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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May 27. 2020

7. 친구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3개월 입원 제한이라는 의료 체계 덕분에 생활이 변했다. 나는 좀 더 편히 하루하루 엄마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누이들은 매주 주말마다 엄마를 보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토요일이면 엄마를 뵈러 서울로 모였다. 토요일 저녁 엄마를 뵙고 가족 같이 식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일요일 오전 엄마를 뵙고 각자 귀가하는 일정이다. 평일 저녁 6시 30분, 나는 매일 병원으로 향했다.  요양병원이지만 중환자실이기에 면회시간이 있었다. 점심과 저녁 두 번의 면회 시간이다. 다행히 병원은 체계적이었고 깔끔하게 운영되었다. 엄마가 계신 구역에는 신경계 환자와 치매 환자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여성분들 위주로 모셔져 있다. 오직 한 분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저 한씨 할아버지는 터줏대감이라 저기 계신 거니 이해하세요. 벌써 8년이 넘었어요. 오래도 계셨지. 아드님도 이해하세요”
간병인 팀장이 설명해주었다. 팀장은 작지만 땅땅한 몸집에 깔끔하게 머리를 올려 묶었다. 조선족 출신이면서도 한국에서의 경력이 오래되어 한국어를 아주 잘했다. 상냥하고 간병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했다. 엄마의 침상 라인에는 5개 병상이 있다. 바로 옆에 한씨 할아버지다. 그 옆으로 치매 환자 할머니 두 분과 환갑을 조금 지난 뇌손상 아주머니가 있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하얀 천정을 바라보고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고요한 병실에 가래를 뺄 때마다 거친 기계음이 울린다. 그리고 치매어른들의 알 수 없는 외침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엄마가 올해 어떻게 돼?”
가만히 엄마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내게 안쪽 침대의 할머니가 갑작스레 물었다. 정신이 맑아지면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신다고 한다.
“올해 70이세요”
“어린것이 어쩌다 벌써 자리에 누웠어. 딱해라.”
“그런가요? 어쩌다 보니 좀 빨리 누우셨네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질문한 80대 중반의 할머니는 딱하다는 말과 함께 말을 멈췄다.
‘뭐지? 물어보시고는 듣질 않으시네’
다시 치매 증상이 살아난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정을 보고 계셨다. 혼자 생각하던 나는 할머니 말을 떠올리며 좀 놀랐다. 워낙 오랜 세월 병마를 겪고 있는 엄마를 지켜봐 왔던 터라 엄마가 어리다는 말이 많이 놀라웠다. 나는  잠시 일어나 어른들 머리 위 붙어있는 환자 정보를 하나하나 훑어봤다. 엄마 바로 옆 할아버지는 78세. 젊어서 하도 바람 폈다고 보호자인 부인이 말을 많이 해서 ‘바람할배’로 불렸다. 그 다음 입을 계속 오므리고 있어 ‘야옹이’로 불리는 뇌손상 아주머니는 68세.  그 옆으로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고 해서 ‘배고파 할멈’으로 불리는 치매 할머니는 83세. 마지막 자리에서 조용히 잠을 많이 주무시는 할머니는 88세였다. 눈 뜨고 있는 시간보다 주무시는 시간이 많아 ‘또자 할멈’이 별명이었다. 보호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옆에서 보는 내게는 오히려 정감 있고 편해 보였다. 잡티 하나 없이 뽀얀 피부에 장기간 병상에 계신데도 보기 좋은 얼굴에 엄마의 별명은 ‘이쁜이 할멈’이 되어 있었다. 나는 꽤나 맘에 들었다. ‘우리 엄마가 이쁘긴 좀 이쁘지!’ 혼자 만족스러워하며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면회를 오는 나는 간호사, 간병인들과 빠르게 친숙해졌다. 여유가 되는대로 내 손에는 캔커피라든가 빵 같은 간호사와 간병인들을 위한 간식이 들려있었다. 몸에 배어버렸다. 조금이라도 엄마를 위해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나저나 왜 저렇게 큰 욕창이 생기셨어?”
환자들의 체위 변경을 마친 팀장이 내게 물었다.
“여기로 모시기 전에 6인실 병동에 계셨어요. 처음 해주시던 간병인은 잘해주셨는데 간병인 바뀌고 갑자기 욕창이 생기셨더라고요. 목욕도 못하시고 몇 달을 누워만 계시고, 체위 변경도 제대로 안 했는지 순식간에 생겼어요.”
“그러면 안되지. 여기 환자들은 욕창 거의 없어요. 일요일마다 목욕도 하고 체위 변경도 정확하게 하니까.”
“목욕도 해주시나요? 할 수가 있나요?”
“그럼, 당연히 해야지. 남자 간병인들이 힘 좀 쓰지. 목욕용 침대로 모시고 가서 전부 하지. 그래서 우리한테는 일요일이 제일 힘든 날이라니까”

팀장의 설명에 감사함이 들었다. 계속 누워만 계신 엄마를 보며 목욕이라도 시켜드리고 싶었는데 말이다. 매주마다 목욕을 해준다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팀장은 엄마 욕창 치료를 위해 더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간병인이라는 직업인으로서 욕창이 안 생기도록 하는 것은 자존심이라고도 했다. 간호사들도 좌우 길게 늘어선 환자들과 구역별 간병인들을 24시간 주시하며 관리를 철저히 해주었다. 팀장을 제외하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조선족 간병인들을 팀장은 능숙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엄마 손을 잡고 혼자 궁시렁 궁시렁 1시간 가까이 앉아있는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손이 다 녹아 없어지겠네! 그렇게 좋아?”
엄마 옆 바람할배의 보호자인 아내분이셨다. 내가 엄마 입원 후 병원에서 만난 유일한 보호자이기도 했다.
“오셨어요? 그러게요. 진작에 잘할 걸 이렇게 좋은데 말이죠.”
“그럼 됐지. 엄마가 좋아하실 거야. 저거봐. 눈 이쁘게 뜨고 아들만 보고 계시네”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했다. 아들과 아주머니의 대화를 듣고 계신지 눈을 깜빡거리며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다 되어 나와 아주머니는 병실을 나왔다. 신발을 갈아 신고 문 앞 화장실에서 손을 씯고는 다시 투명한 병실문 사이로 보이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보호자들이 나간 병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환자들의 소화를 돕기 위해 올려놓은 침대를 바르게 내렸다. 그리고 2인 1조로 체위 변경을 시작했다. 간호사들은 체온과 혈압을 측정하며 움직인다. 짜임새 있는 분주함에 안심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호사, 간병인, 환자들, 보호자들 모두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서로 의지하고 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친구다. 자식들도 못하는 목욕부터 식사까지 모든 것을 챙겨주는 사이였다.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갖고 함께 싸우는 전우 같은 환자들이 함께 있었다. 말 못하고 이무런 표현없이 누워만 있는 엄마와 다른 환자분들도 병상의 시간을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들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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