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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Dec 14. 2023

기회가 평등하면 결과는 정의로울까

기회의 평등_평등의 두 번째 유형

평등의 두 번째 유형은 기회의 평등입니다. 기회의 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평등에 관한 규범적 이념입니다.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평등이 실현되었다는 관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말은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취임사일 것입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참 멋집니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 평등한 기회 + 공정한 과정 = 정의로운 결과


도식 역시 깔끔합니다. 이 도식을 나타내는 말이 ‘능력주의 사회’입니다. 개인이 지닌 실력, 능력과 노력 등에 따라 사회적 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관념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출생 등과 같은 개인적 배경은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 이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합니다. 개인의 배경이 기회의 획득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기회의 활용에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같은 대학, 같은 전공의 졸업생이라 할지라도 취업하는 기업과 시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돈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아버지가 사준 승용차로 통학하며, 어머니의 카드로 용돈을 쓰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일 과외와 주말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벌어가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재능과 노력이 동일하다 해도 대기업과 같이 좋은 일터에 정규직으로 취업할 확률은 전자가 훨씬 더 높습니다. 이것은 입사 시험의 기회가 다르게 주어진다거나, 입사 과정이 오염되어서 발생되는 결과가 아닙니다. 그저 두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자원이 달랐기 벌어지는 문제입니다.


비단 취업뿐일까요? 재능과 노력에만 비례해야 할 것만 같은 대학 입시에서도 개개인이 가진 자원은 매우 중요합니다. 최필선과 민인식이 한 2015년 연구는 부모의 소득에 따라 자녀의 수능 성적 등급이 달라짐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습니다(최필선‧민인식, 2015). 5 분위로 구분된 소득 계층에서 계층이 높아질수록 자녀의 중위권 이상의 수능 등급 비율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소득층인 소득 1 분위에서의 수능 1~2등급 비율은 2.3%였던 반면, 고소득층인 소득 5 분위에서는 그 비율이 11%였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소위 주요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곡에 진학할 수 있는 확률은 소득 5 분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연구에서 4년제 대학 진학률은 소득 계층에 따라 30.4% ‣ 41.1% ‣ 53.4% ‣ 62.3% ‣ 68.7%로 비례하여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냅니다(최필선‧민인식, 2015).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4년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향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 입시 역시 그렇습니다. 신경민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19학년도 전국 8개 영재학교 입학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있습니다(사교육없는세상, 2019a). 이에 따르면 전체 영재학교 입학자 중 서울·경기 지역 출신 입학자가 전체의 70.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학교의 소재지 때문이 아닙니다. 대전과학고는 대전 출신이 17.9%인 반면 수도권 출신은 69.5%였습니다. 부산의 한국과학영재학교는 부산 출신이 17.7%인 반면 수도권 출신은 64.5%였습니다. 또한 서울‧경기 지역에 인구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입학생들의 출신학교가 위치한 시·구를 분석한 결과 서울은 상위 5개 구(강남구, 양천구, 노원구, 서초구, 송파구)가 전체 서울 지역 입학생(319명)의 69.9%(233명)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상위 5개 시(고양시, 성남시, 용인시, 안양시, 수원시)가 전체 경기 지역 입학생(266명)의 71.4%(190명)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소득이 높아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에 입학생이 쏠려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서울과학고 입학생(128명)의 48.4%(62명)가 강남 대치동의 특정학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고소득 지역 쏠림은 외국어고등학교 및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입학에서도 나타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김해영 국회의원과 고교 유형별 입학생의 출신 중학교 소재지 및 사회적 배려대상자 선발전형의 운영 실태를 공동 분석한 자료가 있습니다(사교육없는세상, 2019b). 이에 따르면 외국어고등학교 입학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은 고양‧강남‧성남‧노원‧수원‧용인‧양천‧서초 순이며, 서울‧경기 모두 외고 입학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4개 지역에서 해당 지역 내 외고 입학생의 45%를 차지했습니다. 전국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입학생 가운데 49%(1,125명)가 서울‧경기 소재 중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양천·강남·송파·노원·광진 등 상위 5개 지역 출신이 서울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입학생의 48%(262명)를, 용인·성남·고양·부천·안양 등 상위 5개 지역 출신이 경기 자사고 입학생의 64%(369명)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구본창은 직업, 학벌, 경제력 같은 부모의 특권이 교육제도를 통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회적으로 미력한 부모의 배경을 가진 계층은 안정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구조가 연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구본창, 2019). 결국 이전에 보았던 도식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만으로는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능력주의 사회’ 역시 그러한 사회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도출된 단어가 아닙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책 <능력주의의 등장>을 통해 1958년 처음 제시한 용어인데, 영국 교육제도를 풍자하면서 부정적으로 표현한 말이 ‘능력주의’였습니다(로버트 H. 프랭크, 2018). 



※ 참고문헌

구본창. (2019). 입시 공정성을 넘어 특권 대물림 교육 중단으로. 교육비평, (44), 24-49.

로버트 H. 프랭크. (2018).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취임사(2017.5.10.)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19a). <‘영재학교 입학자 출신 중학교 지역 분석’ 보도자료(2019.10.10.)>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19b). <‘고교 유형별 입학생의 출신 중학교 소재지 및 사회통합전형 운영 실태 분석’  보도자료(2019.10.21.)>

최필선, 민인식. (2015).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사회과학연구, 22(3), 31-56.

커버사진: UnsplashVasily Kol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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