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평등에서 사회적 평등으로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자유에 앞서 꼽히는 이념은 평등입니다. 시민의 자격에서 재산의 기준을 없애고 혈통의 기준을 낮추었다는 것을 포괄성(inclusiveness)이라고 하여 평등과 구분되는 별도의 특징으로 삼기도 합니다(Laaflaub, 2010). 하지만 이러한 포괄성 역시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보여줄 뿐입니다.
고대 아테네에서의 평등이 지금 시대에서 강조되는 경제적 평등까지 나아갔던 것은 아닙니다. 그 시기 평등을 나타내는 두 가지 용어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의미하는 이소노미아(isonomia)와 평등한 발언권을 의미하는 이세고리아(isēegoria)였습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민들의 대표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개개인이 각각 하나의 정치 단위였습니다(송문현, 2015). 소송 사건을 다루기 위해 있었던 6,000 명의 배심원단은 매년 추첨을 통해 정해졌으며, 민회를 뒷받침하는 500인 협의회의 위원들 역시 추첨을 통해 각 부족별로 50명씩 선발되었습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평등 이념이 정치적 평등에 집중되었지만, 이러한 민주 정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노예제였습니다. 노예들이 있었기에 시민들이 노동에서 해방되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송문현, 2015).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정치학>을 통해 시민이 갖추어야 될 것으로 여가를 들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노동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여가가 없기에 정치와 철학에 대해 사유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정치적 평등이 투표권의 평등, 피선거권의 평등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투표권이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해도 먹고살기에 바쁘다면 투표장에 나가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연령이 되면 누구나 공직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다고 해도 선거 운동을 위해 생업을 중단할 시간이 없으며 선거 운동에 쓸 돈이 없다면, 내가 가진 피선거권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평등을 위해서는 정치적 권리를 활용할 수 있는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필요합니다. 결국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평등 혹은 사회적 평등을 딛고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평등'은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평등이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은 상태입니다. 복수의 개체를 전제로 한 비교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비교가 간단치 않습니다. 비교의 대상인 개체가 동일성을 가진다면야 둘 간의 비교는 수월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고유한 특성을 가집니다. 성별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고, 얼굴 등 생김새가 다르고, 취향도 다릅니다. 그에 따라 살아온 역사도 다릅니다. 이렇게 고유하게 독립된 개체를 평등하게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의 사실을 놓고서도 평등한지 여부가 다투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 참고문헌
송문현. (2015). 아테네 민주정치의 본질과 그 현대적 의미. 역사와 세계, 48, 243-272.
Raaflaub, K.A. (2010) , ‘Democracy’, in Kinzl, K. H. (Ed.). A companion to the Classical Greek world (Vol. 73). John Wiley & Sons. pp 387-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