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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Dec 21. 2023

왜 결과의 평등이 매력적일까

결과의 평등_평등의 네 번째 유형

평등의 네 번째 유형은 결과의 평등입니다. 결과를 고르게 만든다는 것. 브라이언 터너가 제시한 사회적 평등의 한 유형이라고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사회 일반에서 반감이 심합니다. 이 분위기는 우리 법체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이 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평등이 결과의 평등은 아닙니다. 헌법재판소 결정(헌법재판소 1999. 5. 27. 선고 98헌바26 결정)을 잠시 옮기겠습니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평등의 원칙은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부정하는 절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과 법의 적용에 있어서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상대적 평등을 뜻하고 따라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차별 또는 불평등은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만을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결과의 평등에 대해 확실한 선을 긋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드러기 반응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더 나아가 그 근처로는 발을 한발자국도 디디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결과의 평등이 가지는 반자본주의적 속성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취하고 있으니 반자본주의적 평등 이념은 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결과의 평등을 반자본주의적이라는 간단한 평가만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GraphicMama-team님의 이미지 입니다.


조건의 평등은, 그것이 달성되기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달성된다고 할지라도 완전한 평등이라도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건의 평등은 그를 둘러싼 가족, 계급 등의 환경만을 문제삼을뿐, 그가 어떤 재능과 능력을 타고났느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가 운(運)에 달려있듯이,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도 운에 달려있습니다. 나는 머리가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운동능력을 타고났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운동능력이 없이 태어난 제가 운동으로 할수 있는 것은 체력 관리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프로야구 선수나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잼 햄브릭 교수의 2014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력과 학업 성적의 관련성은 4%에 불과했습니다. 노력 관련성이 스포츠가 18%, 음악이 21%, 게임이 26%임을 감안한다면 학업 성적은 다른 것보다 노력으로 극복하기가 어려운 분야입니다(김영훈, 2023). 이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건의 평등과는 무관하게, 경쟁을 통해 자원을 배분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 용은 이무기가 변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용이었던 것입니다. 


결과의 평등이 그 실현 가능성과는 별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적 자원을 배분함에 있어 기회가 평등하든 조건이 평등하든, 경쟁이라는 여과기를 통과하는 순간 그 자체로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자원의 획득이 타고난 신체든, 타고난 환경이든 결국은 운(運)에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원이 배분되는 과정에 힘쓸 것이 아니라 자원 배분 그 자체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또 결과의 평등이 가지는 강점은 그것이 대변하려는 집단이 사회적 약자라는 데 있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집단이든, 출생 환경이 부유한 집단이든 그들은 경쟁을 통해 많은 몫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경쟁을 통해 이 사회의 강자로 도약하는 것이 가능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수월합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고 환경도 넉넉하지 않은 집단이라면 그들은 항상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결과의 평등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여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합니다. 결과의 평등이 평등의 여러 유형 중 가장 인본주의적이며 인간학적 의미에 부합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선우현, 2012).    



※ 참고문헌

김영훈. (2023). 노력의 배신. 북이십일.

선우현. (2012). 평등.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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