조건의 평등 조성이라는 점은 인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아무리 다층적이고 두텁게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조건이 완벽하게 평등해지기란 불가능합니다. 각자의 부모가 가진 재산과 성품, 자녀에게 쏟는 사랑과 노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의 말은 이를 대변합니다.
"사실 아낌없이 사랑해 주고,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고, 리틀야구 리그의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비게 해 주고, 도서관에서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고, 음악 레슨을 받게 해 주면서 그들을 키웠던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부모가 그들을 임신했을 때부터 이미 커다란 행운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2014: 로버트 H. 프랭크, 2018 재인용)
※ 참고문헌
로버트 H. 프랭크. (2018).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양승광. (2018). 미취업 청년의 노동권 보장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이희성. (2004). 각국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실질적 보장에 관한 노동법상 고찰. 비교사법, 11(4 (상)), 387-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