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능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일 May 29. 2020

10. 꿈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한 번 시작된 열은 쉽게 내리지 않았다. 표현도 못하시고 온 몸을 비틀며 경직만을 반복하셨다. 촬영 후 염증이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항생제와 해열제를 투입했다. 엄마는 폐에 염증이 확인되었다. 담배도 안 태우셨던 분이지만 가게일을 하시며 주방의 각종 연기 때문에 안 좋아지신 것 같다는 의사 소견이다. 물론 20년 전 진단이지만.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시더니 주말이 다가오며 다행히 많이 호전되셨다. 누이들이 오는 토요일이 되어서는 거의 평상시 모습으로 회복하셨다. 폭풍이 지나간 듯 얼핏 보기에는 살이 빠져 보이실 정도였다. 주중에는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 면회 시간에 뵙고는 귀가 후 다시 병원을 찾았다. 굳게 잠긴 병원문을 열 수는 없었다.  병원 건물 뒤 쪽 주차장에 엄마가 누워계신 병실 창문 쪽으로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바라보다 귀가하곤 했다. 병실 불이 꺼졌는지, 창문이 열렸는지, 엄마는 어떻게 하고 계실까 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애꿎은 담배만 연이어 피웠다. 그저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한 일이었다. 엄마가 쓰러지시고 난 후부터 생긴 불안감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불안감이 가져온 행동 중에 가장 많이 한 것이 이 야간 보초였던 것 같다. 마치 사죄하고자 대문 앞에 무릎 꿇고 석고대죄하는 사람처럼. 불 꺼진 병실을 바라보며 생각의 늪에 빠져 보초를 서 왔다. 결국엔 자식으로서 긴 반성의 시간이었음을 느낀다.

금요일 저녁 일주일 동안 열꽃을 피우던 엄마는 뽀얀 피부로 나를 맞아주셨다.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너무 이쁜 얼굴과 눈빛으로 행복감을 주셨다. 죽음의 마성을 견뎌낸 많은 환자 분들도 관계자들도 모두 평온함을 되찾은 듯했다. 오랜만에 여유 있게 여기저기 닦아드리고 누이들에게 문자로 소식을 알렸다. 와 보지도 못하고 마음만 조였을 거다. 내가 갖게 된 불안감은 자식으로서 누이들도 다 같이 갖게 된 마음이기 때문이다. 가을로 접어들어 회사일도 많아진 나는 몹시도 피곤한 상황이었다. 엄마 주변 정리를 마치고 언제나처럼 말을 건네다 갑자기 밀려드는 피곤함에 나도 모르게 잠시 잠이 들었다.

“죽는 줄 알았네. 언니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파 죽겠는데 말할 수가 있어야지”
분명히 안쪽 침대의 할머니들인데 나란히 병상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고파 할멈과 또자 할머니였다.
“뭘 그렇게 새삼스레 떠드슈.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시끄럽다는 듯 바람할배가 끼어들었다.
“허긴, 할배는 많이도 겪었겠네. 그래도 나는 아직 무섭네. 신기하지. 같이 있던 사람 먼저 간다고 나머지 사람들도 이렇게 같이 아픈 건 무슨 경우래. 동병상련인가. 이놈의 몸뚱이 뭐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배는 그리 고픈지.”
배고파 할머니가 답했다.
“할멈들도 조금 더 있으면 익숙해질 거야. 그나저나 저 놈은 뭘 그리 자주 온데..”
“니 마누라는 자주 안 오냐. 엄마 보고 싶어 오는 새끼가 얼마나 이뻐. 우리 새끼들도 자주 와주면 얼마나 좋을 거여. 낳고 길러봐야 다 헛거여”


나를 보며 바람할배가 툭 던지는 말에 또자 할머니가 답했다. 나란히 놓여있는 병상들과 파티션 사이에 길게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나누는 대화였다. 선명하게 보이고 들리는 소리에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히 침대에 평상시처럼 모두 누워 계셨는데 모두가 발끝 의자에 또 하나의 몸으로 분신술을 한 것처럼 자신의 몸을 보며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한 번 겪었으면 신입도 일어날 만한데 가만있네”
또자 할머니가 의아한 듯 말했다.
“당겨줘야 나오지. 아들 때문에 좀 더딜 거야. 처음엔 나도 그랬어. 마누라 때문에 잘 못당기더라고. 옆에 혈육이 있으면 마음 놓고 몸 밖으로 잘 못나오는 것 같아”
가장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한 할배가 경험을 토대로 말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또자 할머니가 물었다.
“할멈도 첨에 그랬잖아! 기억 안 나? 참, 할멈은 혼자 오래 있어서 안 그랬나?”
“지미, 말하는 거 하고는. 그래 내 새끼들은 잘 안 온다. 사는 게 바쁜데 어떻게”
“승질하고는...아무튼 그래. 혈육이 있으면 잘 안돼. 좀 더 걸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우리도 잠들었을 때만 이렇게 몸뚱이 옆에서만 만날 수 있잖아. 이게 선물 같은 거야. 건강한 넘들은 모르겠지. 침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꿈 같은 것이겠지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지 않아? 그러고 보면 사람 생명이 참 신기한 거야.”
“그렇긴 하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숨통이 트이지. 저기 누워있는 내 몸뚱이가 자꾸 잠드는 것은 맘대로 안돼 미치겠고, 그래도 이렇게라도 같이 수다 떨고 놀 수 있어 고마운 일이지.”
그렇게 바람할배와 또자 할머니가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너무 선명했다.
“야옹이는 왜 승질나서 저렇게 눈뜨고 잔다냐?”
멍하니 듣고 있던 배고파 할머니가 말했다.
“저것이 이 놈에 할배가 하도 귀찮게 하니까 말 섞기 싫어서 죽어라 눈뜨고 있는 거 아녀. 저 놈이 멀쩡할 때부터 바람기 때문에 마누라 고생시키더니 사지 못 쓰게 돼서도 버릇 못 버리네”
“갑자기 뭔 소리여. 할망구들 노망 났나.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할머니의 놀림에 할배가 몹시 화가 나서 말했다.  
“아니면 말고. 뭘 그리 승질을 낸데.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나저나 누나들한테 예의 바르게 해라. 킥킥킥”
또자 할머니는 제자리에서 길길이 뛰는 할배가 재밌는지 계속해서 웃으며 놀리 듯 말했다.
“예의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같이 내일모레 하는 사이에”
화가 난 할배가 말하는 둥 마는 둥 말했다.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배고파 할머니가 자상하게 말했다.
“그만 혀, 둘 다. 또자는 할배도 늙었는데 놀리믄 쓰겄어. 하여간 못 말려. 야옹이는 이렇게 만나는 것도 힘들어 하드만. 어린것이 맘이 힘드니 그렇겠지”
“뭐가 그리 힘들어. 내가 뭐 어쨌다고. 어차피 한 번 가면 다 잊을 거 재밌게 신나게 즐겨야지”
할배의 말에 배고파 할머니가 핀잔 주 듯 말한다.
“이그. 늙어 누워서도 한결같네. 그만 혀. 야옹이 다 듣고 있다. 그나저나 신입 아들이 많이 피곤했나 보네. 엎어져서 코 골며 잘도 자네”
내 얘기를 하는 듯했다.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자신의 신체 바로 옆 이외의 곳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오직 현실의 본인 신체 바로 옆에서만 자유로웠다. ‘무슨 일이야. 다들 멀쩡히 움직이고 말씀하시네.’  조금 무섭기도 했다. 멀쩡히 살아있고 누워있는 분들이 눈앞에 한 명씩 더 있으니 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눈과 귀만 깨어있는 듯했다. 답답함이 밀려올 때 즈음에 따끔함과 함께 잠에서 깼다. 코 고는 소리가 커지자 팀장이 흔들어도 안 일어나는 내 등짝을 찰싹 때려 깨웠다.
“아이쿠야. 뭘 그리 깊이 주무셔. 코 고는 소리에 병원 날아가겠네. 어서 들어가”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얼버무리면서도 나는 너무 놀라 엄마를 비롯해 정면으로 나란히 보이는 어른들을 살펴봤다. 모두 그대로였다.
‘꿈이었구나. 너무 신기하네. 전부 저분들이었는데.’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다 문득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면회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나있었다. 서둘러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너무 생생한 꿈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9. 전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