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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Dec 03. 2023

방해받을 수 있어야 자유롭다

자유의 질서적 성격

이렇듯 고대로부터 자유는 무질서가 아닌 질서에 가까운 개념이었습니다. 중세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 역시 자유를 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고, 참된 자유를 최고 이성인 영원법에 복종하려는 의지로 규정하였습니다. 


자유의 질서적 성격은 존 로크(Jhon Locke, 1632~1742)에게서 더욱 강해집니다. 이전까지 자유에 대한 논의가 대개 질서적 자유와 무질서적 자유로 나누어 전개되었다면, 존 로크는 자유를 방종과는 구별되는 질서적 상태로 인식합니다. 그는 <통치론> 제29절에서 자유를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유와 사회 속에서 사는 인간의 자유로 나눕니다. 타고난 자유가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연법으로만 구속되는 자유라면, 사회적 자유는 제정된 국가법의 영향만을 받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 속 인간은 일차적으로는 법의 지배를, 법이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자연법에 구속되게 됩니다. 자연법과 관련된 내용이 기술된 6절을 조금 옮긴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상태이긴 하지만 방종의 상태는 아니다. … 자연 상태를 지배하는 자연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바로 그 법인 이성은 그것을 따라야만 하는 전체 인류에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독립적이므로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을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존 로크에게 자유는 방종과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이었습니다. 자연적 자유 역시 자연법을 따라야 하기에 모든 자유는 어찌 되었든 법의 구속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존 로크의 자유는 권리이자 의무였습니다(문지영, 2004). 

사진: Unsplash의Zach Rowlandson

더 나아가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자유의 제한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자유의 지향점을 채웠습니다. <자유론>을 통해 밀이 제시한 자유의 제한 원칙은 해악의 원칙, 공리주의 원칙, 불쾌감의 원칙, 제한적 후견주의 원칙이라는 네 가지였습니다(최봉철, 2019). 


첫째, 밀은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하였습니다(해악의 원칙). 


둘째, 윤리적 문제의 기준을 효용으로 삼았던 공리주의자 밀은 각 개인이 타인에게 마땅히 도움이 되는 일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사회가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개인에게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습니다(공리주의 원칙). 그 예로는 법정 증언, 사회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공동 방위나 공동 작업, 위험에서 이웃을 구하는 일, 자선의 손길을 내미는 일 등을 들고 있습니다. 


셋째, 밀은 미풍양속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 역시 제한된다고 보았습니다(불쾌감의 원칙). 예를 들자면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옷을 모두 벗거나 애정행각을 벌이는 등의 행위입니다. 


넷째, 후견주의란 행위자 본인의 좋음이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그의 의사에 반하여 그의 자유를 제한하는 원칙입니다. 이에 대해 밀은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리적 이익이든 도덕적 이익이든 그 자신의 이익은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좋다는 이유로, 그것이 그를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로, 타인들이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거나 혹은 심지어 올바르다는 이유로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강제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밀이 모든 경우에 있어 반후견주의적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 위험한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에게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그를 잡아두는 것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행위자의 의사결정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입니다. 후견주의를 제한적이고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제한적 후견주의 원칙).


지금까지 살펴본 사유의 변천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유의 성격입니다. 자유라는 개념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 혹은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상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상태를 위해서는 홀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상태에서는 자유라는 개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이념이면서도 권리인데,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권리를 주장할 상대방이 존재치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혼자 살아감에 있어서는 이념 또한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 내지 공동체 내에서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욕구는 모두 실현될 수 없습니다. 타인의 욕구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에 서로 간의 조절이 필수적입니다. 결국 자유라는 개념에는 타인에 대한 고려, 타인과의 협력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에 자유는 관계적 개념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참고문헌

문지영. (2004). ‘자유’의 자유주의적 맥락. 정치사상연구, 10, 171-192.

존 로크. (2019). 통치론(권혁 옮김). 돋을새김.  

존 스튜어트 밀. (2015). 자유론(권기돈 옮김). 웅진씽크빅.

최봉철. (2019). 밀의 자유제한의 원칙들. 법철학연구, 22(2), 127-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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