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이념과 고대 아테네의 자유
민주주의를 방법이나 도구로 보지 않는다는 말은, 민주주의에 특정한 이념 내지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특정한 이념성을 가진다고 말할지라도, 그 이념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견해가 통일되지 않습니다. 혹자는 민주주의의 이념들이 학자에 따라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이 양상이 마치 인간이 가지는 소망 목록과 같다고 표현합니다(장영수, 2020).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민주주의가 텅 빈 기표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절대선(絶代善)인 텅 빈 기표이니 소망하는 모든 것을 태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라는 배에 공통적으로 태우는 이념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입니다. 현대 민주주의로 한정하면 연대 역시 여기에 더해질 것입니다. 시민혁명을 통해 1794년 채택된 프랑스 삼색기는 파란색, 흰색, 빨간색으로 구성되는데, 각 색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박애가 종교적 개념이라는 데서 연대와 구별되기는 하지만(장승혁, 2020), 많은 학자들은 박애가 연대의 선행 개념이라는데 동의하고 있거든요(라이너 촐, 2008). 물론 학자에 따라 Fraternité를 박애가 아닌 형제애 또는 우애로 번역하기도 합니다(라이너 촐, 2008; 고원, 2020). 그렇다면 현대 민주주의 이념이라 부를 수 있는 자유, 평등, 연대가 무엇인지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맨 먼저 자유를 다루어 보지요. 우리나라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19세기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영어인 ‘freedom’과 ‘liberty’가 ‘자유(自由)’로 번역된 것이지요(문지영, 2009). 자유의 개념이 시작된 서양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동일했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의 자유는 권리라기보다는 단지 노예가 아닌 상태만을 의미했을 뿐입니다(Patterson, 1992).
플라톤은 <국가>에서 자유를 ‘엑수시아(exousia)’와 ‘엘레우테리아(eleuteria)'로 구별합니다. 엑수시아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인 반면, 엘레우테리아는 이성의 인도를 받는 자유, 즉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정치 이념으로서 요구되는 자유는 엑수시아가 아닌 엘레우테리아입니다.
실제로 고대 아테네에서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었습니다. 비판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었으며, 그 내용 역시 신랄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심한 비판을 가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발행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플라톤은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옹호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는데 말이지요. 이처럼 고대 아테네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문제 제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적 정치체제의 근간이었기 때문입니다(송문현, 2015).
※ 참고문헌
고원. (2020). 프랑스 혁명 이념 ‘우애’에 대하여: 한국어 번역 문제와 개념의 역사. 비교문화연구, 60, 1-26.
라이너 촐. (2008).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최성환 옮김). 한울아카데미.
문지영. (2009). 자유. 책세상
송문현. (2015). 아테네 민주정치의 본질과 그 현대적 의미. 역사와 세계, 48, 243-272.
장승혁. (2020). 사회보험과 사회연대. 경인문화사
장영수. (2020). 헌법학. 홍문사.
Patterson, O. (1992). Freedom In The Making Of Western Culture. Basic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