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능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일 May 29. 2020

11. 메시지_Message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뭔지 모를 두려움이 생겼다. 병실에 들어서면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눈치가 보였다. 꿈속에서 보고 들었던 내용들이 뇌리에 맴돌았다.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너무 자주 엄마 보러 가는 것도 잘못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을 하면서도, 혼자 술 한 잔 하면서도 그 생생한 기억들이 나를 괴롭혔다. 너무 신경을 썼는지 피곤함이 쌓여갔다.
“담배 하나 주세요”
퇴근 후 병원에 도착한 나는 바로 옆 편의점에 들렀다.
“어디 아프세요? 많이 수척해 보이네”
어느새 친해진 편의점 여사장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런가요? 요즘 신경 쓰는 게 많아서 그런가 봐요”
“왜요? 엄마가 어디 안 좋으신가?”
“아니요. 엄마야 뽀얗게 이쁘게 잘 계시죠. 그냥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봐요”
“딱해라. 엄마도 엄마지만 아들이 건강해야 좋아하시지. 누워 계셔도 다 아셔”
마음 좋은 여사장님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네며 요구르트 하나를 주셨다. 몇 개월째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드나들 때마다 찾아오는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가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시곤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병원 주차장에 멈춰 섰다. 나뭇잎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온 힘을 다해 색을 다하고 있었다. 한 해의 마무리라 하지만 일생의 마감일 것이다. 순간 병상의 엄마와 어른들이 겹쳐 보였다. 나뭇가지에 아슬아슬 매달린 나뭇잎처럼 모두가 병상 위에서 호흡기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느껴졌다.

생각에 잠겨 담배만 연거푸 피워데다 정작 면회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버렸다. 부랴부랴 병실로 들어가 엄마 옆에 앉았다. 기다리신 듯 고개를 돌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보고 계신다. 얼굴을 비비며 다 큰 아들이 애교를 부린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엄마 너머로 보이는 환자분들을 한 분 한 분 살폈다. 저녁 식사 후 노곤하신 지 모두 가만히 주무시는 듯했다. ‘내가 예민한가 보네. 그냥 꿈 일뿐이데. 더 생각하지 말자.’ 평온한 병실을 바라보며 스스로 다짐하 듯 생각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꼼꼼히 엄마를 보았다. 어느새 머리가 많이 자랐다. 병원 운영 상 다른 환자들은 모두 삭발 상태였다.  간병인들은 목욕하기 전 미용기기로 일제히 머리를 정리했다. 엄마만 우리가 직접 정리해드렸다. 홀로 지내실 때부터 작은 누이가 정돈해 드려왔던 머리카락을 입원 후에도 계속 정리해드렸다. 눌려있는 옆과 뒷머리는 아주 짧게 자르고 앞머리는 보기 좋게 적당한 길이의 스포츠머리로 정돈해 드렸다. 이발 후 2주가 지났는데 어느새 풍성히 자라 있었다. ‘이번 주에는 정리해드려야겠네’ 혼자 일정을 잡으며 생각했다.
“엄마! 이번 주에는 누이들하고 머리 다듬어드릴게. 머리 길어서 땀 좀 나도 잘 참으셔”
눈을 깜빡거리신다. 알았다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참으시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따뜻한 손을 만지작 거리고 휴대전화로 엄마가 좋아하시던 패티김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틀었다. 귓가에 노래가 들리시게 가만히 전화를 놓고 멍하니 엄마를 보고 있었다. 


“아들! 아들!”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간호사실에는 쌍꺼풀 간호사 혼자 이어폰으로 애인과 한참 통화 중이었다. 쌍꺼풀 간호사는 언제나 자유분방하다. 간호사실인지 카페인지 모를 정도다. 대단한 능력이기도 했다. 손톱 다듬으며 통화하며 간병인들에게 지시도 다 하고 있다. 간병인들은 식사 후 뒷정리로 앉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뭐야! 쌍꺼풀 간호사 통화 소리를 잘 못 들었나 보네.’ 

몸을 바로 하고 엄마를 보니 패티김의 노래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고 계신다. 천정에 뭔가 그리듯이 뚫어져라 보고 계신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노랫소리가 애잔하다. 참 좋아하셨다. 초우라는 노래다. 하도 듣다 보니 덩달아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선명하게.

“아들! 이쁜이 아들!”
“네! 누구세요?”
나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면의 환자분들 대부분은 평상시처럼 눈을 힘겹게 뜨고 나름의 시선으로 천정을 보고 계셨다. 또자 할머니만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했다.
“나야. 또자 할머니. 너는 귀가 열려서 들릴 거야. 내 목소리 들리지?”
“네!... 네 들리는데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멀뚱이 서서 대답을 했다.
“그렇게 큰소리로 말 안 해도 돼. 그냥 입 밖으로 말만 하면 들을 수 있어. 아무튼 오늘은 많이 놀랐을 테니 그만 설명하고. 간병인한테 내 기저귀 좀 보라고 말해줘. 알았지! 더 말하지 말고. 부탁해”
너무 선명하게 들리니 거역할 수 없었다.
“네.... 알겠어요.. 기저귀...”
당황하며 어쨌든 조용히 말했다. 음악을 듣고 있는 엄마를 잠시 두고 일어서 간병인을 찾았다. 팀장에게 또자 할머니의 기저귀를 봐달라고 말했다.
“아니, 왜 갑자기 또자 할멈 기저귀를 보라는 거야?”
“그게... 뭐가 떨어진 것 같아 할머니 쪽으로 갔는데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요. 바쁘신데 죄송해요”
“그래? 죄송할게 뭐 있나. 아들이 냄새날 정도면 봐야지. 알았어”
엄마 옆에 다시 앉았다. 나는 귀신 본 사람처럼 혼이 나갔다. 간병인이 또자 할머니에게 가더니 가림막을 치고 기저귀를 확인했다.
“이그, 맨날 잠만 자면서 뭘 이렇게 많이 싸놨어. 못 말려 아무튼. 냄새도 지독하네!”
간병인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환청이 아니라 진짜 목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엄마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간병인이 간 후 나는 서둘러 정리를 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나오기 전 또자 할머니 옆으로 가 보았다. 그냥 주무시는 듯했다. 마음 같아선 흔들어 깨워보고 싶었다. 잠시 서서 조용히 말을 건네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가 열렸다’는 말이 맴돌았다.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기에 더 놀랐다. 나는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병원을 나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에 조금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뒤돌아 이층 중환자실 창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 겪은 또자 할머니와의 보이지 않는 대화를 다시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메시지였다. 너무나 신기한 메시지에 나는 귓가를 비비며 집으로 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