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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Nov 26. 2023

민주주의는 승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다수결과 민주주의

통치하는 인민은 실재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실재의 특징은 셀 수 있음, 즉 측량 가능성일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다수결과 동일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가끔 다수결로 하자는 제안을 하고는 합니다. 이런 제안 앞에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다수결이라는 말에 모두가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만 봐도 그렇습니다. 합의를 이루지 못한 법안이 통과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에서는 날치기다, 민주주의를 유린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국민이 주신 의석이다, 이게 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옵니다. 회기가 바뀌어도 국회에서 나오는 말들은 항상 똑같습니다. 민주주의와 다수결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다수결로,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치환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민(民)의 견해는 하나로 합의될 리 없다. 두 번째는 지배권은 승자 혹은 다수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 두 관념이 동시에 자리 잡으면 민주주의는 다수결과 같은 의미가 되어 버립니다. 


첫 번째 관념에 대해서는 수긍이 쉽습니다. 민(民)이 실재한다면 민(民)의 생각들이 하나일리는 없으며, 하나이기를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자체로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며, 이것은 현상이기도 하지만 당위니까요.


문제 되는 것은 두 번째 관념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수긍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배권은 승자나 다수자에게 돌아가야지, 소수자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과연 민(民)을 승자나 패자로 나누고 승자에게 지배권을 부여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걸까? 이건 민(民) 내에서 다시 새로운 지위, 차등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재반박이 가능합니다. 몽상가적 비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수와 소수,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않고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의사 결정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특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무엇이 다수의 의견인지 판단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반박입니다. 만일 그 절차가 무시된다면, 혹은 그게 불필요하거나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그게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 Unsplash의Parker Johnson

믈론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무언가 하나를 택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다수자와 소수자가 갈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수결은 의사 결정의 방법일 뿐입니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담보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어떤 학급에 20명의 학생이 있으며, 이 중 한 명인 A에 대해 집단 따돌림이 있다고 생각해 보지요. 이 집단따돌림을 민주주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추가해 봅시다. A에 대한 집단따돌림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급회의에서의 다수결 투표를 거쳐서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투표 결과도 11대 9나 12대 8이 아니라 19대 1이었습니다. 아니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학급 구성원 분위기를 보니 집단따돌림을 당하게 될 A도 반대를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A를 포함한 20명 전원이 A에 대한 집단따돌림에 찬성하는 표를 던지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 집단따돌림을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집단따돌림은 적어도 다수결에 부합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이것을 민주적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회의를 통해 다수결을 거쳤는데 말입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민주주의를 의사결정 수단으로 치부했다는 데 있습니다. 


2인 이상이 모인 모든 공동체에서 의사결정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의사결정은 다수결로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합니다. 만장일치제도 있겠고, 숙의제도 있습니다. 이 다양한 의사결정 방법 중에 다수결이 가장 간편하고 빠르긴 합니다. 하지만 다수결이 가장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다수결에서는 소수의 의사가 없는 것처럼 생략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수와 소수가 사안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사안이라면, 또한 기존의 다수와 소수 그룹이 지니고 있던 것들이 앞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면, 다수결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있어 소수에 대한 자원 확충은 필연적으로 다수가 가진 자원을 박탈하게 되니까요.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기득권층의 반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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