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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May 27. 2020

8. 노크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병원 주차장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주차장 한편에는 비둘기들이 사이좋게 식사하느라 분주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비둘기들의 식사를 방해할 수 없어 보였다. 병원에 들어서면 1층 입구에 투석실이 있었다. 의외로 투석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다. 구급차는 바쁘게 병원을 오갔다. 요양병원 특성상 일부 치료 외에 대형 병원에서의 치료를 병행하는 환자들이 많은 탓이다. 중환자실에 들어서기 전 문을 통해 안을 살핀다. 혹시라도 치료 중이거나 간병인들의 일이 있으면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 없이 눈을 뜨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아들 오는지 아시나... 눈을 뜨고 계시네!’ 기분이 좋아져 들어갔다.
“아들 출근했네. 이쁜이 할머니! 아들 왔어요!”
간병인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 속 손주 얼굴에 빠져있던 팀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자, 당 떨어질 때 하나씩 드셔요”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아몬드로 만든 사탕을 한 봉지 사온 나는 누가 볼까 서둘러 전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항상 간호사실과 간병인들 모두를 위해 사오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엄마를 챙기고 있는 간병인들을 먼저 챙기게 되었다.
“고맙네. 매번 잘 먹고 있어. 어여 엄마 만나세요”
가볍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엄마에게 갔다. 그 짧은 사이에 눈을 감으셨다.
“엄마? 엄마? 일어나셔. 아들 왔어”
슬그머니 다시금 눈을 뜨신다. 엄마 옆에 앉기 전 언제나처럼 얼굴을 살핀다. 하품을 많이 하시는 엄마는 언제나 눈곱이 두 눈가에 가득하다. 오래되었는지 이미 말라서 딱 달라붙어 있다. 침대 옆 사물함 위에 놓은 물휴지를 한 장 뽑아 손가락 끝에 끼워 눈가를 먼저 적신다. 애써 눈을 뜨셨는데 다시 감게 만들었다. 잠시 눈곱이 젖어들면 조심스럽게 정리를 했다.
“엄마, 시원하지? 깨끗해졌어. 아들 봐봐.”
어떤 때는 또렷이 눈을 맞추시고, 어떤 때는 시선이 흐트러진 채 눈을 뜨고 계셨다. 이 날은 또렷이 고개를 살짝 움직여 나를 바라보셨다.
“별일 없었어? 얼굴 좋아 보이시네 우리 엄마. 아들 회사에서 오는 길이야”
눈을 깜빡이신다. 나는 혼자 눈으로 대답해 주신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예, 아니오 두 가지 대답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계속 그렇게 질문을 하고 대답으로 생각했다.
“아들 보고 싶었으면 눈 감아봐”
몇 초 지났을까 눈을 감으신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엄마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마음을 전했다. 어느새 까칠한 내 수염 덕분에 엄마 얼굴이 부분 부분 빨게 졌다.
“그만 좀 쪽쪽거려. 아들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식사 시간이 되어 팀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서러우면 그만이죠. 좋은 걸 어떻게 해요. 식사 이리 주세요. 제가 드릴게요”
팀장은 나의 대답에 웃으며 영양캔을 건넸다.


콧구멍을 통해 위로 연결된 콧줄의 마개를 열고 커다란 주사기를 꽂았다. 그리고 정해진 물을 먼저 드린다. 물이 다 들어가면 링거 고리에 있는 튜브를 연결해 영양캔을 붓고 고리에 걸어 놓았다. 투입량을 조절하고 기다리면 20분 정도 천천히 콧줄을 통해 영양음료가 흘러 들어갔다. 이것이 식사였다. 엄마는 계속해서 입을 오물 거리신다. 눈을 맞추며 나는 계속 눈으로 대답을 요구하며 수다스럽게 말을 건넨다. 휴대전화 속 딸아이의 동영상도 보여드리고, 가족사진도 보여드리며 그날그날 끊임없이 보고를 했다. 신기하게도 깊은 잠을 주무시는 것 같다가도 딸아이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뜨신 경우도 많았다. ‘보고 싶으셨나?’ 혼자 생각하며 아무리 불러도 눈을 안 뜨실 때는 딸의 목소리를 활용하곤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주사기를 연결해 물에 녹인 가루약을 드리면 모든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이런 영양음료를 통한 식사를 하루 네 번에 걸쳐 일정한 시간에 하고 계셨다.

“우리 엄마랑 밥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엄마! 부침개 드시고 싶지. 어여 일어나서 아들 집으로 갑시다. 마음껏 해드릴 테니”


나의 혼잣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말하면 말할수록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답답함에 말을 멈추고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고 있으면 때때로 머릿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마치 환청이 들리 듯. 누워계신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어두운 방 안에 홀로 갇혀 계신 것 같다고 느꼈다. 한 평도 안 되는 그 좁은 병상이라는 방안에. 어떻게든 문을 열어 밖으로 나오시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지난날 홀로 계시게 한 아들의 잘못을 사죄드렸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말하기도, 가족사진을 보여드리기도 했다. 몇 번이고 하루하루 어떻게든 굳게 닫힌 문을 열고자 열심히 노크를 했다. 힘겹게 눈을 뜨는 엄마를 보며 ‘엄마도 같은 마음일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실 가장 힘든 사람이 병상의 엄마일 테니.


나의 노크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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