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귀가 열려있다. 귀가!’
신기한 경험 후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책을 찾아봤다. 이런 소통이 가능한 것인지. 살아있는 사람과의 정신적인 교감이라고 해야 할까? 텔레파시? 그것도 전혀 모르는 사람하고 나누는 무언의 대화. 아니 무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작게라도 입으로 소리를 내어 말해야 상대방이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 같은 경우는 없었다. 신들린 사람들의 경우는 많이 나왔다. 허지만 그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어디 상의할 곳도 없이 나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이거 답답하네. 내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셨으니 다시 들릴 때까지 물어보자!’
그렇게 결심하고 나는 엄마를 뵈러 갈 때마다 다른 어른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니?”
대답이 없다.
‘분명히 주무시는데. 주무시면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어째 대답이 없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뭔가 부르는 방법이 있나?’ 고민하며 다시금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저쪽에서만 부를 수 있나...’ 지쳐버린 나는 얼마 안 남은 시간 엄마를 위한 음악을 틀었다. 오늘은 김수희의 노래다. 워낙 일찍 쓰러지신 엄마라 다양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기억이 나는 몇몇 가수가 있았다. 늘어진 카세트 태이프로 포장마차에서 틀어놓으셨던 노래들이다. 잔잔히 구성진 김수희의 노래가 흘렀다. 엄마는 피곤하신지 가늘게 눈을 뜨고 듣고 계셨다.
“김수희가 노래 참 잘혀”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애창곡이었지. 김수희 노래 듣고 있으면 젊었을 때 생각이나. 이쁜이 아들아. 내는 배고파요”
“아, 할머니. 배고파 할머니 시구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들이 없으셔서 가려고 했어요”
“그럴 만도 허지. 너는 우리를 불러도 소용없으니까.”
“그런가요? 잘 몰라서.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계속 부르기만 했어요”
“그나저나 뭘 그리 맨날 오냐. 엄마 도망갈까 봐?”
“아니 뭐. 보고 싶으니까. 매일 문안 인사드린다 생각하고 오는 거죠. 할머니 식구분들은 한 번도 못 뵈었네요”
“내가 아나. 와야 오나 보다 하는 거지. 언제 왔는지 기억도 안 나네. 몹쓸 것들. 낳아 키워봐야 소용이 없어”
“이런 제가 괜한 얘기를 했나 봐요”
“괜한 얘기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그나저나 니는 복이 있네. 귀가 열려서 누워있는 우리랑 얘기도 할 수 있고. 엄마 정성껏 모셔서 복 받았나 보다”
“그런가요? 저도 신기해요. 그나저나 제가 말을 걸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봐요”
“아. 그거는 말이지 음악 틀면 되는 거야.”
“음악이여?”
“그려. 지난번에 패티김 노래 틀었지?”
“네.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다 알지. 그건 또자 언니 가수 거덩. 언니한테 들었지.”
“또자 할머니요? 그래서 지난번에 또자 할머니가 부르셨군요”
“네가 귀도 열려있고, 엄마 챙기는 게 이쁘니 겸사겸사 말 걸었나 보데.”
“이쁘게 봐주셔서 감사하죠. 그럼 할머니는 김수희 노래 틀면 말씀하시는 거예요?”
“항상 말하는 건 아니고. 자다가 들려서 맘 내키면 말하는 거지. 여기 있는 노인네들 다들 그러지”
“좀 신기한 일이라. 그나저나 덕분에 답답했는데 많이 해결했네요. 혹시 또 배고프세요?”
“아니여. 배고프면 나야 말할 수 있으니까 내가 부르면 되지. 저 못된 것들 배고픈 게 뭔 죄라고”
“제가 실수했나 봐요.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내가 배고픈 게 네 탓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말아”
“그래도요. 근데 여기 할아버지하고 그 옆에 할머니는 어떤 노래가 신호예요?”
“그러게. 저기 바람할배는 남진이 노래 좋아해”
“남진이요. 그리고요?”
“야옹이는 뭐였더라. 외국말로 뭔데이, 뭔데이 흥얼거리던데”
“뭔데이요?”
문득 ‘Yesterday’가 생각났다.
“예스터데이 아니에요?”
“그런가. 암튼 그건 네가 알아봐 봐. 내가 기억나는 건 ‘뭔데이’ 그러고 뭐라 조용히 부르는 거였어”
“아... 네. 제가 한 번 머리 써보죠”
“저기 슬슬 팀장 오나보네. 몸뚱이 뒤집을 시간이 되었나 보다. 아들 또 만나자고”
“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처럼 갑자기 팀장이 다가왔다. 면회시간이 좀 지나 있었나 보다. 배고파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말 없었다.
“아들. 오늘은 오래 있네. 혼자서 뭔 말을 그리 많이 하고 있어. 엄마가 대답 잘해주시나 보네. 우리 체위 할 시간인데 어쩌누?”
팀장은 다른 간병인 한 명을 데리고 제일 안 쪽 침대로 가며 말했다.
“네! 죄송해요. 이제 가요.”
할머니와의 대화에 한참을 집중하다 시간이 늦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서둘러 정리를 했다. 엄마는 가만히 잠들어 있었다. 이마가 빨갛게 일어날 정도로 뽀뽀 세례를 하고 나는 병원을 나왔다.
‘노래가 열쇠였구나. 그나저나 귀가 열렸다는 거는 진료를 받아봐야 하나? 신기하네. 노래도 우연히 잘 맞았고.’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면 노래가 나오 듯, 어른들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면 어른들과의 채널이 연결되는 듯했다. 아니 바로 연결되는 것보다는 기회가 생긴다고 해야 하나? ‘귀가 열렸다’는 능력도 한몫을 했다. 마음을 다해 엄마를 찾아뵌 것도 도움이 된 듯하다. 아무튼 원하는 어른과 대화를 위해서는그 분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면 어른들이 원할 경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였다. 조금 걱정도 되었다. 나만이 나누는 대화였기 때문이다. 또자 할머니가 부탁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내 혼자 해결할 수 있다면 문제야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경우가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계신 어른들이지만 건강한 이들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움과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표현 못하며 힘겹게 버티는 그들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상황에 따라서는 너무나 가혹한 시간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엄마에게 가혹한 시간일 거라 생각했다. 그토록 헌신적으로 살아온 엄마는 틀림없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서다. 내가 이기적일 수 있지만 병상에서라도 엄마가 살아계셔서 감사했다. 어른들과 소통을 시작한 후에는 커다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렇게라도 엄마와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보이지 않는 길이 열렸다고 믿었다.
신비로운 주파수는 내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다음에는 남진의 노래와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틀어야겠다고 정했다. 한동안 극심한 궁금증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이제 엄마의 주파수를 알아내야지!’라고 기대감과 함께 다짐했다. 한편으론 분명 엄마가 좋아하시던 노래들을 들려드렸는데도 엄마와의 대화가 열리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다른 누구의 노래일까? 생각을 거듭해도 뚜렷하지 않았다. ‘정말 엄마에 대해 너무 모르는구나’라며 자학이 이어졌다. 어쨌든 주파수를 맞추는 방법을 알게 된 것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됐다. 됐어. 그만 생각하자. 이제 알았으니 어떻게든 엄마 목소리를 들어야지”
혼잣말과 함께 시원한 밤공기를 가슴깊이 상쾌하게 들이마셨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소통의 길이 있는 듯하다. 나와 어른들을 연결해 준 ‘신기한 주파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