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명절 열흘 전 토요일 우리 삼남매가 모였다. 각자 살기 바쁘던 우리는 엄마 덕분에 형제애를 돈독히 해가고 있었다. 매주 만나 식사를 하고 못해왔던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새로웠다. 결국 바쁜 것보다는 마음이 없었구나 싶었다. 모두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되돌릴 순 없었다. 엄마 덕분에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집 근처 삼겹살 집에 안사람과 딸아이까지 다섯 명이 모여 오손도손 식사에 술 한 잔을 나눴다.
“대선이가 매일 엄마 보느라 고생이 많겠네! 바쁜데 너무 무리하지 마. 엄마도 이해하시겠지”
작은 누이가 걱정스레 말했다.
“무리는 무슨. 매일 엄마 보니 나는 좋지. 누이들이 주말마다 서울 오느라 많이 피곤하겠다. 쉬지도 못하고”
“엄마 덕분에 여행하고 좋지. 이렇게 다 같이 얼굴도 보고. 왜 진작에 이렇게 못했는지 몰라”
나의 말에 큰누이가 정성스레 고기를 자르며 말했다. 야무지게 음식을 잘하는 큰누이는 식당에 와서도 쉬지 않는다. 먹는 것보다 챙겨주느라 더 바쁘다.
“그니까. 건강히 계실 때 자주 모여서 시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자식들은 다 똑같나 봐”
나는 고기를 맛있게 씹으며 대답했다.
“지난 것 그만 생각하고. 그래도 햇살로 모시고 엄마가 많이 편해지신 것 같아”
작은 누이가 달래듯 말했다.
“첨에는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히 성실히 잘해주시는 것 같아. 조선족 분들이라 간병인도 걱정했는데 오히려 말없이 묵묵히 일하시니까 더 좋더라”
“그니까. 의료원 간병인만 생각하면 정말 화난다. 정말”
나의 말에 큰누이는 지난 일에 화가 나서 술을 급히 들이켰다.
“그만 생각해. 그나저나 언니랑 희망이도 고생 많으세요”
작은 누이는 화제를 돌렸다.
“고모! 할머니는 제가 가서 부르면 눈 뜨세요.”
“그러게 할머니가 희망이만 반가운가 보다. 노인네! 아무튼 내가 갈 땐 눈도 잘 안 뜨고... 희망이 할머니 챙겨줘서 고마워”
딸아이의 말에 큰누이가 장난스래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 속에 다음날 일정을 상의하고 가족 회식을 정리했다.
매주 일요일 새벽 6시부터 환자들의 목욕이 이뤄졌다. 중환자실 내에 있는 샤워실로 환자들을 침대로 이동시켜 한 명 한 명 말끔히 목욕을 시켰다. 우리는 목욕을 마무리하고 식사까지 마친 오전 11시경 항상 삼남매 같이 엄마를 찾아뵈었다. 한 가지 안 좋은 것은 목욕과 식사를 마친 엄마는 피곤함에 주무실 때가 많다는 거였다. 그래도 엄마에게 셋이 같이 얼굴 보여드린다는 것에 마음을 모았다. 언제나처럼 누이들은 빵과 음료를 준비했고 같은 시간에 우리는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좀 상기되어 있었다. 간호사들은 분주하다. 수간호사와 처음 보는 젊은 남녀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들어간 우리의 눈에 정면 구석 침대가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것이 보였다.
“김 샘 커튼 쳐주세요. 보호자님 시간은 08시 20분이세요.”
쌍꺼풀이 짙은 간호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큰누이는 엄마의 얼굴 정리를, 작은 누이는 손발톱 정리를 시작했다. 나는 엄마 발 밑에서 누이들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등 뒤 파티션 넘어 상황을 듣고 있었다.
“끝에 할머니 돌아가셨나 봐. 정신이 없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상황 파악이 되고 누이들에게 말했다. 동시에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엄마가 눈을 떴다. 누이들은 일단 엄마와 눈을 맞추고 안부을 묻느라 바쁘다. 병실도 우리도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쌍꺼풀 간호사가 우리에게 말했다.
“오늘은 면회 시간 지켜주세요. 상황이 좀 그러니 부탁할게요”
성형수술이 잘못되었는지 강제로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짙은 쌍꺼풀이 있어 우리는 쌍꺼풀 간호사라 불렀다. 거기다 성격이 거칠어 누이들은 좋아하질 않는다.
“네. 알겠어요”
퉁명스럽게 큰누이가 대답했다.
“언니, 오늘은 빨리 인사드리고 가야겠다. 분위기 안 좋네.”
작은 누이의 말에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엄마와 인사를 나눴다. 피곤하신지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보시던 엄마는 금세 눈을 감으셨다.
“그래. 나가자. 엄마도 가라고 하시나 보다. 노인네 바로 눈 감으셨네”
그렇게 서둘러 우리는 병원을 나섰다.
병원 근처 백반집에 자리 잡은 우리는 마음이 안 좋았다. 같은 병실 환자의 임종을 처음 접한 영향이었다.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더 그랬다.
“지난주에도 멀쩡하셨는데 갑자기 가셨네”
큰 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도 괜찮아 보이셨는데... 한 시 앞을 모르는구나”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휘저으며 나는 말했다.
“괜히 맘이 안 좋네. 엄마도 아시려나?”
작은 누이의 말에 우리는 서로 무거운 얼굴로 바라봤다.
“괜찮으시겠지. 누이들은 걱정하지 말고. 내일 내가 엄마 뵙고 어떠신지 문자 할테니까...”
나도 맘이 편하지 않았다.
“요양병원 계신 분들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특히 열이 나면 많이 위험하다 그러더라. 요양병원에서 일하던 친구가 얘기해주더라”
큰누이의 현실적인 얘기에 우리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서로서로 위로하려 했지만 현실은 우리 마음과 상관이 없이 움직이니까.
“아무튼 엄마 잘 계시니까 다들 걱정하지 말고. 대선이가 혼자 힘들겠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어서들 먹고 커피 한 잔 하자”
작은 누이가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언니 괜찮겠어? 왠 낮술이야”
“괜찮아. 뒤숭숭한데 한 잔 해야지. 차 타고 가면서 자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큰누이도 속상했는지 술을 시켰다. 걱정하던 작은 누이도 나도 한 잔씩 나눠마시며 마음을 풀었다. 신기하게도 한 잔 마시니 알코올 기운인지 마음이 좀 가벼워짐을 느꼈다.
다음날 저녁 퇴근 후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문을 열자 평시와 다른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웬일인지 엄마는 양쪽 겨드랑이에 얼음팩을 끼고 계셨다. 얼굴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먼저 와 계시던 바람할배 아주머니가 안쓰러운 듯 내가 말했다.
“어제 한 분 가신 거 알지? 신기하게도 누워있는 양반들이 서로 아나 봐. 한 명 가면 영향이 있어. 아들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 좋아지실 거야”
나는 비교도 안되게 오랜 시간 요양병원에서 간호해 오신 아주머니는 격려해주었다. 엄마는 열이 많이 올라 경직과 함께 몇 개 안 남은 치아도 오드득거리셨다. 힘들게 눈을 뜨고 아들을 보시는 엄마의 눈빛이 더 애처로워 보였다.
“쌤. 엄마 많이 안 좋으신 거예요”
등 뒤에서 약 정리를 하던 인자한 얼굴의 간호사에게 물었다.
“오늘 오전에 엑스레이 찍으셨어요. 염증이 있으신 것 같아 일단 항생제랑 해열제 넣고 있으니까 괜찮아지실 거예요. 너무 걱정 마시고.”
간호사는 아는 대로 차분히 말해주었다.
“엄마도 그렇고 이쪽 어른들 열나고 난리도 아니에요. 아무튼 한 분 가시면 여기저기 난리도 아니네. 신기해 정말”
간호사는 중얼거리듯 다시 말했다.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었다. 기다려야 한다. 열심히 땀을 닦아 드렸다. 그래도 땀이 나면 다행이었다. 아가들처럼 열만 나고 땀이 안 나면 더 위험했다. 마치 중환자실에 사마가 덮쳐와 그물을 던져놓은 듯 여기저기 며칠 전까지도 멀쩡하던 분들이 기다렸다는 듯 열에 감싸였다. 나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뭐지? 신기하네. 무슨 보이지 않는 힘이 모두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 같네’
같은 공간에서 나름의 사연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실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벼랑 끝 줄 하나에 모두 연결되어 순서대로 떨어진다. 그 비명 소리와 끊어짐의 울림이 남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울린다. 벼랑에 가깝던 멀던 죽음이라는 공포에 휩싸인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바이러스가 병상의 어른들을 열꽃으로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